최근의 쌀 시장 개방과 한미 FTA 협상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서는 ‘농업보호론’과 ‘농업투자무용론’이 대립하면서 농업계와 비농업계 사이의 상호불신이 또다시 깊어지고 있다. 농업계에서는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 때문에 가시적인 사전적 보상을 해달라고 요구하며, 비농업계는 이런 농업계의 요구가 밑빠진 독에 물 붇기 식이라고 치부하고 있다.

'가시적인 사전적 보상을'…'밑빠진 독에 물붓기'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들의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농업 농촌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바뀌고 있다. 단순히 값싼 농산물의 공급이 아니라, 안전하고 건강한 식품의 공급, 국토 및 환경보전, 그리고 아름다운 경관과 전통, 문화가 살아 있는 풍요한 농촌으로 확대되고 있다. 요컨대, 농업 농촌이 가진 다면적 기능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농업 농촌에 대한 다면적 가치를 인정하고 우리 농업 농촌을 새롭게 살리는 것은 쉬운 과제가 아니다. 우선 빠르게 붕괴하는 농업 농촌을 살리기 위해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붇기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일정기간 동안 농업 농촌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와 동시에 농촌이 가지는 공익기능의 사회적 보상을 위해서도 상당한 국민의 직접부담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농업 농촌에 대한 국민의 의식이 바뀌어야 하지만, 아직 국민의 인식이 이까지는 이르기 못하고 있다. 과연 농촌의 회생을 위해서는 얼마나 더 국민이 부담해야 하며 과연 그럴 가치가 있는 가에 대해 아직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농촌이 장래는 우리 국민과 정부가 농촌의 장래 비전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고 부담에 합의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간 참여정부는 ‘미래를 열어가는 농어촌’을 농정비전으로 삼고, “농업발전 없이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관점에서 농정을 국가경영전략 차원에서 접근하겠다고 공언하였다. 이를 위해서 정부는 2004년 2월에 119조원 투융자 계획을 발표하고, 10년 후(2013년)의 우리 농업과 농촌의 미래상을, 농업은 전업농 중심의 지속 가능한 생명산업으로 개편되고, 농업인의 1인당 소득은 도시근로자에 상응하는 수준을 실현할 것이고, 농촌은 농촌다움을 갖춘 도-농 공존의 삶의 공간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구체적인 농업 농촌의 비전을 제시하였다.

또 향후 5년 동안 20.3조원의 재정을 투여하여 2013년까지 중소도시 수준의 생활인프라를 구축하고 농촌인구를 현재 수준인 20%로 유지하겠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농업계와 비농업계의 반응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농업계에서는 과연 투융자 예산이 과연 장기적으로 확보될 수 있겠는지, 또 농업보호에서 후퇴하고 시장개방에 농업의 장래를 맡긴 채 농업보다는 경관이나 농촌복지로 정책방향을 돌리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회의한다.

한편 비농업계에서는 이런 투자가 과연 고령화되고 활력이 저하된 농촌에서 인구 유지를 가능하게 할 것인가, 과거와 마찬가지의 비효율적인 자원 낭비가 아닌가 하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정부 농촌정책, 인구유지에 머물러

실제 우리 농촌을 향후 10년 내에 중소도시와 마찬가지의 생활수준과 소득으로 끌어 올리고 농촌인구를 지금의 20%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쉬운 과제가 아니다. 농촌인구의 감소는 단순히 정주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이기보다는 취업기회와 소득원이 부족하기 때문인데, 농촌경제의 활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그런 취업기회와 소득원을 창출해 내기란 쉽지 않다.

현재 농업 외에 뚜렷한 소득기회가 없는 현실에서 중산간지역의 인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건불리직불제 등 보상적 지불을 대폭 확충하여야 하나, 국민의 인식과 재정상황으로 볼 때 용이한 과제는 아니다. 또 농촌인구 유지를 위한 소득보상적 지불은 미래를 위한 농촌투자와 재원배분의 경합관계에 놓일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농촌정책은 어디로 가야하나? 우선은 농촌문제를 보는 시각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그동안 정부는 과소에 따른 농촌주민의 삶의 질 저하를 막기 위해 농촌정책의 초점을 인구유지에 둬 왔다.

그러나 정부안대로 현재의 20%대 농촌인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는 회의적이다. 지금의 인구 감소추이를 감안해 본다면 인구 2천명 미만의 읍면의 수가 2010년에는 470개로 급증하고 사라지는 마을도 적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향후 농촌정책의 목표는 절대적인 수가 문제가 아니라 농촌의 활력을 주도할 ‘활기있는’ 농촌주민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10~15%대의 인구라고 하더라도 농업과 농업 외에서 다양한 일자리가 창출되고, 농촌이 가진 쾌적성에 기초하여 활기있는 농촌적인 삶을 영유하는 주민이 있을 때 농촌의 장래는 어둡지만 않다.
그러므로 떠나야 할 사람은 떠나야 하지만 남는 사람은 만족할 수 있는 농촌을 지향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농촌다운 농촌의 건설을 통하여 도시와 차별성을 추구하는 것이 농촌의 과소화 특히 마음의 과소화를 막을 수 있다. 즉, 사람은 줄지만 활기있는 농촌을 만들자는 것이다.

활기있는 농촌 만들기로 패러다임 바꿔야

활기있는 농촌이란 지속가능한 농촌발전(Sustainable rural development)을 의미한다. 지속가능한 농촌발전이란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농촌을 의미하며, 농업과 비농업이 공존발전하는 농촌이다. 이를 위해서는 농촌발전에 보다 재정을 배분해야 하며 추진체계도 통합적, 분권적, 참여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전제되어야 할 것은 다원적 농촌발전에 대한 국민적 합의이다. 장기적으로 농산물 시장 개방 확대와 더불어 농업의 비중이 낮아지는 것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 속도는 농촌경제 및 사회 재편과 맞물려 서서히 진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농촌의 다면적 가치를 발견하고 지원하는 국민적인 동의가 필요하다.

이것은 정부, 농업계, 비농업계 모두의 새로운 인식전환을 요구한다. 정부는 그간 농업생산성 향상 혹은 농가소득의 증대 등 농업 혹은 농업자를 대상으로 농정을 실시하였으나, 앞으로는 식품의 안정성과 고품질 농산물 공급, 환경보전과 농촌지역의 진흥 등 소비자를 포함한 일반국민과 국민경제적 시각에서 농정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또 소비자 도시민 등 비농업계는 농업과 농촌에 대한 투자 덕분에 건강한 먹거리와 도시민을 위한 휴식처가 제공될 수 있다는 인식하에서 농업 농촌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지불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한편 농업계도 정부의 보상에만 매달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농촌 활력 찾기에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앞으로 농촌발전은 농촌지역에서 적정수준의 기업가 정신이 왕성하고, 관광 또는 환경보전 같은 농촌의 쾌적성이 보장될 때 가능하다고 한다.

따라서 농촌중시 정책이 농민을 경시하는 정책이라고 인식을 하여 부정적 시각으로만 보지 말고 농민도 식량생산자로서의 역할은 물론 농촌기업가와 지역의 환경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 농촌의 장래도 ‘미래를 열어가는 농촌’으로 전진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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