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 세금 문제가 불거져 있다. 보스정치, 지역정치를 한탄하며 서구처럼 세금이 정치의제가 되는 날을 그리던 진보진영에겐 좋은 기회이다. 부유세운동이 실종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민주노동당에겐 더욱 그렇다.

진보진영에 주어진 증세논란 정세

게다가 논란의 중심에 증세론이 있다. 진보진영의 조세정책은 민주노동당의 부유세운동에서 대표되듯이 증세운동이다. 신자유주의 감세론에 지배당해 왔던 한국사회에 모처럼 증세론이 부상한 것이다. 대통령의 말은 일주일만에 철회되었지만 증세론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기회는 그만큼 책임을 수반한다. 이 계기를 살리지 못한다면 비판도 커질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원내진출 이후 진보진영의 조세운동을 사실상 전담하고 있다. 많은 활동가나 당원들은 부유세운동이 날개를 달기를 바랐다. 하지만 평가점수가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제 점수를 만회할 때이다.

부유세운동은 직접세 강화운동

재경위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는 필자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진보진영의 조세운동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기를 바라며 두 가지를 말하고자 한다.

하나는 부유세운동의 위상을 올바로 자리매김하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부유세운동이 단지 구호나 세목으로 인식되어오지 않았나 하는 우려 때문이다. 이제 부유세운동을 정책적 성격과 사회운동적 성격으로 나누어 면밀히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부유세운동의 정책적 성격. 부유세운동은 협의로는 부유세 세목을 도입하는 운동이고, 광의로는 부자에게 세금을 거두는 종합적인 조세개혁운동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부유세운동은 선거운동 공간에서 선보인 탄생과정의 특성상 ‘세목 도입’으로 이해되어온 면이 있었다. 하지만 원내진출 이후 상시적인 조세개혁활동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부유세운동이 단지 세목 도입으로 한정될 수 없다. 부유세운동은 세목 도입을 넘어 종합적인 부자증세운동, 즉 조세인프라 구축운동이며 직접세 강화운동이다. 종합부동산세가 강화되고, 소득세, 법인세를 인상하는 것 역시 부유세운동에 포괄된다.

외환위기 이후 진보진영은 적극적으로 직접세 강화운동을 펴오지 못했다. 법인세 인상엔 국제경쟁력, 소득세 인상엔 조세저항, 부동산세 인상엔 건설경기 침체 등의 반대 주장에 부딪혀 구체적 증세방안을 내놓지 못하였다. 오히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소득세, 법인세가 각각 두 차례나 인하되는 상황을 감수해야 했다.

다행히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 이후 다른 면모가 나타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2002년 대선, 2004년 총선에서 부유세를 상징적 의제로 공론화시켰고, 2004년에 조세인프라 구축을 위한 10대법안을 제출하였다. 2005년에는 한나라당 감세안 비판에 이어, 소득세, 법인세 인상안을 제기하며 공세적인 증세운동으로 방향을 잡아갔다. 지난 2년 가시적으로 조세개혁 성과가 달성되지는 않았지만 직접세 강화의 측면에서 진보진영의 부유세운동은 계속되어 왔다.

부유세운동의 본령은 대중적 조세개혁운동

둘째, 부유세운동의 사회운동적 성격. 나는 앞에서 부유세운동이 지속되어 왔다고 평가했다. 이는 정책적 성격에서 볼 때만 그렇다. 정책적 방향은 잡혀 있으나 실제 활동은 미미했다. 주장하는 내용이 없어서 부유세운동이 관철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를 추진하는 조직적 활동이 없었던 것이다.

부유세운동의 본령은 대중적 조세개혁운동에 있다. 이러한 면에서 부유세운동이 실종되었다는 비판은 타당하다. 중앙당이나 의원단이 조세인프라 구축과 직접세 증세를 위해 법률개정안을 마련하고 여론공방에 개입하는 활동은 있을지언정 부유세운동이 지역활동으로 확장되지는 못했다. 민주노총, 전농 등 대중조직과 조세개혁 현안을 공유하는 작업도 없었다. 부동산대란이 세상을 흔들고 부자동네 의회가 재산세를 대폭 인하해도 적절한 대중투쟁을 기획하지 못했다. 여전히 부유세는 당원들과 떨어져 서 있고, 대중적 조세개혁운동으로서 부유세운동은 제자리를 잡지 못했다.

부유세운동은 세목 도입운동이 아니다. 중앙조직의 이데올로기투쟁으로 한정되지도 않는다. 이것의 본령은 부자를 향한 직접세 강화운동이며 이를 위해 대중투쟁을 조직하는 운동임을 분명히 하자.

사회운동적 의미에서 부유세운동이 전개되지 못한 이유는 많다. 현실 조건을 냉정히 따지되 할 수 있는 만큼은 해 나가야 한다. 특히 2006년은 직접세 강화운동을 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지 않은가?

부유세운동을 위한 과제들

다음으로 부유세운동을 위한 과제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부유세운동을 애타하는 진보진영의 열정은 여전히 살아 있다. 부유세운동을 사회운동으로 상승시키는 조세개혁운동을 준비하자.

첫째, 당내 과잉정치가 낳은 ‘자조적(自嘲的)’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 지난 ‘부유세 파동’의 본질적 문제가 무엇이냐고 질문하면, 나는 상정된 법안을 문제시했던 최고위원회의 한계보다는 이 논란을 각색했던 당내 정치문화의 과잉이라고 감히 대답할 것이다.

당시 상정된 10개 법안의 방대함이나 이에 대한 진보진영의 공유수준을 감안할 때 간이과세 폐지 건이나 1가구1주택 비과세 폐지 건에 관한 논란 자체가 불온시될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생산적 방향으로 이끌어져야 할 논란이 ‘부유세 파동’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전화되어 버렸다. ‘자의적 진단’이 스스로를 희화화 하는 자조적 담론에 민주노동당은 지배당했다. 진지한 자기성찰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대목이다.

둘째, 부유세운동을 전담하는 핵심단위가 당내에 구성되어야 한다. 현재 민주노동당 중앙에는 조세담당 간부조차 제대로 없어 조세관련 기본 논의도 점검되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제는 조세담당 인력이 정책위와 사무총국을 포함하는 팀수준으로 배치되어야 한다. 꼭 회계사, 세무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부유세운동에 관심을 가진 활동가라면 된다. 조세팀은 정세에 맞추어 순발력있게 자료를 생산하고, 사무총국과 긴밀히 협력하여 지역위원회를 기반으로 한 조직활동을 기획해야 한다.

셋째, 지금까지 부유세운동이 상층중심의 활동에 한정되었다는 비판을 경청해야 한다. 대중투쟁없는 부유세운동은 애초 목표를 이룰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대중을 주체로 나서게하는 진보활동의 원리에도 맞지 않는다. 중앙차원에서 당, 노동, 농민 간 정례협의가 이루어지고, 지역위원회 조세활동도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함께해야 한다. 올 하반기 정기국회 때 조세관련 만민공동회를 성사시킨다는 구체적 목표를 세우는 것도 사업기획에 도움이 될 것이다.

넷째, 부유세운동은 진보적 경제개혁운동과 떨어질 수 없다. 부유세운동은 치열한 이데올로기투쟁을 수반한다. 부유세운동에 제기되는 상습적인 비판이 바로 경쟁력 문제다. 분배도 좋지만 그러다간 경제가 망가진다는 위협이다. 진보진영도 보다 정공법이 필요하다. 최근 부각된 우리나라의 취약한 조세부담율이나 재정규모 공방도 국제적인 감세 추세를 고려하면 일시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형성해 줄 뿐이다.

부유세운동은 성장과 분배를 통합시키는 경제개혁 청사진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분배우선론이라는 비판에 맞서 균형발전론, 형평발전론 등의 대안담론을 개발하고 대중친화적 구체정책을 담는 작업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등 진보진영의 활동이 신바람을 타지 못하는 상황에서 당위적인 요구를 나열한 것 같아 글마무리가 주저스럽다. 지난 아쉬움을 분발의 계기로 삼고자 하는 나의 다짐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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