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운동에는 '노동타임(?)'이라는 것이 있다. 회의를 20~30분 정도 늦게 시작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 회의가 늦게 시작될 것을 알고 참가자들이 알아서 늦은 시간에 맞추어 회의장에 나타난다. 관행으로 굳어진 듯하다. 30분이 지나면 회의를 유회시킨다는 원칙을 적용하여 본 적도 있지만 우리의 오랜 관성을 넘어서지 못했다. 시작이 이러하니 끝나는 시간은 아예 없거나 있어도 무의미하다. 지방에서 올라온 참가자들이 열차시간에 가슴을 졸이는 일은 회의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회의가 있는 날이면 그날의 다른 약속이나 일정을 기약하기 어렵다.

회의 진행도 마찬가지다. 회의는 연설이나 교육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으고 필요한 결정을 하는 의사결정과정이다. 간단한 주장도 일장연설이 되고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똑같은 주장을 끝없이 반복하여 참석자들을 질리게 하기가 다반사다. 민주노총에도 회의규정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회의규칙을 적용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뿐 아니다. 회의 구성원이 아닌 참관인이 발언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회의를 못하게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혁신'을 외치고 있다. 그래서 민주노총에서는 조직혁신위원회를 만들어서 혁신(안)을 의결기구에 제출하였다. 그런데 혁신을 주장하던 상당수의 사람들이 막상 구체적인 혁신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는 혁신의 반대쪽에 서 있음이 확인되었다. 총체적인 안이 되지 못한다거나 산하조직 통제의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등의 지적이 있었다. 물론 혁신안이 모두가 만족하는 수준이 되지 못한 부족한 점이 많다. 그래서 혁신 과제는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훌륭한 혁신 내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도 힘을 모아 실천하는 데 있다.

그러나 조직혁신사업은 현장조합원의 무관심, 간부들의 소극적이고 타성적인 사업방식, 원활하지 못한 조직 내 의사소통, 정파적인 이해관계에 따른 사업풍토라는 민주노총이 혁신해야 할 혁신과제의 질곡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모두들 혁신을 주장하고 있지만 진작 혁신을 위한 힘이 모아지지 못하고 있다.

2월10일 민주노총 임원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이 앞다투어 혁신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혁신이 선거의 쟁점이 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선거라는 공간을 통하여 혁신과제가 조합원 대중 속에서 논의될 수 있다면 혁신의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혁신논의가 지나치게 관념화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혁신은 구체적인 우리의 일상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거창한 이념이나 운동노선을 정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혁신은 바로 하루하루의 조직활동에서 찾아져야 한다. 혁신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사소하게 보이는 일상의 활동의 혁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혁신은 접근이 쉽고 성공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사실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회의시간을 지키고 회의원칙을 지키는 일은 사소하지만 중요한 혁신과제일 수 있다.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타성에 젖어있는 일들이 너무 많다.

내용도 정확하지 않은 추상적인 혁신 구호를 앞세우기 이전에, 구체적인 검토도 거치지 못한 제도 개선을 주장하기 이전에, 우리 주위에 흩어져 있는 구체적인 혁신과제부터 시작하자.

민주노총 선거에 출마한 임원 후보들에게 제안한다. 후보 스스로가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혁신과제를 공약으로 제시하자고. 후보 개개인이 작은 일에서부터 스스로 혁신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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