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2일 저녁, 울산의 하늘은 잔뜩 찌푸린 채 먹구름이 울상을 짓고 있다. 다음날 아침 처량한 빗방울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대지를 적시고, 공장은 축 가라앉아 있는 모습이다.

공장 정문을 지나 정규직노조 사무실 아래 2평 남짓 창고 형태의 작은 사무실이 나타난다. ‘현대차 비정규직노동조합’. 2기 집행부는 대의원선거 준비와 공장별 순회간담회 및 재정사업 등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보름여 끊긴 채 방치되고 있는 전화선. 공장 내 비정규직의 차량출입도 금지돼 정규직노조 차량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 작은 문제들에서부터 난관은 많아 보였다.


3차 투표까지 간 유례없는 정규직노조의 선거도 그렇거니와 비정규노조의 투표율은 59%였다. 비정규 조합원 수는 지난해 파업 시기 1,800여명에서 지금은 절반 가량으로 줄어들었다. 무거운 침묵과 애써 무관심하려는 분위기가 느껴졌다면 기자의 지나친 감정 표현일까?

지난해 현대자동차는 순이익 2조원대를 기록, 창사 38년만에 최대호황을 맞고 있다. 세계 4대 자동차메이커로 도약하려는 현대자동차의 약진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노동자’들은 과연 어떤 상황일까?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모두 4만3천여명 가량. 이 가운데 1차 하청노동자가 1만2천여명, 2·3차는 1,100여명 정도다.

이들을 구분하는 것은 작업복 가슴에 새겨진 회사명. 공장 안에서 하청노동자 대우는 1차까지다. 2·3차 하청노동자는 관심 밖의 존재다. 2004년 말 노동부의 현대차 불법파견 판정도 2·3차와는 무관하다. 해마다 벌어지는 공장별 투쟁을 주도하는 것도 이들 2·3차 하청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은 작업장도, 작업환경도 다르다. 정규직과 같이 일하는 1차와 달리, 2·3차 노동자는 따로 일한다. 한 공장 안에서 노동자는 조각조각 나눠진 채 ‘절망’의 노동을 일으켜 세우려 발버둥치고 있다. 이들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아봤다.


엄청난 규모의 공장, 소외된 노동

울산시 북구 양정동.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총부지 150여만평에 1일 5,500대, 연간 150만대의 차량이 생산된다. 1968년 포드사의 코티나 모델의 조립생산을 시작으로 1975년 고유모델인 ‘포니’를 선보였고, 그뒤 1991년에는 국산엔진인 ‘알파엔진’을 개발했으며, 90년대 들어 전주, 아산 등에 공장을 건설하게 된다.

현재 울산공장은 5개 공장과 엔진, 변속기, 소재·생기, 통합사업부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17개 차종이 생산되고 있다. 1공장은 베르나, 클릭 등 소형차, 3공장은 아반테, 라비타, 투스카니 등 준중형차를 생산하고 있다. 2공장은 에쿠스, 산타페, 투산을, 4공장은 스타렉스, 포터 등 소형버스와 소형트럭을 생산하고 있다. 5공장은 투산, 산타모(단종) 등 레저차량을 만드는 등 각 공장은 차종별로 나뉘어져 있다. 차 한대에는 대략 3만여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그래서 자동차산업을 ‘기계산업의 꽃’이라 부른다.


자동차의 생산공정은 프레스, 차체, 도장, 의장, 풍동·고온 등 테스트 등으로 크게 5단계로 나뉜다. 남양 기술연구소에서 신차에 대한 디자인이 끝나면 공장에서는 본격적인 생산단계에 들어간다. 문짝과 차체, 트렁크, 본넷 등 자동차의 기본 골격은 프레스로 찍혀 나온다. 차체의 각 부품은 용접으로 이어지고, 색깔을 입히게 된다. 프레스, 차체, 도장공정은 자동화가 되어 있어 거의 모든 일을 로봇이 하고 있다.

다음 단계는 시트와 대쉬보드(다시방), 엔진과 변속기 등 각종 부품을 장착하는 의장공정.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각각의 정해진 일들을 빈틈없이 하게 된다. 1공장의 노동자는 약 5천여명. 이 가운데 3,300여명이 정규직 조합원이고, 1,200여명 정도가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이다. 업무는 생산관리, 프레스1, 2부, 도장1부, 의장1부 A, B조, 품질관리1부, 보전1부로 나뉘어져 업무를 보고 있다.


타이어(Tire)…‘피곤하다, 피곤해’

공장 끝자락에 자리잡은 타이어 공장. 1공장 입구에서 출구까지 10분여를 걸어가야 했다. 자동차 부품 가운데 유일하게 지면과 ‘마찰’을 일으키는 주요부품인 타이어(Tire). 이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말 그대로 다른 공정보다 피곤해 보였다. 상차와 하차를 반복하는 막노동이기에.

금호, 넥센, 한국 등 타이어 생산업체의 차량이 들어오면 22가지 종류별, 크기별로 구분에 창고에 가지런히 쌓아야 한다. 한 차에 보통 700짝. 하루 10대 정도를 소화하고 있으니 7~8천짝을 라인에 올려야 하는 일이다. 이곳에서는 주간 4명, 야간 2명이 교대로 일하고 있다.

입사 4년차인 박시태(30)씨는 생관(생산관리)업무 10개월째다. 고향 안동에서 대학을 중퇴하고 막노동 등을 하던 박씨는 2002년 6월 소림기업에 입사했다. 누나의 지인이 있어 수월하게 취업할 수 있었다. 연고나 연줄이 없이 취업하기란 갈수록 ‘하늘에 별따기’와도 같다는 게 대다수 하청노동자들의 말이다.

그의 토씨를 낀 손목에는 굳은살이 잡혀 있다. 한손에 2~3개씩 잡고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몸이 적응이 되었지만 허리, 어깨, 손목 안 아픈 데가 없어요.” 처음에는 너무 아파서 파스도 붙였지만 이내 떨어지고 해서, 다음에는 아예 붙일 생각도 없었다. 그저 몸이 적응할 때까지 굴리는 수밖에는. 손목 아대(보호대)는 회사에서 지급해 주지도 않는다.

시급은 3,190원에서 출발해 지난해 9월에는 3,534원으로 올랐다. 하루 8시간 30일 기준 240시간을 근무하면 85만원 정도가 떨어진다는 얘기다. 그의 월급은 잔업과 상여금 등을 포함해 평균 150~160만원 정도다. 그나마 그가 소속되어 있는 소림기업은 1차 하청이라 시급이 2·3차 하청보다는 100원을 더 주었기에 이 정도다.

지난 1998년 정리해고 이후 직영(정규직)을 기피하고 있지만, 신차 모듈화와 자동화로 정규직이 맡던 공정이 없어지면 정규직은 비정규직 자리로 오게 된다. 소림기업 소속 하청도 80명에서 70명으로 줄어들었다. “여유기간이고 뭐고 없죠. 통보하면 그걸로 끝이에요. 정규직이 이리로 오겠다고 하면 우리도 나가야 한다니까요.” 저임금, 장시간노동에 고용불안정까지. “오는 2월에도 몇명이 나가야 한다는데, 아따 모르겠습니다.”


“비정규직이 무슨 결혼이에요”

지난해 12월26일자로 근로조건이 ‘주야 맞교대’로 변경되면서 노동자들은 적응 곤란을 느끼고 있었다. 신체리듬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이고, 주간평균 실노동시간이 1시간10분 늘어난다는 지적이었다.

기존에는 점심을 먹고 4시간 일하고, 다시 저녁식사를 하고 저녁 8시까지 일했다. 그런데 지금은 저녁식사 없이 오후5시에 빵을 대충 먹고 저녁 6시50분까지 일하게 된 것. “예전에는 저녁식사가 있어 1시간 쉬는 시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피곤이 누적이 돼요. 저녁식사도 늦어지면서 8시 이후에 밥을 먹게 되니까요.”

박씨는 그 전에는 각 라인에 각종 부품을 전달해주는 ‘서열’ 업무를 담당했다. “이곳이 육체적으로 힘들다면 서열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크죠.” 각 라인에 노란색 전동차에 부품을 싣고 차 사양별로 순서를 맞춰 갔다주는 일이었다. “부품을 잘못 가져가거나 늦게 가져가면 엄청 구박 받아요.”

그는 지난해 4월 강제 전환배치를 당했다. “비정규노조 활동가들과 이야기 나누는 걸 보고 사장(소사장)이 ‘너 거기 있으면 안되겠다’고 하더라구요. 찍혔죠 뭐.” 노조 가입도 하기 전이었다. 부당하다며 항의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인사경영권’을 사장이 쥐고 있으니.

그는 울산에서 혼자 살고 있다. 미혼이다. 결혼할 생각을 묻자 돌아오는 답이 가슴을 찌른다. “비정규직이 무슨 결혼이에요. 마누라 고생시킬라고.” 비정규직은 연애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기까지 그의 마음고생과 차별은 몸속 깊이 박혀 있는 듯 보였다.

점심시간. 공장 안의 조명등이 하나둘씩 꺼진다. 노동자들은 기계적으로 토씨를 벗고 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한다. 공장 안 곳곳에서 배드민턴 치는 노동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선 실력들이다. 하루이틀 갈고 닦은 실력이 아닌 것이다. 하청노동자의 냉소와 탄식이 이어졌다. “잘 시간도 부족하고 몸은 파김치인데, 힘이 남아도나 봐요.” 작업장 곳곳에 마련된 휴게실. 책을 보고, 신문도 읽고, 양치질 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여느 공장의 풍경과는 달리 깔끔하다.


작업장도 다른 3차 하청, 히터도 안 달아주고…

3공장 3차 하청업체인 현대세신 노동자들은 자동차 범퍼의 도장 상태와 이물질, 흠집 있는 것을 찾아 검수를 하고, 라인에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정규직이 있는 본 공장과는 달리 작업환경이 깔끔하지 않다. 오전10시, 달콤한 휴식시간이다. 빵과 요구르트를 먹거나, 집에서 싸온 밥을 꺼내 나눠 먹고 있는 노동자들의 표정이 훈훈하기만 하다.

지난해 12월26일, 해고 3개월여만에 복직한 3공장 현대세신 여성해고노동자들 6명. 복귀한 뒤 달라진 것과 주변 동료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 하고, 고생 많이 했다며 격려해주죠.” 검수 일을 맡고 있는 한기선(48)씨는 소사장만 바뀌었지 공장 상황은 여전하다고 말한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어요. 사장만 바뀌었을 뿐. 추워서 히터를 더 달아달라고 해도 안 들어주는데 뭘.”

연말 성과급도 정규직은 600%인데, 2·3차 하청 노동자들은 200%라고 했다. “그런데 여기는(현대세신) 150%만 준다던데, 완전 사장 마음대로라니까. 원청서 주는 건데 50%는 어디다 잘라 먹은 거냐고.” 또다른 30대 후반의 복직자 고아무개씨가 말을 거든다. “3월이면 3년인데, 작년 9월에 최저시급 3,100원에서 80원 올랐을 뿐이에요.” 7~8년 근무한 고참들이 3,200원 수준이다 보니 한달 월급은 100여만원. 철야를 해야 120만원 정도가 된다고 한다.

30대 중반의 1년차 1차 하청노동자 기본급이 73만원인데, 40대 후반의 4년차 3차 하청노동자 기본급은 70만원. 지난해 추석귀향비로 정규직은 50만원을 주면서도 3차 하청노동자들에겐 10만원도 줄까 말까 한 형편이다. 임금뿐만이 아니다. 1차 하청노동자에게는 가끔 운동복도 주지만, 2·3차 하청노동자들에게는 체육대회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리지 않는다.

현대차 비정규노조가 지난해 말 설문조사한 임금실태 및 의식상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1차 하청업체의 시급은 2차보다 372원 높았다. 근속수당도 1차업체가 2년 미만은 1만원, 4년 미만은 2만원, 6~8년 미만은 3만원인데 견줘, 2·3차 하청의 경우 근속과 관계없이 현대세신은 일괄 1만원, 계림기업은 일괄 2만원 등이었다.

기웃기웃. 낯선 이의 방문을 경계하던 관리자와 소사장은 작업시작을 알리는 벨소리와 함께 일을 하도록 독려(?)한다. “정규직이 있으면 좀 달라질 텐데 여기는 아무도 없으니….” 동행한 현대차노조 임귀섭 비정규직부장이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지난해 ‘파업주동자’라며 한기선씨가 원청 관리자들로부터 머리채를 잡혀 끌려나올 때도 3공장 남성 노동자들 누구 하나 말리지 않았다. 비명을 지르며 ‘도와달라’ 애원했지만 정규직, 비정규직 가릴 것 없이 모두 우두커니 볼 뿐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외면하는 분위기는 이들이 복직해서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대차게 한 번 싸워 보자는 마음 보다는 이제 주는 대로 먹자는 마음이 더 커져가고 있는 것 같다. 57명이던 조합원은 20여명으로 줄어들었다. 탈퇴한 조합원들이 재가입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듯했다.


“공장서 짤리면 울산에서 발 디딜 곳 없다”

현대차 공장을 나와 저녁시간, 5공장 해고노동자 김중태(27, 가명)씨를 만났다. 그는 지난해 2월, 농성에 들어간 지 채 한달이 안 돼 해고됐다. 작년 한해 불법파견 철폐투쟁을 하면서 벌어놓은 돈을 다 썼다. 그는 새해 들어 생계를 위해 부품업체에서 일하고 있었다.

5공장 농성자 출신이면 여지없이 잘리기 때문에 신분을 속이고 간신히 들어갈 수 있었다. 농성 사실이 발각돼 이틀만에 잘린 해고노동자도 있던 터였다. “공장에서 짤리면 울산에서 발 디딜 곳 없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실제 그럴까 했는데 진짜더라구요.” 해고도 억울한데 그 뒤에 찾아오는 불이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는 부품업체를 다니면서 현대자동차 원청과 하청업체와의 불평등한 관계를 더 깊이 알게 됐다. 장갑조차 지급이 안 되고, 쉬는 공간도 없고, 조·반장은 일을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그저 얼굴만 보고 눈치껏 할 수밖에. 그가 곧 옮길 업체는 상여금, 퇴직금, 잔업수당도 없이 일괄 시급 5,500원이다. “4공장의 스타렉스와 트라제가 단종되고 공장 신축에 들어가면 설날 지나면 노동자들이 한달 쉬어요. 그러면 협력업체도 같이 쉬게 되죠. 쉬는 기간에 원청은 임금의 70%가 나오지만 하청은 30~40만원 정도만 받거든요.”

그는 24살 때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인 아버지의 노력으로 입사할 수 있었다. 친구에 친구, 삼촌에 삼촌 등 알음알음 대부분 ‘연고’가 있어야 들어오는 일반적인 경우였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는 수천만원의 돈이 들고, 요즘은 비정규직(1차 하청)도 돈을 줘야 들어갈 판이라는 설명이다. 그래야 회사측의 노무관리가 쉬워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창은 정규직이었는데 같은 일을 해도 1천만원 이상 차이가 나요. 속 뒤집어지죠.”

5공장에서 일하면서 억울한 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범퍼 조립과 시트 장착 등의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이 배치되면 비정규직 1명이 하던 일도 곧 2명, 4명이 배치되곤 했다. 장비도 최신식으로 바뀌었다. 3~4킬로그램 나가는 공구가 무겁다고 하면 전동공구로 바로 교체가 되었다. 정규직이 일이 힘들어 못하겠다고 하면 순환배치가 되고 그 자리는 비정규직이 투입된다. “차별이 어디 한두갠가요. 진짜 너무한다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죠. 정규직이 일하다 실수하면 그냥 넘어가도 비정규직이 실수하면 반장한테 욕이란 욕은 다 들어야 하니까요.”

아버지는 지난해 아들의 농성으로 곤란한 처지에 빠졌다. 과장, 부장 등 회사 임원의 압력으로 농성을 말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아들의 의지는 꺾을 수 없었다. 부모님은 반포기 상태라고 했다.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집에서 별다른 대화도 없다. “개인적으로 돈을 못 벌다 보니 여자친구 설득도 어렵더라구요.” 그의 결혼계획도 농성참가로 어그러졌다. 혹여 집행부에 대한 원망은 없을까? “결과적으로 된 게 없으니 순진한 사람들은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불파투쟁) 되기 위해 한 거고, 안해준 건 회사잖아요.”


‘포장마차’에서 들려오는 비판과 회한

5공장에서 해고된 비정규 노동자들은 공장 맞은편에 포장마차를 치고 생계투쟁을 벌이고 있다. 벌써 4개월째다. 벌이는 시원치 않다. 1백여만원 수입을 세 명이서 나누는 정도다. 한두달은 손님들로 북적이다가 이제는 발길이 뜸하기 때문이다. 옆에 앉아 있던 건축일을 한다는 40대의 주민은 비정규 노동자들의 처지를 동정하는 이야기를 꺼냈다. 사는 동네라 집에 가는 길에 한번씩 들른다는 한 부부.

“사내하청, 참 불쌍치. 아무 관계없는 우리가 차별을 느끼는데 그 사람들 오죽하겠어요.”
“밥 먹을 때도 같이 못 먹고, 현대중공업만 가도 그렇지 않거든.”

“사실 현대중공업은 고생해도 현대자동차는 땡볕에서 일을 하기나 하냔 말이에요, 우린 새벽6시에 일 나가요.”

한 현대차 해고노동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울산은 현대차 정규직하면 웬만한 건 다 통해요. 그기 뭐 호사라고. 미팅을 해도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물어 본다니까요.”

현대차의 실정, 비정규직의 맺혔던 설움은 곳곳에서 그렇게 터져 나왔다. 또다른 자리.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은 감옥에서 나온 동지의 건투를 빌기도 하고, 현대차노조 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활동 등을 안주로 밤늦게까지 대화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때론 한숨 섞인 미소로, 때론 격정적인 목소리로. 겨울, 나무와 풀들이 흙의 색으로 돌아가듯 해고노동자들은 때론 고개 숙이고, 때론 칩거하며 성찰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듯 옛 시대는 지나가고 새 시대는 열리는 법인데 그걸 모르면 똑같이 죽는 길이죠.” 박유기 현대차노조 신임 위원장의 말처럼 이미 비정규직은 850만명에 이르렀다. 울산 현대차에서 3천대오만 갖춰진다면 독자적인 움직임도 가능할 것이라는 게 비정규노조의 희망이다. 취약한 조직력을 복원하고 확대하기 위한 노력은 안팎으로 준비될 것이다.

불법파견철폐투쟁단의 박경렬 단장에게 5공장 농성 1년을 맞이한 소회를 물어봤다. “안 왔으면 하는 날이 벌써 왔네요. 모두가 기쁜 1주년이 됐어야 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올해도 중요한 한해가 될 것이라는 그는 패배의식을 떨치고 다시 불파투쟁으로 모아내는 것이 관건이라며 힘주어 말한다.

현대차 비정규노조 사무실 컴퓨터 바탕화면에 쓰여 있는 글씨가 자꾸만 눈에 아른거린다.
“단결하고, 투쟁하는 것만이 노동자가 승리하는 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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