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말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동조합 2기 집행부가 출범했다. 단독 입후보해 당선된 박현제(33) 위원장은 1,115명의 조합원 가운데 655명이 투표에 참여해 94.4%의 지지로 당선됐다. 높은 지지율보다는 투표 참여율 59%가 보여주듯 조합원들의 상태는 현재 가라앉아 있다. 조합원들의 탈퇴도 이어져, 잘 나갈 때의 절반 수준이다. 여기에 현재 상집간부들의 상태도 불안정하다. 김태윤 수석부위원장은 구속됐고, 최병승 사무국장은 수배중이다. 1월 중순 현재 공석인 상집 자리도 있다.

“임단협 투쟁이냐, 불법파견 철폐투쟁이냐.”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양자가 대립되는 부분은 아니지만 선택과 집중의 ‘방점’에서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조 1, 2대 전, 현 위원장의 의견은 엇갈렸다.

12일 저녁8시, 야간조 출근을 1시간 앞둔 시간,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사무실에서 박현제 위원장을 만났다. 주간근무를 마치고 구치소, 병원 방문 등 바쁜 일정으로 낮에 한숨도 자지 못한 채 기자와 만나야 했다. ‘승리하는 투쟁! 희망을 주는 노동조합! 현장에서 실천하겠습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2기 집행부. 말을 바꿔보면 그동안 승리하지 못했고, 희망을 주지 못했다는 비판적 의미가 담겨 있다. 과연 2기 집행부는 무엇을 준비하고, 실천하려 하는지 박 위원장을 만나 의견을 들어봤다.


“독자적 임단투 통해 노조 힘 되찾겠다”

“여러 투쟁의 과정에서 조합원수가 늘어나고, 조합원들이 단련된 성과들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조합원들이 느끼기에 피부에 와닿는 결과는 많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8월 투쟁 이후 100여명의 징계자와 40여명의 해고자 등 출혈이 심해지면서 노조탈퇴서가 날아오고 패배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작년 1월부터 따지면 해고자는 100여명에 이른다.

한때 집단가입 등으로 1,800여명에 이르던 조합원은 현재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전반적으로 조직을 추스러야 할 시점입니다. 당장 갑갑하다고 서두르기보다는 천천히 공장별 조건에 따라 풀 계획입니다.” ‘위기의 노동조합에 대한 정상화 의지’를 밝힌 2기 집행부.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작년 1월 이후 불법파견 철폐투쟁의 성과가 크게 없었고, 현장은 무너질 대로 무너진 바닥 상태입니다.”

2기 집행부가 역점을 두는 부분은 ‘독자적인 임단협 투쟁’을 통해 노조의 힘과 역할을 되찾겠다는 계획. “이전에는 정규직노조가 회사와 협상을 통해 비정규직의 임금을 상대적으로 올려주고 했지만 작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차이는 크고, 실제 인상폭을 보면 차이는 더 벌어졌습니다.”

교섭권도 없는 허울뿐인 노조를 탈피하기 위해 비정규노조 자체적인 ‘단독교섭’을 추진하겠다는 것. 그러나 쉽지는 않아 보인다. 교섭대상인 하청은 원청의 눈치를 보게 되고, 원청은 끊임없이 사용자성을 부정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청사와 일차적 싸움(교섭)을 하겠지만 실제는 원청과의 싸움입니다. 임금(시급) 결정에 원청이 개입할 수밖에 없고, 현장이 시끄럽고 라인이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원청은 어차피 개입합니다.”

임단협 투쟁에 초점을 맞춘다면 지난 한해 가열차게 벌어졌던 불법파견 철폐투쟁과 이로 인한 해고자 복직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같이 맞물려 있는 문제고, 올해 실질적으로 풀지 않으면 안된다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의(비정규노조) 실력과 여건이 충분치 못해 고민입니다.” 박 위원장은 임단협 투쟁과 불법파견 철폐투쟁이 별개의 투쟁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러나 당장의 불법파견 철폐투쟁에 회의적인 시각은 대화 곳곳에서 표현됐다. “불파투쟁의 최정점은 작년 1월이었습니다. 조합원들도 당시에는 붙으면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지만 현재는 웬만해선 힘들다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규직노조와 소통 문제는 아직 공동투쟁은 하지 않았으나 잘 되고 있다는 박 위원장. 그는 ‘원하청연대회의’ 등 정규직노조와의 협조, 연대의 문제에서도 원칙을 강조했다. “투쟁은 우리 스스로 해야 합니다. 연대회의의 틀이 지속될지 여부는 당장 얘기하기는 힘듭니다. 정규직노조가 도와주면 고맙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특별교섭’에서도 ‘불법파견’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할 생각이라는 박 위원장. 그러나 그는 교섭 여부도 불투명하고,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2년여 임기 동안 노조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지 마지막 다짐을 들어봤다. “책임성을 가지는 한 사람의 조합원으로서, 현장 동지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이 참여하고 스스로 투쟁할 수 있는 틀을 만들고자 합니다. 서로 내가 하겠다고 나서야 하는데 지금은 일할 수 있는 동지들이 부족합니다. 다음 집행부가 오더라도 뭔가를 남기고, 특히 사람을 남기고 싶습니다.”


“‘실리’를 찾겠다면 정규직노조에 맡기는 게 낫다”

2기 집행부의 활동방향에 대해 안기호 전 위원장의 이야기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조합원들에게 실리를 주겠다는 판단이라면 정규직노조에 맡기는 게 낫죠. 불파투쟁에 대해 미온적일 수는 있으나 패배적, 수세적인 기조 속에서 투쟁이 전개된다면 그야말로 더 어려워 질 수 있습니다.” 현대자본이 만만치 않고, 하이스코처럼 합의하고도 헌신짝처럼 단협 사항 손바닥 뒤집듯 하는데, 비정규노조는 더 쉬울 뿐이라는 설명이었다.

“불법파견 문제와 관련 ‘특별교섭’ 하자고 하면서 ‘비정규 너네는 빠져라’ 정도로, 완전 무시하고 들어가는데, 심지어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주고 가겠냐는 것이죠. 민주노조운동이 실리와 노사협조주의 속에서 몰락해가고 있는데 그 전철을 다시 밟을 수야 없지 않습니까.”

안 위원장은 토론회 때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었다. 지난 98년 이후 현대차 울산공장의 정규직 가운데 해고자는 딱 1명. 투쟁의 성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란 설명 속에서 그는 현장투쟁다운 현장투쟁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정규노조를 대하는 자본의 방식은 죽일라고 하는 것입니다. 대체인력 투입 문제는 장난이 아닙니다. 현대 원하청 자본이 언제나, 얼마든지 모집, 투입할 수 있도록 이력서 쌓아놓고 있습니다.” 원하청 관계나 수준을 봤을 때 원청노조의 파업 무력화는 오히려 쉬울 수 있고, 안이한 상황 인식을 버리고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는 주문이었다.

안 전 위원장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불법파견 철폐투쟁’을 기조로 잡고 있었다. 내부의 교육사업을 거쳐 설날 뒤 실천사업을 준비하겠다는 것. 3월경에 불파투쟁의 불씨를 재점화 하고, 6월경에는 이슈화 해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단위사업장 투쟁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지역의 ‘비정규연대’도 현 11개 단위에서 지속적인 확대를 이룰 방침이었다.

“불법파견 문제는 정규직화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불파투쟁은 양보하거나 버리고 갈 수 없는 원칙입니다. 현 집행부에서 미온적으로 나온다면 우리라도 적극 나설 것입니다.” 안 위원장의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그것은 당연한 임무와 역할입니다. 현 집행부와 관계 악화가 일정하게 될 수 있겠지만 설득력있는 대안을 제시한다면 얼마든지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거의 없고, 오히려 피하려는 게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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