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비정규법안(정부안)이 국회를 헤매고, 양대노총을 헤매고 다닌지도 1년이 훌쩍 넘어갔다. 이제는 누구도 이 법안이 입법화 될 것인지 장담하지 못한다. 법 제정이 안되었기 때문에 비정규 노동자가 더 늘어나고, 처우가 더 열악해진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다. 비정규 노동자들이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도대체 현실의 간절함과는 거리가 있는 법제도에 대해서는 회의밖에는 가질 것이 없다. 노무사 일을 하면서도 노동법은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개선시킬 수 없다고 생각해 왔다. 법제도만큼 사회적 권력관계를 분명하게 반영하는 것도 없다.

지난해 가을부터 지금까지 몇몇 비정규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로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이들은 공통점이 정말 많다. 모두 회사에서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 같고, 재계약 거부를 한 이유도 모두 ‘법을 지킨다’는 명목이다. 그리고 모두 여성이고, 회사에서는 이들이 한 업무가 아주 하찮고 단순반복적인 사무보조였다고 주장하는 것도 똑같다.

너무나 확고하고 자신에 찬 주장이어서, 마치 어느 법전에, 아니면 사회통념이 하찮은 업무에는 비정규직을 사용해야 하는 것인 줄 착각할 뻔했다. 이 여성들은 자신들이 업무가 당연히 상시적인 업무이며, 대단히 중요하고 숙련이 필요한 업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이들은 정규직과 하는 일이 비슷하고, 일이 양도 정규직과 비교하여 결코 적지 않은 일을 해 왔다는 점이다. 고용불안 때문에 더욱 더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시한을 정한 사업도 아니고, 회사가 갑자기 어려워진 것도 아닌데, 이들은 해고되었다. 해고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명목상으로는 비용을 절감한다거나 예산이 삭감되었다는 이유이다. 그러나 곧 실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바로 서두에 이야기한 비정규법 때문에 앞으로는 3년이상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해고하고 진정한 의미의 임시직을 사용하겠다는 것이었다.

법원은 지금까지 이 여성들과 같은 비정규직에 대해 이렇게 판단했다. 우선 근로계약기간의 만료로 인하여 근로계약기간은 당연히 종료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장기간에 걸쳐서 그 기간의 갱신이 반복되어 그 정한 기간이 단지 형식에 불과하게 된 경우에는 사실상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의 경우와 다를 바 없게 되는 것이고, 그 경우에 사용자가 정당한 사유없이 갱신계약의 체결을 거절하는 것은 해고와 마찬가지로 무효이다(대법원 1994.1.11. 93다17843, 대법원 2003,11.28. 2003두 9336)’라고 한다.

더 나아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갱신횟수나 근속년수등 양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판례는 ‘계약서의 내용과 근로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 및 경위, 기간을 정한 목적과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동종의 근로계약 체결방식에 관한 관행 그리고 근로자보호 법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기간의 정함이 단지 형식에 불과하다는 사정이 인정되어야 한다(대법원 1998.5.29. 98두625, 서울행법 2002.12.12. 2002구합9339, 서울지법 동부지원 2002.5.3. 2001가합6471등 )’라고 밝히고 있다.

즉, 근로계약기간을 정할 만한 합리적 사유가 있는지에 대해 판단을 하는 것이다. 이 여성노동자들의 경우도 이 기준으로 근로계약의 갱신거부가 해고인지, 단순한 계약기간 만료인지 판단받을 것이다. 이길 수도 있지만, 질 수도 있다. 그리고 이긴다 해도 복직될 수 있을까, 또 복직되어도 여전히 임시직의 신분으로 온갖 차별을 받으며 다닌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법과 행정은 이런 부분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사용자의 양심에 의존할 뿐이다. 그러나 비정규법안을 예상한 사용자들의 경향을 보았을 때, 사용자가 어떻게 할 것인가는 자명한 것이다. 이런 상황은 비정규 노동자들의 법적 대응을 아주 회의스럽게 만드는 부분이다. 유리한 법적 판단을 받는다 해도 현실에서 실효성이 없다면 많은 노력을 기울여 법적 판단을 받는 의미가 너무 작아진다.

앞에서 이야기한 여성노동자들은 지금 법적인 구제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자신들이 이렇게 하찮게 취급받을 수 없어서,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서, 정말 복직하고 싶어서이다. 힘없는 이들에게 이것도 너무 과도한 욕심인가? 

상담문의 : 민주노무법인 02) 376-0001, http://minju.workingvoic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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