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윤 위원장님께서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금융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말씀하셨더군요. 그리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미 보육비, 불임시술비 지원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습니다.

국가경제에서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저출산 현상에 대한 사회여론이 비등하는 가운데 우리 사회는 한 가지 아주 단순한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출산’되어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 가운데 사회적 가치 생산에 참여하지 못하는 숫자가 많다면 그만큼 인구가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입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경쟁전에서 실패해 사회의 저층을 이루는 인구가 상당히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실패는 개인에게 많은 빚이 남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즉, 이들은 최종적으로 채무라는 짐을 어깨에 잔뜩 짊어진 채 저층의 늪 속으로 빠져들어가 사회적 가치 생산의 장에서 축출 당하게 됩니다. 이들은 생산의 측면에서만 사회적 손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인간’인 그들의 생활을 보조해야 한다는 데서 복지수요의 증대라는 새로운 기회비용을 사회에 떠안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들이 재출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출산 장려에 못지 않은 국가적 어젠다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마다 연말연초면 신문지면에 가난한 이웃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는 캠페인이 실리는데, 여기에 윤 위원장님께서 몹시 부끄러워 하셔야 할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열한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정부의 지원금도 받지 못한 채 보일러 꺼진 방에서 두 동생과 사는 11세 소녀가장 은진이(가명)네의 사연은 대전의 11세 소녀가장 은진이(가명)네의 사연은 윤 위원장님이 자신의 부처의 역할에 대해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은진이 아빠는 카드빚을 갚으라는 추심원들의 불법적인 추심을 견디다 못해 지난 5월 집을 나갔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한달 뒤엔 엄마마저 아이들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 아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추심원들의 불법적인 추심은 은진이 부모가 가정을 버려야 할 정도로 위협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할 것입니다. 저출산 사회에서 은진이 부모님은 3남매씩이나 낳아 길렀습니다. 그런데 카드사의 불법추심은 이런 소중한 아이들을 두고 떠나야 할 정도로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망가뜨려 놓았던 것입니다.

이런 금융기관을 감독하는 것이 금융감독위원회의 임무가 아닙니까? 불법적인 채권추심에 대한 사회적 비판여론이 높아지자 천정배 법무장관이 불법추심에 대한 강력한 단속지침을 하달한 후였지만 여전히 은진이 아빠는 집을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단속지침이 내려지기 전에 윤 위원장님께서 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금융감독원이 금융감독권한을 사용하여 불법추심을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었을 텐데 자신의 권한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니 법무부 장관이 나서게 되었던 것 아닙니까.

‘출산’ 하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은 아니지요. 은진이 3남매처럼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성장하여 사회적 가치 생산에 참여할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입니다. 윤 위원장님께서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만 철저하게 하였어도 이런 참담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윤 위원장님께서는 이들에 대한 구제책 마련은 외면한 채 한참 ‘뜨고’ 있는 출산장려책에 한 발 끼어들려고 안달이시군요. 대체 얼마나 많은 은진이 남매가 나와야 감독권한을 제대로 활용하실 셈입니까? 윤 위원장님께서 먼저 하셔야 할 것은 은진이 3남매에게 부모를 다시 돌려주는 일입니다. 빚 때문에 은진이 3남매를 버리지 않아도 되도록 국가는 파산제도라는 재출발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니 빨리 가정으로 돌아오라고 알리는 것입니다.

윤 위원장님!
출산장려 금융상품을 만드는 것보다는 과중채무자에게 개인파산제도를 활용할 것을 적극 홍보하시는 게 금융감독위원장 본연의 임무를 더욱 충실히 하는 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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