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 노동부 장관 내정자는 내정 직후 기자회견에서 “과거에는 가치가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선택이 아닌 조화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사·노정 관계에 대한 자신의 시각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대목이다.

그는 또 최근 몇몇 언론과 인터뷰에서 비정규직법과 노사관계 로드맵을 늦어도 올 상반기 안에 마무리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10여년 전에 비해 “노동환경이 변했고, 노동자들의 권익 신장과 법적 대등성도 확보됐다”며 법과 원칙을 강조했다. 노동자들의 ‘과격시위’에 대해서도 원칙에 따라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노동 관련 사건 변호를 맡다가 ‘제3자 개입금지’로 구속되기도 했던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노무현, 이해찬 당시 의원들과 함께 ‘노동3총사’로 불렸던 ‘국회의원 이상수’의 과거 생각은 어땠을까? 80년대말부터 90년대, 그가 썼던 칼럼들을 통해 그의 시각을 엿봤다.

◇ “노동자들은 과격한가” = 이상수 내정자는 1989년 한 칼럼에서 “노동자들이 과격하다지만 그 ‘과격’을 유도해내고 그들을 흥분시켜 쟁의를 격발시키는 건 언제나 사용주의 권위주의적·폭력의존적 태도”라고 썼다. 그는 오히려 “오히려 노사분규 과정에서 극렬하고 반인륜적인 폭력을 보여온 것은 사용자쪽”이라며 “구사대를 조직, 무자비하게 노동자들을 탄압한 사례는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반면, 노동자들이 먼저 사용자쪽에 폭력을 행사하고 기계 등을 파괴했다는 말은 거의 들어본 일이 없다”고 했다.

그는 또 “노동자들의 가장 강렬하고 과격한 행동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분신이었다”며 “극도의 분노 속에서 참지 못하면 자기 몸을 불사를지언정 상대편인 사용자를 위해하지는 않았다는 의미에서 노동자들은 선량하고 양순하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노동자들이 ‘과격’하다는 이미지는 “사용자와 공권력, 제도언론이 조작해 낸 허위의식에 불과하다”는 게 이 내정자의 십여년 전 생각이었다.

◇ ‘제도언론’의 반노동자성 = 그는 노동자들에게 과격한 이미지를 덧씌운 데는 ‘제도언론’이 역할이 컸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 언론은 사실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은 채 단순히 기물파괴, 불법감금, 폭력행사 등으로만 보도하여 노동자들을 과격하게 인상짓게 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노동자들에게 편파적인 보도태도를 강조했다. 그는 지하철 파업의 예를 들어 “<지하철파업, 분노의 발걸음> <출근길 전쟁 아우성> <시민들 분통, 극한 대립풍토 없어져야> 등 언론매체들은 파업이 엄청난 혼란을 가져온 듯 강조하고, 이에 대한 시민의 불만만을 크게 보도했다”며 “파업이 일어난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서는 정확한 보도를 미룬 채 정부당국의 엄단방침만을 크게 보도, 지하철 파업을 중대한 범죄라도 되는 양 다뤘다”고 비판했다. 또 “서울시 직원과 지하철공사 노조원 간의 월급여액 비교에 있어서는 단순한 편파적 태도를 넘어서 왜곡의 차원으로 들어가, 독자들을 오도케 했다”고 지적했다.

10여년이 지난 현재의 언론들도 이와 유사한 보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상수 내정자가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바라볼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 “언론을 통한 노동통제” = 이상수 내정자는 1989년 11월, 한 칼럼에서 “노동운동에 대한 통제는 온갖 억압조항을 만들어 제도적으로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법적통제’와 사법적 수단까지 동원해 합법의 외양을 쓰고 노동자들을 구속·탄압하는 ‘물리적 통제’, 그릇된 허위의식을 퍼뜨리는 이데올로기적 통제 유형으로 행해진다”고 주장했다.

이 가운데 그는 ‘이데올로기적 통제’가 법적, 물리적 통제의 정당성을 부여해 준다는 면에서 특히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동자들의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가 물가인상 및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려 수출부진, 경제침체의 주원인을 이룬다”는 보도를 꼽으며 “이데올로기적 통제는 국민의식을 조작하는 고도화된 ‘사회공작적’ 방법으로 관변연구기관, 제도언론 등의 도움을 필요로 하며, 특히 제도언론을 통해 정부가 사용자쪽의 논리만 반복, 보도케 해 노동운동 자체에 대한 거부여론을 형성, 공권력의 개입을 정당화시킨다”고 해석했다.

그는 ‘제도언론’들이 이처럼 ‘반노동자적’인 보도를 일삼는 이유는 정치권력의 직접적인 억압 때문이 아니라 “언론기업의 상업성, 기자들의 중산층의식”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즉, 언론기업과 기자들 스스로가 ‘반노동자성’을 띠고 있다는 말이다. 그는 “최근 언론의 자유가 많이 신장된 것처럼 얘기되고 있고, 정치권력에 의한 직접적인 억압은 자취를 감추었다고 말해지는데도, 제도언론의 노동문제에 대한 보도태도에는 별다른 변화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며 “그것은 언론이 외적 자유, 즉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는 쟁취되었다 하더라도 내적 자유, 즉 언론의 계층적 한계로부터의 자유는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 “언론 기업의 상업성, 기자들의 중산층의식 등이 노동자들에 대한 편파적인 보도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는 “왜곡된 허위의식의 조작에 의해 노동운동을 탄압하려는 정치권력, 자본, 제도언론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참언론의 대두가 요구된다”며 “이러한 참언론의 존립을 위해서는 정치권력의 억압에도 굴하지 않는 용기는 물론 상업성과 내부의 계층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특별한 계획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당시 그는 이런 역할을 해야 할 언론으로 <주간 노동자신문>으로 꼽았다.

◇ “노조전임자 임금지급금지는 탄압기도” = 최근 노사관계 로드맵에 관한 당시의 그의 시각을 엿보자. 현재 복수노조 금지와 함께 핵심사안으로 꼽히는 ‘노조전임자 임금지급금지’에 대한 그의 당시 시각은 흥미롭다.

그는 89년 칼럼에서 “회사가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확립된 관례인데도, (노동부가) 임금 지급을 ‘사용자가 노조의 운영비를 원조하는’ 부당노동행위가 된다고 해석, 전임자의 임금수령권을 박탈하려는 자세를 보였다”고 했다. 그는 이것이 “노동운동에 대한 법적 탄압기도를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96년 10월에 쓴 칼럼에서는 “노동법개정과 관련해서 더이상 재벌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면서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고 국제규범에 맞는 노동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노동법과 근로기준법상의 이른바 <3금3제>(3금:복수노조금지·제3자개입금지·정치활동금지, 3제:정리해고·변형근로제·근로자파견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를 두고 “노사가 심각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민감한 시기에, 정부 일각에서는 재벌단체인 전경련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두둔해 정리해고제와 변형근로제, 근로자파견제만을 수용해야 한다고 나서 노사간 협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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