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의 한국사회는 외형적인 수출증가, 경제성장, 주식시장 활황의 이면에 드리워진 40만이 넘는 청년실업, 900만에 육박하는 비정규직, 400만에 가까운 신용불량자, 쌀시장개방으로 파탄에 직면한 350만 농민, 경쟁과 성과의 강요 속에 커져가는 고용불안과 노동강도로 고통 받는 정규직 노동자들, 심각하게 왜곡된 교육체제, 출산 거부, 물질만능한탕주의의 만연 등으로 인해 극도로 어수선하고 불안한, 더 나아가 사회의 지속가능성 마저 위협받는 상황에 직면하였습니다. 

민주노총 비대위는 ‘과도기 임시집행부’인가?

이러한 2005년의 정세 속에 노동자의 대표체임을 자임하는 민주노총은 막중한 책임을 다하기는커녕 비리와 내홍 속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상반기 내내 사회적 교섭방침을 둘러싸고 내홍을 거듭하던 민주노총은 강승규 전 수석부위원장의 비리 사태로 씻을 수 없는 도덕적 치명타를 입었고 비정규직 투쟁은 상층부 간부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협소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쟁과 혁신의 과제를 안고 출범한 비상대책위원회는 어려운 조건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한나라당의 국회등원거부에 힘입어 간신히 정부의 비정규직 확산 법안 처리를 연기하였을 뿐 무기력한 모습만을 보이다가 선거일정을 추진함으로써 스스로를 선거를 위한 과도기 임시집행부로 격하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비대위의 문제라기보다 지금 민주노총이 당면한 문제가 자본의 공세와 내부의 문제가 빚어낸 총체적 위기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 앞에 현장은 무너지고 있고 세상을 바꾸는 노동자 대표조직을 자임해왔던 민주노총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협소한 실리주의 운동으로 고립되면서 대표성과 운동성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현장 간부나 활동가들의 열정은 소진하고 있고 한편으로는 관료화되거나 권력화 되어 조합원을 대상화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종파 패권주의는 노동운동에 새로운 희망과 긴장을 주기보다는 줄세우기와 자리다툼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노동자 대중으로부터 냉소적인 반응을 얻고 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현재의 국면을 타개하는 것은 10개월짜리 집행부를 서둘러 뽑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을 처음부터 다시 세우는 일이고 그렇게 되게 하기위한 근본적인 혁신 방안을 모색하는 일입니다. 민주노총의 혁신 없이는 당면한 문제의 해결도 노동운동의 위기 극복도 결코 있을 수 없으며 혁신이야말로 가장 최우선적인 민주노총의 당면한 과제임을 우리는 다시 확인해야합니다. 책임회피와 형식적이고 졸속적인 집행부 교체가 아니라 민주노총을 조합원과 노동자 스스로 총체적으로 혁신할 수 있도록 기회와 공간을 제공해야 합니다. 

10개월짜리 집행부를 서둘러 뽑기 보다는…

따라서 중앙위원회는 선거일정보다도 민주노총 혁신의 방향과 내용, 추진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고 모색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되더라도 혁신의 과제를 그 이후로 미룰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혁신의 방향은 민주노총의 자주성과 운동성, 노동자 대표성을 회복하고 조직 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세우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내용과 추진 방식에 대한 많은 토론과 모색이 필요하지만 우선적으로 몇 가지를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추진했으면 합니다.

그것은 첫째, 민주노총의 사상적 담론과 운동노선을 올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단호한 반대와 대안 담론의 준비, 이행 전략을 마련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투입해야 할 것이며 광범위한 대중 토론과 현장 투쟁을 조직하는 속에서 이를 확산시켜야 할 것입니다.

둘째, 노동자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해 비정규 중소영세 노동자들의 민주노총 의결 단위 참여 확대와 다양한 투쟁, 조직, 교육 사업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합니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 임원 및 대의원에 대한 비정규직 할당제를 도입하고 중소영세 미조직 노동자들에게도 광범위한 투표권과 참여 권리를 부여해야합니다. 비정규직 기금 모금에 박차를 가하고 가용예산을 대폭적이고 집중적으로 비정규직 투쟁과 교육, 조직 사업에 투입해야 합니다.

셋째, 민주노총의 조직 민주주의와 노동자 통제를 강화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임원 및 대의원의 직선제와 소환제를 도입하고 조직 운영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 기타 민주노총의 혁신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내놓고 토론하고 모색해야합니다.

넷째, 이 모든 것은 위로부터의 관료적이고 형식적인 부분적 개편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총체적인 혁신이 되어야하며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각 연맹과 지역본부, 간부 및 활동가들은 현장 조합원과 노동자들에게 가능한 기회와 공간을 다양하게 제공해야 합니다. 

선거에 앞서 조직혁신이 우선…그 방향은?

중앙위원 동지들 모두가 느끼듯 정세는 엄중합니다. 정부와 여당은 2월 임시국회가 열리면 노사관계 로드맵, 비정규 법안을 다시 추진할 것입니다. 제조업의 상시적인 구조조정과 공공부문의 통제도 더욱 강화되고 있습니다. 교육, 의료의 공공성 약화와 시장화도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엄중한 정세에 대응하기에는 지금의 민주노총은 너무 취약하며 조합원이나 노동자로부터 멀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대의원 간선제로 치르는 10개월짜리 임원 선거는 엄중한 정세를 돌파하는, 민주노총의 힘을 모아내는 장이 될 수 없다고 믿습니다.

중앙위원 동지들께 호소합니다. 형식적이고 조합원을 대상화하는 간선제 선거가 급한 게 아니고 민주노총의 근본적인 혁신이 더욱 중요합니다. ‘아무런 자체 혁신 없이 선거를 치르는 것이 과연 ‘고통 받고 지쳐있는 노동자들에게, 민주노총의 혁신을 열망하는 노동자들에게 대한 민주노총의 응답일 수 있는가’ 이제 우리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소속 연맹에서 파견된 중앙위원이기 이전에 이 땅 전체 노동자의 희망, 민주노총의 중앙위원이라면 이제 우리는 정말 민주노총의 근본적인 혁신을 고민했으면 합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 혁신적인 제도와 방식, 새로운 운동적 기풍으로 신뢰받는 지도부를 구성하고 강력한 민주노총을 세우는 것이 이 위기의 시대 민주노총이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민주노총 중앙위원회가 혁신을 통해 희망의 민주노총으로 거듭나자는 결의를 다지는 첫걸음이 되기를 간곡히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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