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열흘이 지났다.

박재동 화백이 말하기를 일곱 살에서 여덟 살 넘어갈 때의 시간은 너무 길고 지루했지만 그 후 시간의 속도는 걷잡을 수가 없었다나. 그 얘길 읽으며 동의한다는 신호인지, 어릴 적 설날을 기다리던 설레임이 떠올라서인지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어쨌든 해가 바뀌었고, 다시 1년이란 시간의 단위가 주어졌으니, 참신한 계획 하나쯤은 세우고 싶고, ‘나이 한살 더 먹고 세상살이 알아가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할 일을 적어놓은 메모판은 겨울신발 챙기기, 세탁소 가기 라는 겨울 초입의 지시사항을 여전히 가리키고 있고, 새 다이어리를 얻어는 왔으되 개시조차 안 한 게으름이라니.

그저 시간의 연속, 일상의 연장 속에, 의미 붙이기 의식을 치르기도 전에 2006년의 1월은 싱겁게 지나가고 있다. 

새해에는 좀 다르지 않을까?

남들은 좀 다르지 않을까.

시무식도 하고, 출정식도 하고, 총회도 하고. 새 달력도 걸었으니까.

지난 해 여기, ‘매일노동뉴스’ <여성과노동>에 등장했던 이웃들 소식을 먼저 전해야 할 것 같다.

가을날 인사동 나들이를 함께 했던 여성노동자 O희씨는 겨울 들어서부터 우리 사무실에서 볼 수 없었다. 조리사 자격증을 따겠다며 요리사이트를 드나들고, 이메일 사용법을 배우며 즐거워하던 그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 충청도 어디의 보호소에 있다는 아이를 찾으러 간 것일까.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노숙자 바로 위’라고 말해 나를 당황스럽게 했던 O호씨는 다니던 금속사업장에서 나와 집 근처에 새 일터를 구했으나, 그만 나오라는 사장의 말에 맞서 출근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 단체가 사무실을 함께 쓰던 OO노조는 한 사업장에서 젊은 조합원 20여명이 들어와 전에 없던 활력을 찾은 듯 했으나, 바로 그 사업장의 ‘꼴통’ 사장 때문에 1년 넘게 천막농성을 해야 했고, 그 회사 건물의 옥상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OO노조의 ‘왕언니’ O진씨는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며 생활비를 모으고 있다. O진씨는 내게 ‘새해계획 없음’이라고 말해 ‘희망찬’ 새해를 열자고 이 글에 쓰려 했던 나를 난감하게 만들고 있다. 

가난한 내 친구들의 건투를!

그러나, 정말 계획이 없어 ‘계획없음’ 이겠는가. O진씨는 지난해 가을부터 한 사이버대학에 등록해서 노동복지를 공부하고 있다. 혼자 하는 공부이고, 시험도 많아 힘들지만 꿋꿋하게 갈 길을 가고 있다. OO노조의 위원장은 천막농성이 아니었다면, 그 꼴통 사장이 아니었다면, 위원장 임기를 마치고 생활인으로, 두 아이의 아버지로 복귀할 ‘원대한’ 꿈을 꾸고 있었다. 그 꿈은 1년, 2년, 3년을 넘어가고 있다. 옥상에서 내려오는 날 그는 지난 1년 동안 쌓인 고소장과 출두요구서를 들고 경찰서로 가게 될 것이다.

이제 서른다섯이 된 O호씨도, O희씨도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고, 장가도 가고, 아이와 한집에서 살게 되기를 기도했을 것이다.

이 아침, 내가 사는 열다섯평 연립주택 마당에 흰 눈이 곱게 쌓여 있다. 어젯밤, 내리는 눈 속에서 찍어놓은 발자국은 보이지 않는다. 언제부터 버려졌는지 알 수 없으나 녹슨 그네와 미끄럼틀에도 흰 눈은 내려앉았다. 저들이 다시 어린 주인들을 맞을 채비를 했으면 좋겠다.

20년 된 장미아파트를 헐고 새로 들어선 어울림아파트단지의 날카로운 스카이라인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새로 생긴 전철역 앞에는 준공을 알리는 펼침막을 몸에 두른 청소년수련원이 넙적한 사각 체형으로 들어앉았다. 철길 건너 배나무 과수원과 개발제한구역의 낮은 기와집들도 포크레인의 육중한 바퀴자국이 지나갈 날이 멀지 않은 듯 위태롭다.
2006년 초입, 상투적이지만 희망을 걸어본다. 낡은 언어들이지만 축복을 바래본다.

가난과 풍요가 공존하는 도시의 풍경 속에, 절망 속에서도 낙관을 잃지 않고, 눈물 속에서도 웃음을 피워낼 가난한 내 친구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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