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제노동조합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최대조직인 국제자유노련(ICFTU)과 기독교계열의 국제노동조합 조직인 세계노동자총연맹(WCL)이 통합하여 새로운 국제노동조직을 창설함으로써 국제노동운동의 재편이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 2004년말에 일본에서 개최되었던 ICFTU 제18차 세계대회에서 만장일치로 WCL과의 조직통합이 결의된 데 이어, WCL도 지난해 11월말에 브뤼셀에서 개최한 제26차 세계대회에서 ICFTU와의 조직통합에 의한 새로운 국제노동조직 창설을 85% 찬성(10% 기권, 5% 반대)으로 의결함으로써, 양 조직의 공식기구를 통한 조직통합 결의 절차가 완료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양 국제조직은 오는 11월 1~3일에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에서 새로운 국제노동조직의 창립총회를 개최하기로 하고, 창립총회 하루 전날인 10월30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ICFTU와 WCL이 각각의 임시총회를 열어서 조직해산을 완료하기로 하는 등 세부적인 추진일정도 확정되었다.

그런 가운데 지난달 9~10일에 홍콩에서 개최된 ICFTU 집행위원회의에서는 양 조직의 통합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과 통합조직의 규약(안)을 놓고 심도 깊은 논의가 진행되는 등 새로운 국제노동조직의 창설을 향한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국제노동조합운동의 역사와 조직 현황

그동안 국제노동조합운동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에 창립된 세계노동조합연맹(WFTU)과, 동서냉전이 시작되면서 미국과 영국 등 자본주의 국가의 노총들이 세계노련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창립한 국제자유노련(ICFTU), 그리고 1920년에 창설된 기독교 계열의 노동조합의 국제조직으로서 1968년에 종교주의를 철회하고 명칭을 변경한 세계노동자총연맹(WCL)의 3개 조직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런 가운데 WFTU와 ICFTU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상호대립하면서 국제노동조합운동을 양분해 왔으나, 1980년대말 소련과 동구권의 몰락과 함께 WFTU 가맹조직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ICFTU가 국제노동조합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게 되었다.

최근 각 조직의 공식자료에 따른 조직규모를 보면, ICFTU가 150개국 231개 조직의 1억5천만명의 조합원을 포괄하고 있는데 반해서, WFTU는 북한, 베트남, 쿠바 등의 사회주의 국가와 제3세계 국가를 중심으로 120개국 1억3천만명의 조합원을, WCL은 아프리카와 남미를 중심으로 116개 국가의 144개 조직의 2천6백만명의 조합원을 포괄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WFTU와 WCL의 실제 조직규모는 훨씬 작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ICFTU와 WCL의 통합 추진 배경과 경과

ICFTU와 WCL의 통합논의는 WFTU를 탈퇴한 서유럽의 노총들이 ICFTU를 창설하면서 기독교 노동조합들에게 함께할 것을 요청한 데서 드러나듯이 오랜 역사를 지닌다. 당시 ICFTU의 요청에 대해서 WCL의 전신인 국제기독교노동조합연맹(IFCTU)이 노동조합운동의 다원주의 원칙과 냉전 이데올로기에 종속된 노동조합운동을 거부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합류를 거부하였지만, 1960년대말 WCL이 종교적 색체를 걷어내면서 양 조직의 이념과 정책이 유사해진 데다가, 1974년에 WCL의 유럽지역 가맹조직들이 ICFTU 가맹조직들이 창설한 유럽노련(ETUC)에 가입하면서 양 국제조직의 통합 주장이 또다시 제기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말 냉전체제가 붕괴되면서 세계노련(WFTU)을 탈퇴한 동유럽과 남미지역 조직들의 가맹을 둘러싸고 ICFTU와 WCL간에 경쟁과 갈등이 생겨나면서 양 조직 간의 통합논의가 순탄치만은 않았다. 2000년 4월에 남아공에서 개최되었던 ICFTU 제17차 세계총회에 참석한 윌리 타이스(Willy Thys) WCL 사무총장은 “두 조직은 비슷한 정책방향을 갖고 있는 만큼 단결해서 같이 투쟁해야 한다”는 ICFTU 사무총장의 발언에 대해서 “세계수준에서 노동조합의 단일구조가 유익할 것이라는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라고 반박하였고, 이후 계속된 ICFTU의 통합제안에 대해서도 소극적 내지는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였다.

하지만 ICFTU와 WCL은 국제노동기구(ILO)와 세계사회포럼(WSF)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양 조직 지도부 간에 조직통합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한 끝에 각조직의 최고 의결기구인 세계총회를 통해서 공식적인 결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조직 통합에 따른 논란과 쟁점

ICFTU와 WCL의 통합이 결정된 가운데, 통합조직의 기조와 원칙, 정책과 조직 등 제반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와 협상이 진행되면서 적지 않은 논란과 쟁점이 드러나고 있다. 우선, 기존조직의 단순한 통합이 아니라 조직 통합을 통한 새로운 국제노동조직을 창설하기로 한 만큼, 새로운 국제조직과 기존 조직들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의와 함께, WCL이 적극 제기하고 있는 ‘다원주의(pluralism)’에 대해서도 조직의 결속력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새조직의 기조와 원칙을 놓고 ICFTU와 WCL 간에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와 함께 WCL이 기존의 준회원(Associated Membership) 제도를 새 조직에 그대로 존속시키자는 주장에 대해서 ICFTU 조직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지도부 선출이나 의석배정에 있어서도 ‘맹비를 납부한 조합원수’라는 기준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통합조직의 최고의결기구가 될 세계총회에 참석할 대의원수 배정에 있어서 WCL의 요구에 따라서 소규모 조직들에게 상대적인 혜택을 주는 문제는 소규모 조직이 많은 WCL의 조직현실을 감안하여 받아들이는 쪽으로 양해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며, 그럴 경우 ICFTU와 WCL 가맹조직들이 통합조직에서 배정받게 될 대의원수는 각각 787명과 157명이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WCL의 기존 조직들 가운데 실체가 없는 유령조직들이 적지 않고 조직규모도 실제보다 부풀려져 있는 등 정확한 실태파악조차도 어려운 현실은 조직통합에 있어서 장애요인이 될 것이며, 지역조직과 산업별 국제조직의 통합과 세계조직과의 관계 설정 문제도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이러한 쟁점들에 대해 ICFTU와 WCL은 각각 조직내부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상호 간에 협상을 계속하여 오는 6월말까지 논의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국제노동조합운동의 재편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ICFTU와 WCL이 예정대로 오는 11월에 통합하여 새로운 국제노동조직이 출범한다는 것은 국제노동조합운동이 기존의 세계노련(WFTU)과 새로운 조직의 양대축으로 재편되는 것을 의미한다. 더우기 80년대말 이래 쇠락을 면치 못하고 있는 세계노련(WFTU) 내에서 조직을 해산하고 새로 출범하는 국제노동조직에 함께 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어서 경우에 따라서는 국제노동조직의 대통합도 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이처럼 국제노동조직이 상호협력과 조직통합을 추진해나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에서는 기존의 양대노총이 조직통합은 고사하고 지난 1년여 동안 유지해 오던 공조마저 파기하였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제3노총' 창립도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2007년의 복수노조 시대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노동조합운동의 발전을 고민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단결과 통합을 추진해나가고 있는 국제노동운동의 최근 상황은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하는 마당에 일국 내의 노동자들이 단결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