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언론의 기자로서, 민주노동당이 열살이 되는 해에, 풍운의 10년사를 쓰게 되는 영광이 누리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국민승리21에서부터, 창당에서 원내진출을 넘어, 유효정당으로, 진보정당이 한국사회에서 서나가는 모습을 꼭 써보고 싶다.

그러자면 꼭 인터뷰를 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권영길, 노회찬, 주대환, 천영세, 최규엽 같은 분들은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더불어 꼭 찾아뵙고 말씀을 구해야 할 사람이 노현기 전 부평지구당 부위원장이다. 국민승리21의 선전국장이었으며, 민주노동당 초대 선전국장이던 그에게서, 삼선교 시설, 웅크리고 빛볼 날만 기다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꼭 듣고 싶다.

당 창당 이전에 만들었던 홍보물과 소식지들을 들추며, 힘들었지만 희망을 잃지 않았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상상으로도 가슴 뿌듯했다. 부평 어디 선술집에서 소주잔도 꼭 기울여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유명하진 않았고, 빛나지도 않았지만, 노현기 당원은 살아 있는 당사(黨史)의 일부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 노현기 당원이 2005년 12월6일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했던 ‘황우석 신드롬 이면의 파시즘’이라는 제목의 글은 ‘오독’됐다. 그 오독은 국어실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노현기 당원이 지적했던 것처럼 ‘파시즘’의 문제였다. 그 이후에 당의 지도급 인사들은 ‘총선 공약’을 오독했고, 당의 정책을 오독했다. 줄지은 오독의 원인은 노현기 당원의 글에 대한 오독의 이유와 다르지 않았다.

당 임시대표가 중앙위 자리에서 황우석 관련 입장발표와 관련해 사과했다. 정대협은 지난 연말 민주노동당 여성위에 상까지 줬다. 그리고 며칠 뒤 황우석 교수의 연구가 거의 '사기' 수준이었다는 게 요란벅적하게 드러났다. 중단됐던 은 다시 방송을 시작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내 누구도, 광풍 속에 사퇴한 노현기 당원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기고 글이 나간 후 단 이틀만에 ‘당직사퇴’를 불러올 만큼 강하게 ‘해명’을 요구했던 당 지도급 인사들과 바로 그 다음날 사표를 수리했던 분들은 벌써 잊은 모양이다.

성장기로에 선 민주노동당이지만, 언제든 다시 ‘반역’의 길로 들어설 각오가 없다면 더이상 진보정당이 아니다. 주대환 전 정책위의장은 언제든 다시 ‘김철순’으로 돌아갈 각오가 있어야 하고, 단병호 의원은 다시 감옥으로 ‘복귀’할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노회찬 의원이 다시 용접봉을 잡을 각오가 없다면, 더이상 진보정당이 아니다.

“의리 없는 사람이 어떻게 대중을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민중은 의리 없는 사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한 최고위원 출마자가 자주하는 말이다. 지난 ‘당사’에 대한 존중도, 지적인 판단도, 하다못해 시정잡배도 챙기는 ‘의리’도 찾아보기 어렵다.

노현기 당원이 <매일노동뉴스> 마지막 칼럼에 쓴 “지금은 침묵이 필요한 것 같다”는 말이 그래서 더 가슴 아프다. 이 다음에 혹시 당 10년사를 쓸 기회가 생긴다면 제목을 ‘민주노동당, 그 망각의 역사’라고 붙이고 싶은 심정이다. 침묵이 아니라 후안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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