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최루가스에 대한 만성장애로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유리섬유 폐기물에서 조류인플루엔자까지>의 저자는 1996년 미국에서 군대 훈련병 10여명이 최루가스로 인한 '급성호흡곤란' 등을 호소했던 사건을 소개하며 이같이 묻는다. 미국은 이 사건 이후 최루가스의 환경 농도와 건강 장애를 감시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기껏해야 "그때 데모를 하지 말 걸! 이런 생각을 할 것 같다"는 게 저자의 혼잣말이다.

'역학탐정'이란?

'고잔동 사건을 파헤친 역학탐정 임현술 교수의 질병 원인 추적'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유리섬유 폐기물에서 조류인플루엔자까지>는 저자가 1999년 12월부터 이듬해인 2000년 12월까지 미국 보훈부 환경역학과를 방문한 기간 동안 보고 느꼈던 '역학조사'에 대한 단상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저자는 당시 1년간 미국에 체류하면서 역학조사의 선진국인 미국에서는 질병의 원인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밝혀지는지를 조사해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의 제자들인 동국대 의대 학생들에게 자세하게 전달했다. 그런 내용들이 모아 책으로 만들어진 것.

그래서인지 저자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가설을 세우고, 조사하라'고 주문한다. 10년 혹은 수십년이 걸리는 역학조사를 내다보는 그의 마음이 곧바로 전해져온다. '역학탐정'은 '새로운 질병이 유행할 때 역학조사를 실시하는 의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최근 조류인플류엔자 같은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 등으로 역학조사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환경병, 직업병, 병원직업병, 군입병, 감연병 등으로 병을 나누고 그에 해당하는 110개의 질병을 발생부터 원인탐색과 해결까지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다.

"가야 할 길이 너무 멀다"

특히 저자가 미국의 역학을 다루면서도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졌던 역학조사를 함께 언급, 양국의 차이점을 기술하고 있는 대목은 읽는 이의 마음을 짓누른다. '성형'같은 돈이 되는 보건의료기술은 세계최고 수준에 이른 우리나라가 아직까지 내가 병에 걸린 원인도 모른 채 죽어가야 하는 역학조사와 같은 분야에서는 후진국 수준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실감케 하기 때문.

직업병과 농어민병, 병원직업병, 군인병 등을 다룬 대목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일례로 담뱃잎농부병의 경우 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연구돼 왔으나, 우리나라는 2000년대 들어 처음으로 역학조사가 실시됐다. 담뱃잎농부병이란 담배잎을 수확하다 보면 니코틴이 피부를 통해 흡수되어 니코틴 중독 증세가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특히 비가 오면 흡수가 잘 돼 더 심할 수 있고, 증상으로는 구역, 구토, 무력증, 혈압 및 맥박변동 등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몸살로 치부되어 왔다.

"의심하라! 조사하라!"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산업의학 분야를 연구하며 겪는 아쉬움의 독백도 엿볼 수 있다. 직업병 발견을 위해 하루에 200명씩 특수건강진단을 해도 직업병을 발견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때문에 저자는 직업병 환자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임상의사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환자를 보면서 언제나 직업병, 환경병의 가능성을 의심해야 밝혀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가 제자들을 향해 외치는 '모든 병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하여 가설을 세우고, 의심하고 직업력과 환경력을 자세히 물어야 한다'라는 주문은 단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저자 임현술은 누구?
국내 역학조사의 권위자로 불린다. 현재 동국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주임교수로, 서울대 의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리고 지난 8년간 예방의학과 산업의학, 가정의학 전문의 과정을 밟으며 역학조사관이 되기 위한 철저한 훈련을 거쳤다고 한다.


지금까지 탄저병, 콜레라, 장티푸스, 세균성 이질 등 다양한 전염병 조사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특히 매향리 사격장 소음, 산봉동 진폐증, 인천 고잔동 유리섬유 폐기물 조사 등은 그의 대표적인 역학조사다. 이를 통해 그는 주민들의 피해보상에 적극 앞장섰다. 환경병을 비롯해 직업병, 농어민병, 병원 직업병, 군인병으로 역학분야를 분류하고 많은 사례를 이미 학계에 보고한 바 있다. 지금까지 발표한 논문은 모두 200여 편이며, 저서로는 <환경보건역학>, <산업의학 진료의 실제>, <예방의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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