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말이 많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말을 반만 줄였으면 좋겠다는 말도 들었다. 그때마다 항변했다. 침묵, ‘말이 없음’은 때로는 내용이 없는 것이고, 때로는 저항하지 않음으로써 불의에 복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달 이 지면에 황우석 신드롬을 ‘파시즘’이라고 비판한 글로 인해 상상하지 못했던 화마(話魔)를 입었다. 

침묵, 때로는 죄악이었다

대단히 힘들었지만 후회는 없다. 한번 뱉은 말(글)을 주워 담을 수도 없거니와 그로 인해 더한 것이라도 당해야 한다면 당해야 한다. 그걸 피하기 위해 뱉은 말(글)을 주워 담으려 애쓰기는 싫었다. 내 생각을 굳이 사상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천박하고 졸렬하지만 그것조차 현재 나의 수준이다.

‘지구는 네모납니다’고 증언하고는 법정을 나서면서 ‘그래도 지구는 둥근데…’라고 중얼거렸던 갈릴레오를 나는 존경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우리 역사에서는 ‘신중하다’는 이름의 침묵과 중도를 지킨다는 명목의 애매모호한 피해가기로 인해 희생당했던 사람들이 너무 많다. 어린 시다들의 열악한 현실에 대한 지식인들의 무지와 침묵에 전태일 열사는 자기 몸을 불사르는 것으로 말을 대신했다. 또 70년대 동일방직 언니들을 비롯한 선배노동자들은 생방송되는 부활절 예배장 무대로 뛰어들기도 했고, 방송국을 점거해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침묵이 가져온 희생이었고, 강요된 침묵에 ‘마이크’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너무나 빨리, 황우석 연구가 사기였으며, 여기에 정치권과 언론이 동조했고 그리고 온 나라가 동요했다는 것이 드러났을 때, 정말 믿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단 1% 아니 0.0000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붙들고 늘어지고 싶은 심정이었을 난치병 환자들의 절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희망과 대안이 보이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황우석이라는 신기루를 부여잡고자 했던 가련한 대한민국 국민의 희망을 완전히 꺾지는 말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쯤에서 다시 침묵의 죄악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과연 정치권과 언론이 정말로 황우석 연구에 제기되는 의혹을 모르고 있었나? 아니 그 이전 황우석 연구 과정에서 난자제공 과정의 윤리문제를 그렇게 쉽게,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시켜도 되는 것이었나? 알면서도, 들으면서도 귀를 틀어막고 동조했던 것은 아닌가?

어제까지 황우석 신드롬을 부추기더니 하루아침에 황우석을 사기꾼이라며 돌팔매질을 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성찰과 반성 없는 한국 사회가 혐오스럽다. 

공공성의 실종이 불러온 황우석 사태

홍세화 선생은 언젠가 강연에서 대한민국은 ‘공공성이 실종된 사회’라고 말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①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고 돼 있다.

‘공화국’이라는 의미에 담긴 ‘공공성’. 홍세화 선생은 빠리의 택시운전사답게 프랑스와 비교하면서 민주노동당이 주장하는 ‘무상의료, 무상교육’은 진보적 이념이 아니라 좌우가 모두 동의하는 ‘공공성’의 영역이라고 주장했다. 공공성이 실종된 한국 사회에서 그 같은 주장이 진보 혹은 빨갱이들의 목소리로 치부됐다는 것이다.

인권 그리고 생명. 그것은 진보적 담론이 아니라 공공성의 영역이다. 황우석 연구가 배태하고 있던 문제는 진보냐 보수냐 이전에 인권의 문제이고, 생명의 문제이고, 양심의 문제이다. 줄기세포가 뭔지 테라토마가 뭔지를 몰라도 ‘인권에 대한 감수성’만으로도 판단할 수 있는 공공성의 영역이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 인권은 국익 앞에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것이었고, 모든 의혹과 문제점에 대해 때로는 자발적으로 때로는 강요에 의해 침묵을 지켰다.

말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징표이다. 말(言)은 생물들 간에 종(種)을 구분 짓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그리고 현실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저항이다.

그러나 이제 두렵다. 테러보다 더 두려운 것은 스스로 내게 가할 ‘자기검열’이다. 말은 너무나 졸렬해 비겁하게 피해하면서도, 할 일을 다 했다고 큰소리 칠 수 있는 자기변명의 요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지금은 침묵이 필요한 것 같다.

노현기 전 민주노동당 부평구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번 ‘황우석 사태의 끝에…말과 침묵’이란 칼럼을 끝으로 <여성과노동> 연재를 중단한다고 밝혀왔습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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