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조운동이 직면한 여러 가지 도전과 과제들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민주노조운동의 노동계급 대표성이 의심받고 있다는 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민주노조운동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온갖 이데올로기적, 악의적 비방에도 노동계급 대표성만은 시비의 대상으로 된 적이 없었다. 그것도 국가와 자본, 보수언론들에 의해 공격당하면서 비정규노동자 문제가 심각하고, 민주노조운동이 비정규노동자를 제대로 조직하지도, 대변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비록 자체적으로 진단하지는 못했지만, 민주노조운동이 비정규노동자 문제의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비정규 관계법안이 국회 환노위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되기 전인 2004년 11월26일 비정규법 개악 저지와 권리입법 쟁취를 위해 총파업투쟁을 시작한 이래 국회 일정에 맞추어 총파업 선언과 유보를 거듭하면서도 지난해 4월1일, 12월1일, 2일, 8일 총파업 등 비정규 입법과 관련하여 다섯 차례나 총파업투쟁을 전개했다. 지난 2년 동안 민주노총이 전개한 다섯 번의 총파업투쟁이 모두 비정규 권리입법을 위한 것이었을 만큼 민주노총은 비정규노동자 문제에 ‘올인’하는 것처럼 보였다. 뿐만 아니라 비정규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50억 특별기금 모금운동을 전개하고 비정규노동자 조직을 전담할 활동가들을 훈련시켜 비정규노동자 조직화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 고군분투 했지만

민주노총이 전체 노동계급의 대표자로서 비정규노동자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의지가 아무리 확고했다 하더라도 민주노총의 비정규노동 관련 활동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조직화 특별기금 모금 운동도 실패로 끝났던 2000년 비정규투쟁기금 모금운동과 비교하여 속도감에서 큰 차이가 없고, 지난해 11월 초로 계획되었던 비정규조직화 활동가 훈련 프로그램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또한 비정규 권리입법 관련 다섯 차례의 총파업에 참여한 노동조합원은 연인원으로 따져도 42만 여명에 불과했다. 12월2일 총파업의 경우 2만명 규모로서 민주노총 역사상 가장 참혹한 동원기록을 남겼다. 민주노조운동이 역량의 한계를 드러낸 것인지, 노동계급 대표성과 비정규투쟁보다 더 절박하고 중요한 다른 요인들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민주노조운동의 계급대표성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어쩌면 작금의 상황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불러왔던 상황과 상당히 유사한 측면이 있다. 노동자 대투쟁 이전 노동자들은 어용노조들에 의해 대변될 수 없었던 것과 같이, 지금의 비정규노동자들은 민주노조운동에 의한 이해관계 대변에 명백한 한계를 느끼고 있다. 사정은 민주노총 수준보다 단위노조 수준에서 더욱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이 다섯 차례 총파업을 모두 비정규노동자 문제에 집중한 반면 단위사업장 정규직 노동조합들이 비정규 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선 사례들은 찾기 쉽지 않다. 민주노총이 전개하는 법제화 관련 총파업 투쟁에 참여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 하지만 단위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정규직 자신들의 고용불안정으로 돌아올 것을 두려워하여 비정규직 정규직화, 심지어는 불법파견 판정받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투쟁에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기본권을 부정하는 판례들이 축적되고 있다는 점에서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법제화가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지만, 정부-열우당과 자본측이 양보할 여지는 별로 커 보이지 않는다.

비정규법, 정부·여당·자본 양보 않을 것

기간제-파견제 관련 법개정 작업이 2월 임시국회로 미루어졌고, 뒤이어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관련 법제화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2005년에 이어 2006년도 비정규노동 문제가 공방의 핵심을 이룰 전망이다. 가속화되고 있는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과 조직화 작업이 이러한 비정규노동 관련 법제화를 둘러싼 공방 과정에서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다. 한편,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기본권의 법적 보장 노력이 난관에 봉착한다면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포함한 비정규노동자들의 불만이 전반적으로 고양된 권리의식과 함께 분출하여 민주노조운동 동학에 새로운 변인을 제공할 수도 있다.

조직화된 비정규노동자들이 민주노총으로 결합하고, 비정규노동조합의 전국적 조직체인 전비연이 민주노총 틀 속에서 활동하고, 전비연과 비정규노동조합들이 민주노총 총파업투쟁의 성공을 위해서 간부파업이나 전국순회투쟁을 벌이는 것은 민주노총과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아직 남아있음을 의미한다. 민주노조운동이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노동계급의 계급대표자로서 제 역할을 수행한다면 민주노조운동의 미래는 있다.
지난 1년여 기간 동안 비정규노동 관련 법제화를 둘러싸고 민주노총의 투쟁과 민주노동당의 의정활동은 정부와 열우당의 개악 시도를 저지한 것 이상의 성과가 있었다. 비정규노동 문제를 정규직을 비난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수단으로 악용하는 정부-열우당과 자본의 논리에 시민들은 더 이상 동의하지 않게 되었다. 정규직을 비난하고 정규직의 임금, 노동조건, 고용안정성을 훼손한다고 비정규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이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비정규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을 그 자체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일 것이다. 또한 비정규노동자들의 권리의식과 자신감이 크게 높아지고, 그 결과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과 조직화가 크게 진전되었고 일단 조직된 비정규노동조합들이 조직을 보전하는 사례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노동자 정규직화 혹은 조직화 활동에 적극 개입하는 등 비정규노동자 문제에 대한 현실적 해결책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모색하게 되었다.

“민주노조운동, 다시 비정규직 권리입법 투쟁”

비정규노동자 문제와 민주노조운동의 계급대표성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상천외한 묘수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안들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관건임은 분명하다. 첫째, 비정규 법제화 과정에서 정부-열우당-자본측 개악안이 비정규노동 문제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며 비정규노동자 문제와 권리입법 필요성을 꾸준히 사회적 쟁점화하여 시민들로 하여금 비정규 노동자 삶의 문제를 직시하도록 하는 노력이 지속되어야 하겠다. 결국 850만 비정규노동자 문제가 자신과 가족의 문제일 수 있으며, 자신과 가족의 삶의 시각에서 비정규노동자 문제를 조망하게 된다면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비정규 권리입법 노력은 더욱더 확고한 국민적 지지 위에서 긍정적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개별 기업 수준에서 정규직-비정규 노동자 이해관계 갈등을 극복하기 어렵다면, 산별노조 전환과 비정규노동자 직가입을 통해 노동계급 내적 연대를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가운데 비정규노동자 문제를 중장기적 전망 속에서 해결해 나가도록 할 수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입법 구호와 비정규노동자 연대 기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제 정파 현장조직들이 호응성 기제 역할을 되찾아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노동자 문제를 자기문제로 받아들이고 기업별노조의 시각을 벗어나서 산별노조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적극적이고 단합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정규노동자들의 자체 조직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점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으며, 이를 위해 민주노총과 정규직 노동조합들이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로부터 비정규노동자들을 방어하고 재정-인적 자원과 법률-공간 서비스 등을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계급운동을 향한 의미 있는 출발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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