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 위치한 특급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5년째 근무 중인 이효영(가명·28)씨는 최근 의사로부터 “무슨 일을 하는데 이렇게 스트레스를 많아 받아요?”라는 질문을 들어야 했다. 몸이 아파 병원을 찾으면 늘 ‘스트레스성’이라는 진단을 받는다는 이씨.

“5년 전 처음 호텔에 입사했을 때는 워낙 다양한 유형의 고개들을 상대하려다 보니 감당하기 힘들 만큼 스트레스를 받았죠. 물건값을 못 내겠다고 우기는 손님, 음식을 다 먹고 반값만 내겠다는 손님, 호텔 레스토랑에 와서 소주를 달라고 막무가내로 요구하는 손님,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손님 등 정말 상대하기 힘든 손님들도 많아요.”

여러 해 근무하다 보니 이제는 어떤 손님이 와도 크게 당황하지는 않는다는 그이지만, 다짜고짜 반말을 쓰거나 무시하는 말투의 손님들 때문에 적잖이 상처를 받는단다. “호텔 내 헬스클럽 회원들처럼, 호텔을 자주 찾는 손님의 경우 ‘저 직원 마음에 안 든다. 내보내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어요. 해당 직원은 말로 다 못할 만큼 스트레스와 상처를 받게 되죠. 실제로 한 직원은 손님들의 성화로 부서를 옮긴 경우도 있어요.”

"참고 또 참다보니, 느는 건 스트레스뿐"


연말연시 및 설날 특수를 맞아 서비스업 노동자들이 어느 때보다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과도한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감정노동’이란 우리나라에서는 2~3년 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로,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동자 스스로의 감정을 규제하고 통제하는 행위를 말한다.

호텔과 백화점 등 고객을 접대하는 직업의 노동자들이 대표적인 ‘감정노동자’에 해당하며, 그외에도 간호사, 교사, 창구업무 종사자, 승무원 등이 이에 해당한다. 감정노동자의 공통된 특징은 일을 위해 친절과 웃음을 강요받는다는 점이며, 해가 갈수록 감정노동자의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이런 일이나 하는 주제에’라는 말을 들어야 할 때는 정말 울컥하죠.” 서울 상계동에 위치한 백화점에서 6년째 의류판매 업무를 하고 있다는 김희숙(가명·27)씨 역시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고객 부주의로 망가진 옷을 들고 와서는 환불을 요구하는 손님도 있고, 심지어는 계산할 때 돈을 던지는 분도 있어요. 그럴 때면, 내가 왜 이런 무시를 받으며 일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죠.” 김씨는 스트레스로 인한 위장 장애를 앓고 있었다.

서울 면목동에 위치한 대형할인매장에서 계산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박은영(가명·45)씨는 대인기피증세까지 호소하고 있다.

“‘손님은 왕’이라던가, ‘고객만족’이라는 말을 워낙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이다보니, 손님들 스스로 ‘나는 서비스 받으러 온 사람이니, 잘들 모셔라’ 하는 인식이 강해요. 그러다 보니 많은 직원들이 아무 잘못 없이 욕설을 들어야 하고, 때로는 손님한테 맞기도 하죠. 저 역시 이런 분위기에서 수없이 많은 손님들을 상대하다 보니, 이제는 사람 자체가 싫고 피하게 되더라고요. 어쩌다 쉬는 날에도 외출을 안 해요. 사람들하고 부대끼는 것 자체가 싫어요.”

"노동강도 줄이고, 휴식 늘리는 것이 최선"

이렇듯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부작용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사회 내에 감정노동에 대한 공감대는 낮은 수준이다. 외국의 경우 80년대 초반부터 ‘감정노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돼 왔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제 막 첫발을 뗀 수준이다.

정진주 박사(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는 “서비스 업종이 다양해지고, 고객 감동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감정노동 자체를 없애기는 어렵다”며 “대신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의 크기를 줄이는 방향으로 대응책이 모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들어 일부 기업이 도입하고 있는 ‘직원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 등이 감정노동으로 인한 부작용을 완화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정 박사의 견해다.

정 박사는 “하루에 몇명의 손님을 상대하느냐, 즉 노동의 강도에 따라 노동자가 느끼는 감정노동의 강도 또한 달라진다”며 “업무량을 줄이고, 휴식시간 동안 편안한 휴식을 보장하는 방식의 대응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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