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노동의 여성 전담화는 많은 문제들을 낳고 있음에도 그 변화는 세상이 바뀌는 것에 비하면 매우 더디다.

그럼에도 대형 매장에서 부부가 함께 물건을 구입하고 시장바구니를 든 남자들의 모습은 이제 자연스럽고 아이 재롱잔치 참석을 위해 휴가를 쓰는 것도 제법 자연스러운 직장문화로 바뀌었다.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며 사는 여성들


그러한 의미에서 얼마 전, 컴백한 최진실의 망가진 모습으로 관심을 끌며 꽤 높은 시청율을 보였던 드라마 ‘장밋빛 인생’이 시사하는 바가 많다. 다분히 신파적인 내용이었음에도 그 드라마에 담긴 여성의 삶의 모습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부분부분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한 집, 어머니의 가출, 동생 뒷바라지와 희생, 가난한 며느리에 대한 시어머니의 시집살이, 홀로된 친정아버지에 대한 걱정, 집안을 책임질 줄 알았던 남동생의 배신(?), 남편의 외도, 위암 말기 그리고 죽음…. 콩나물 값 100원에 아등바등 살았던 맹순이가 겨우 집 장만하고 살만하니 암에 걸려 죽은 것이다. 그러나 그런 여성들의 삶은 그저 가족사의 일부일 뿐이며 사회에서는 ‘소중한 삶’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드라마의 제목인 ‘장밋빛 인생’이 담긴 의미를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우리는 남성들이 어쩌다 ‘쓰레기통에서 주워다 주는(드라마 속의 장면)’ 장미꽃에 감동하여 남편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며 장밋빛 인생을 꿈꾼다. 열심히 고생하고 희생하다 보면 광고 속의 ‘이영애’처럼 대형아파트와 냉장고에, 골프 치며 ‘손에 물 안 묻히며’ 살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다.

드라마 속에서 암에 걸린 부인을 위해 남편이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겨우 평소 부인이 하고 싶었던 일들 - 제주도여행에 데려다주는 것뿐이듯이 실제 남성들은 평소 ‘같이 물 묻혀가며’ 가사노동을 분담할 생각은 추호도 안한다. 이영애 같은 부인을 꿈꿀 뿐.

희생의 대가는 장밋빛 인생이 아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현모양처’의 대표적 인물로 교육받았던 신사임당이 48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로 죽으면서 남편에게 남긴 유언은 바로 ‘새장가 가지 말라’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남편은 어린 부인을 맞아 아마도(?)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고, 사임당의 아들 이율곡은 3년상을 했을 만큼 새어머니에 대해 효성이 극진했다는 이야기는 결국 죽은 이만 억울하다고 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현재의 행복을 미뤄가며 감수한 희생의 대가는 결코 장밋빛 인생이 되지 않는 주인공처럼.

여성에게는 일상이 바로 정치적인 투쟁과정이다. 남편에게 설거지를 요구하며 집안일을 일찍 끝내고 남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거나 손잡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산책하는 모습. 그러면서 부부가 나눌 수 있는 공통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행복한 노후생활을 만들어가는 모범답안이 아닐까. 그것은 자녀에게도 마찬가지이며 심각해지고 있는 가족해체를 현명하게 이기고 궁극적으로 저출산 대책의 최고의 전략이 될 것이다. 탑골공원의 할아버지들처럼 할머니들과의 공감대를 전혀 형성하지 못한 채 또 다른 남성만의 공간을 조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상의 행복 찾기를 위한 운동을 위해

이제 남성들도 경제적, 사회적으로 안정적 지위를 확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노후생활도 불확실하다. 혹자의 표현을 빌리면 “가부장적 병폐는 허허 웃으며 빨리 벗어버리는 것”이 대범한 남자들의 선택이며 남성들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운동의 일차적인 목적은 ‘행복’에 있으며 노동운동 또한 마찬가지이다. 행복은 내 옆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생활을 나누면서 살아가는 ‘일상의 행복 찾기’임을 죽는 순간에서야 절실해지는 것을 드라마 ‘장밋빛 인생’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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