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현상은 한국 사회를 불안으로 몰아넣었던 요인 중 하나였다. 아이는 태어나지 않는데, 수명은 길어져, 한국의 평균연령이 높아진다는 둥, 국가경쟁력이 약화된다는 둥의 신문보도를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당장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곧 닥칠 위험에 누구나 국가의 안위와 미래를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결혼한 여성이라면 우스갯소리로 국가적 위기극복을 위해 어서 아이를 낳으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저출산은 주로 합계출산율을 기초로 해서 이야기 된다. 합계출산율은 임신 가능 연령의 여성이 평생 동안 낳는 아이의 숫자를 말한다. 합계출산율이 1970년에는 4.53명이었다가 1980년 2.83명으로 급감했다. 이는 당시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정부의 가족계획이 성공(?)한 탓이다. 그러다가 결국 2003년 1.19명으로 감소했다. 간단히 계산하면, 2명이 결혼해서 1명만 낳는 셈이다.

신생아수에 근거한 출산율은 낮지 않아


그러나 현재 한국의 출산율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 합계출산율이 아닌 조출생율 즉 신생아수에 근거한 출산율에 따르면, 다른 국가에 비해 그리 낮은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출생율도 하락추세이며, 합계출산율을 고려할 때, 한국의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지도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연간 발생하는 인공임신중절이 35만590건에 달한다. 기혼여성은 연간 20만3,230건, 미혼여성은 14만7,360건으로 보고되었다. 2003년 신생아수가 49만3,471명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신생아수의 70% 정도의 아이가 태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인공임신중절이 대부분 불법 시술이기 때문에 이 수치는 과소 추정된 부분이 있다. 일반적으로 추정하는 연간 인공임신중절이 150만~200만건이라 할 때, 상상 이상으로 많은 아이들이 수술대 위에서 죽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왜 심각한 저출산 현상에도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지 못할까? 여러 가지 나름의 마음 아픈 사연들이 있을 것이다. 기혼여성의 경우 아이를 키우는데 필요한 돈이나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또한 아이를 낳을 때 발생하는 노동시장에서의 불평등과 불충분한 보육시설도 중요한 원인이 된다.

그러나 이 뿐만은 아니다. 2002년 기준으로 첫째 아의 경우 여아 100명당 남아 104.9명이 태어났다. 그리 큰 차이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셋째 아이 이상을 살펴보면, 그 수치는 충격적이다. 셋째 아이의 경우 여아 100명당 남아는 136.6명이 태어났다. 좀 과장되게 이야기 하자면, 여아 2명 태어날 때 남아는 3명 태어난 것이다. 삼신할머니가 일부러 남자아이만 점지해주지 않는 한, 인위적으로 남아를 출산했다는 말이 된다. 아직도 한국의 강력한 남아선호사상은 여성을 뱃속에서부터 차별대우 하게 한다. 

뱃속에서부터 차별받고 죽임당하는 여아

미혼여성의 경우에는 미혼이기 때문에 인공임신중절을 선택하게 된다. 이 중에는 아이를 진정으로 원하는 미혼여성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상당수는 인공임신중절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미혼모 즉 비혼모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데 있어 환경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동폭력이 친아버지로부터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실 어떤 환경이 아동에게 가장 좋은지는 모호하다. 그러나 우리는 엄마, 아빠가 있는 환경만이 최선인 것처럼 생각하고, 비혼모들을 몹쓸 짓을 하는 인간으로 손가락질한다. 아이를 낳아 키울 능력이 있고, 그에 상응하는 애정을 가지고 있다 해도 말이다.

이런 사실들 앞에서면 정말 한국이 저출산 국가가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사회에 뿌리 깊은 남아선호사상이 많은 여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사실 한국은 저출산 국가가 아니라 여아 저출산 국가라 하는 것이 더 적합한 말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