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2월2일부터 부산지역 민중단체들이 부산역 광장에서 시작한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 쟁취와 쌀 수입 개방 국회비준 무효화, 고 전용철 농민 살인 만행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국농성’ 천막을 12월30일 걷었습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는 산별연맹별로 부산역 농성을 계속하면서 시내 주요 도심에서 출근 선무방송과 퇴근 선전전을 수행했습니다. 민주노동당 부산시당은 임시운영위원회에서 홍보물 10만부 배포를 결의하고 전체 지역위원회가 주민배포에 나섰으며 청년단체들은 서면에서 매일 저녁 촛불행사를 계속했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의 몸에 불을 지른 특수고용 화물노동자 김동윤 열사 투쟁과 APEC반대-부시반대 투쟁 등 치열했던 한 해를 보내면서 부산지역 노동자·민중단체들은 부산역 천막을 잠시 걷은 그 날 저녁에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300여명의 회원들이 함께 한 송년 투쟁으로 2005년을 마무리했습니다.

그 동안 민주노총의 주간 파업집회 외에 민중연대는 서면 집회 후 열린우리당 당사 앞까지의 행진 2차례, 농민회가 준비한 상여를 놓고 진행한 부산시 경찰청 앞 집회 등 3차례의 야간 문화집회 및 횃불행진을 진행했습니다. 그 끝이 어디인지를 아직은 알 수 없으나 부산 한복판에서 찬바람과 싸우며 한 달 동안 이어진 ‘노무현 정권 심판’ 투쟁은 지난 수년 동안 죽음을 딛고 일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가열찬 투쟁과 함께 분명 새로운 정세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송년투쟁으로 2005년을 보내고


2005년은 우리 노동자 민중에게 어느 때 보다 힘든 한 해였습니다. IMF 경제위기 이후 위기극복을 내세우며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행해 온 자본과 정권이 농민들에게는 농산물 개방- 쌀 개방을, 노동자들에게는 정리해고-비정규직 확대-노동조합 무력화를 완력으로 밀어붙이고 있는데 반해 우리 노동자와 민중진영은 하나 되어 투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농민들은 소득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며 식량주권의 마지막 보루인 쌀을 빼앗긴 채 경찰의 폭력적 탄압으로 쓰러진 동료의 시신 앞에서 절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민주노총은 수년 동안 끌어왔던 비정규법 개정 막바지 싸움에서 권리보장 입법 쟁취를 목표로 세웠지만 제대로 된 총파업 한 번 실현하지 못한 채 개악저지 투쟁을 힘겹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 가지 성과를 냈다면 그것은 “민생파탄 폭력살인 노무현 정권 심판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노동자 농민이 정치적으로 하나 되어 투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미국과 내외 독점자본을 추종하여 한국경제의 신자유주의 세계시장 체제 편입에 앞장서고 있는 노무현 정부가 말로는 ‘참여’와 ‘개혁’을 부르짖지만 노동자 농민과는 반대편에 서 있으며 그의 정치는 노동자 농민에게 작은 것을 주면서 생색내고 큰 것을 등쳐서 뺏어가는 정치임을 분명히 깨달은 것입니다. 소중한 각성입니다. 또 한 번의 큰 투쟁, 세상을 바꾸는 민중들의 대투쟁이 없이는 노동자 민중들의 삶은 끝없는 내리막길을 벗어날 수 없는 세월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스스로를 다시 한 번 추스를 때입니다. 새해와 더불어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비정상적 조직상황 ‘비대위’를 극복하고 새 지도부를 구성하게 됩니다. 새 지도부는 혁신 지도부로서 과제를 떠안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은 복수노조 시대를 앞두고 지역연대를 복원하여 제대로 된 산별노조를 완성해야 하고 민주노동당은 당원을 활동당원으로 일으켜 세워 당원들의 당을 만들어야 합니다. 민주노총의 일선 간부들과 민주노동당의 활동가들은 당면 비정규직권리보장 입법쟁취 투쟁과 지방선거준비에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서도 올바른 지도력을 세우고 빠른 시간 안에 혁신의 과제들을 실천하는데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새해를 맞이하며 세 가지 희망을 빌어 봅니다.

세 가지 새해소망을 빌어 봅니다

하나, 자주와 평등, 노동해방 인간해방을 향해 함께 활동하는 동시대의 활동가로서 동지들 사이에 마음을 열어 더 많이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지난해를 돌아보며 일신하는 연초에 새 희망으로 민주노조운동의 힘을 회복하고 민중정치의 의지를 모아냅시다. 우리를 더 많이 힘들게 한 것은 노무현 정권과 한나라당, 보수언론들이 아니라 오히려 동지들 사이에 서로를 경원시한 우리 자신들이었습니다. 나부터 우리부터 돌아봅시다. 우리 편이 아니라고 어려움에 빠져 있는 동지 보기를 소 닭 보듯 하지는 않았는가? 생각이 다르다고 느끼는 동지들의 고민과 의견을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들어보고자 했던가?

둘, 중소영세사업장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하고 있는 일반노조 조합원으로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산별연맹을 뛰어넘어 더 많이 지역에서 단결하고 투쟁하기를 희망합니다. 새해에는 지역에서 더 많이 투쟁합시다. 지난 해 10월15일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부터 비정규직권리보장 입법쟁취를 위한 12월28일 민주노총 집중결의대회까지 상경투쟁을 간 것이 몇 번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전국의 일반노조 동지들은 하소연했습니다. 올라갈 돈도 사람도 없다고. 어떤 조직보다 대의에 충실한 금속노조 동지들조차 주저앉고 싶다고 했습니다. 1시간 전철권 안에 민주노총 조합원이 30만 명인데 간부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부산지역 전체로 겨우 차량 2, 3대 만들어 보태는 투쟁, 6시간 차 타고 가서 겨우 3시간 함께 하다 6시간을 또 타고 내려와야 하는 투쟁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민주노총이 무너진 지역연대를 복원하여 노동자들의 힘을 지역적으로 엮어내지 못한다면 온전한 산별이 만들어지는 그 날 까지 이러한 안타까운 일들이 반복될 것입니다. 아니 온전한 산별로 한 발도 전진하지 못할 것입니다.
셋,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 노동자 당원들이 당의 현장조직(당원협의회, 지역/공단위원회, 현장분회 등)으로 단결할 것을 희망합니다. 돈만 내고 표만 찍는 당원이 아니라 함께 공부하며 실천하는 노동자 당원, 일 마치고 쉽게 함께 모일 수 있는 당 활동 시스템, 당 활동 열심히 하는 것이 노동운동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되는 당 활동내용을 세우는 일입니다. 이것은 평당원 활동이 주류로 서야 할 10만 당원 시대를 개척하는데 노동자 당원들이 앞장서는 것입니다.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원의 절대 다수 비중일 수밖에 없는 착취당하고 억압당하는 노동자 당원들이 흩어져 있는 것은 노동자당의 진로에 재앙입니다. 말라버리는 흩어진 물방울로 있지 말고 뭉쳐서 시내가 되고 강이 되어 당을 더 낮은 곳으로 실어 나릅시다.

비정규직 투쟁을 시작으로 새해투쟁 준비

뜻밖에도 한나라당 덕분(?)에 비정규직권리보장 입법쟁취 투쟁이 내년 2월 임시국회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농민들에게서 쌀을 빼앗아 갔듯이 정부여당이 임시국회에서 한나라당과 손잡고 자본의 요구대로 폭거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지만 어쨌든 민주노총으로서는 투쟁의 전열을 재정비하고 의지를 충전하여 투쟁분위기를 일신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산별전환 총투표를 결의한 금속연맹 대의원대회의 소식을 들으며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가장 모범적으로 투쟁에 헌신해온 금속노조 동지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겠구나 했습니다. 하나같이 어려운 다른 산별연맹들에게도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전국 곳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 부산에서도 민주노총 부산본부와 민중연대의 부산역 농성천막은 잠시 걷었지만 계속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으로부터 더 큰 새해의 투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부산역에서 함께 시작했던 농성을 시청 앞으로 옮긴 부산지하철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의 고용승계 쟁취를 위한 시청 앞 광장 천막농성이 그것입니다. 지난 9월에 정리해고 되어 거리로 밀려난 지 4개월, 동지들은 오늘도 하루하루를 버티며 새해 투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광장 앞 가로수에는 이 겨울 생존권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애잔하면서도 결연한 의지가 겨울바람에 맞서고 있습니다.

“어머니, 나 부산시청에서 우리 가정 생존권 보장받고 돌아갈께요. 늦은 밤 혹시나 하고 골목 서성이지 마세요.”

-지하철 매표소 해고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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