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전두환 정권 시절의 ‘땡전뉴스’(9시 뉴스를 시작하자마자 전두환 대통령의 행적을 소개하는 뉴스가 시작되는 것을 비유하는 말)를 방불케 할 만큼 ‘땡황뉴스’가 계속되는 지금 온 국민이 자신의 처지와 입장에 따라 다양하게 황우석 사건을 학습하고 있다.

나처럼 줄기세포가 무엇이며 맞춤형환자줄기세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은 전문과학용어부터 학습해야 하고 난자 채취의 위험성과 난자 불법매매로부터 비롯된 생명윤리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한다. 또한 국가의 이익을 위해 여성의 몸이 도구적으로 활용되는 것에 대한 여성간의 극명한 차이, 그리고 그동안 정부의 과학연구지원정책의 허점 등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고 사건의 진도를 따라가기 위해 그야말로 온 국민이 언론에 의해 강압적(?)인 학습열풍에 휩싸여 있다.

황우석 사태를 지켜보며 드는 생각은


그런데 미래의 한국사회를 먹여살릴만한 연구집단으로 떠올랐던 황우석팀이 희대의 사기극을 주도한 집단으로 전락해가는 과정을 바라보며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궁금해졌다. 잘은 모르지만 언론보도에 의하면 황우석팀은 연구성과에 대한 조급증과 압박감에 시달리고 그 압박감은 연구원끼리 동료애보다는 경쟁자, 나아가 자기가 먼저 성과를 내지 않으면 남이 가로챌 수 있다는 지극히 속도와 경쟁의 승자독식의 법칙에 의해 지배되었던 것 같다. 게다가 정부와 언론의 절대적 지지와 총애는 조급한 성과주의를 부추기며 이를 위해 정당한 절차와 생명연구윤리, 나아가 과학자로서의 진실성까지 내팽개치게 만든 원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연구성과를 포장하기 위해 그동안 동원된 거짓말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고 최종 결과를 기다리는 지금 나에게 물어본다. 만일 네가 황우석처럼 온 국민의 관심사가 집중되고 너의 연구결과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려있다는 압박감을 받으면 너는 과학자로서의 초심을 담담하게 지켜가며 지금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라고 신실하게 말할 수 있겠냐고. 나의 연구실적에 대해 사람들이 실망하고 은밀히 무능력을 조소하며 다른 경쟁자를 내세우려해도 조급한 성과주의에 물들지 않고 성과를 위해 팀 내에 경쟁적인 분위기가 아니라 상호 배려와 돌봄의 연구분위기를 지켜갈 수 있겠냐고. 아직은 그렇다고 대답할지 모르지만 연구결과에 대해 절대 과대포장하거나 나의 실수를 숨기지 않고 정도를 지켜가겠다고 대답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승자독식의 법칙 아닌 성찰하는 자세를

그래서 황우석 사건 학습에 있어 우리가 빼놓지 않고 배워야 할 것은 성과와 경쟁의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우리 시대의 리더십이 갖춰야할 덕목은 무엇인가이다.

황우석을 비롯하여 올 한 해 양대노총의 간부급에서 터진 비리사건, 그리고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민주노총 내부의 갈등에서 보여준 폭력사태 등에서 시장논리와 동일한 승자독식의 법칙을 발견하는 것은 진보진영의 위기의 본질로 생각된다. 아무리 차별 없는 세상, 평등한 세상을 꿈꾼다 해도 그 이상을 실현하는 방법이 조급한 성과주의에 물들어 속도와 경쟁의식으로 점철된 승자독식의 법칙이어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목적을 위해 어떤 수단도 합리화되는 수단과 목적의 전도이며 세상은 더 이상 수단과 목적의 전도에 의한 목적달성에 대해 환호하지 않는다. 이는 황우석 사건이 증명한다.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조급한 성과주의와 경쟁의식에서 나와 우리를 건강하게 지켜나가는 방법은 공공의 목적으로 합리화되기 쉬운 개인적 욕심을 분별하고 자신의 한계를 돌아볼 줄 아는 성찰하는 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성장을 나의 목표달성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성장을 이끌어주는 디딤돌로 보는 배려와 돌봄의 철학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것이 나의 황우석 학습 효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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