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만에 만난 남북운수노동자들이 어색함을 풀고 스스럼없이 어울리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남이든, 북이든 노동자들은 노동자였다.

20일 오전 10시30분이 좀 넘은 시각 시작된 남북 운수노동자들의 만남은 60년만이라는 긴 시간 때문인지 좀처럼 어색한 분위기가 가시지 않았다. 남북 대표자들의 기조발언이 진행되는 동안 상봉 모임에 참석한 남북 대표자들의 표정에는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하지만 짧게 회의를 마친 뒤 11시30분께에 선죽교 견학을 하면서부터 남북 대표자들은 비로소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즐거운 표정으로 북쪽 안내원의 설명에 귀기울이고 기념촬영을 하는 남쪽 대표자들을, 북쪽 대표자들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어 이날 행사의 꽃인 정오 만찬이 시작됐다. 오전에 열린 대표자회의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진행됐다.


남북 대표자들은 둥그런 원탁에 둘러앉았고 최용수 조선운수수산직업동맹 위원장은 건배를 권하면서 다시 한번 남쪽 노동자들의 방문을 환영했다. 평양소주와 봉황맥주, 포도주 잔이 비워지기 무섭게 잔이 찼고 대표자들은 서로의 나이를 묻는 것부터 시작해 상대방의 가족과 사업장 얘기, 남쪽 사회 얘기로 자연스런 대화를 시작했다.

참가자들 모두가 돌아가면서 자기소개와 인사를 하면서 분위기는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남쪽 여느 노동자들의 술자리와 다르지 않았다. 남쪽 대표자들부터 먼저 나섰다.

“오늘 북쪽 땅으로 들어오면서, 마중 나온 최창만 직총 부위원장님을 보고 가슴이 찡했다. 눈물이 나올 뻔 했다. 지난 8월에도 뵌 적이 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인데도 보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의 힘으로 반드시 통일하자.”(김달식 화물연대 부의장)

“진짜 가슴 저리게 보고 싶었다. 이제는 떳떳하게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날을 위해 어여차(건배)”(민주버스노조 박사훈 사무처장)

이영달 철도노조 부산지역본부 통일위원장은 “남북으로 이어진 철로 위에서 기관차를 모는 것이 소원”이라며 분단산업 노동자로서의 희망을 말했다.


자신을 63세의 노인이라고 밝힌 북쪽 한 대표자는 ‘운수가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는 구호를 알고 있다는 듯 동조하고 나섰다. “운수가 세계를 움직이고, 세계를 멈출 수도 있다. 운수노동자들이 앞으로 나가야 통일이 온다.”

철도노동자 출신인 최창만 조선직업총동맹 부위원장은 “마치 소꿉시절 친구를 만난 느낌”이라며 “노동자라는 세 단어에 투쟁, 삶, 미래, 행복이 있음을 잊지 말자”고 강조했다. 최 부위원장 말에 한 남쪽 대표단이 “오빠, 화이팅”을 외쳐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됐다.

나태수 운수수산직업동맹 중앙위원은 “노래로 환영인사를 하고 싶다”며 열창을 시작했다. 남쪽 대표단은 처음 듣는 북쪽 혁명가였지만, 황수영 민주택시연맹 경기본부장이 ‘서울에서 평양까지’라는 노래로 화답했다. 북쪽 대표단은 “앗싸, 평양까지~”라는 추임새까지 넣으면서 함께 불렀다.

만찬에 이어 고려 성균관 견학을 마친 남쪽 대표자들은 손 흔드는 북쪽 대표단을 뒤로 한 채 북방한계선을 넘어 왔다. 개성까지 이어지는 철로에는 6·25 전쟁 당시 전소된 ‘철마’가 흉측한 모습 그대로 있었다.

이재우 아시아나항공노조 위원장은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북쪽 사람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실감했다”며 “노조에서 적극적인 통일사업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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