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명 전 조합원이 13일간 단식투쟁을 벌인 것은 노조투쟁에서 전무후무한 일 아니겠어요?” 강동화(41) 일반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은 가장 기억에 남는 투쟁에 대해 최근의 경상대 학생생활관 식당 해고자 복직투쟁을 주저 없이 꼽았다. 조합원 전원의 단식 결의가 쉽지 않았을 텐데. “결의가 모아진 것은 아니었고, 복직판결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움직이지 않으니, 아주머니들의 울분이 쌓인 거죠.” 본관1층으로 들어갔다가 그 자리에 눌러 앉았고, 계획에도 없던 단식에 들어갔던 것.

결국 경상대 생활관지회 조합원들은 5개월여 투쟁 끝에 대학측으로부터 고용보장과 해고기간 임금지급 등 복직을 쟁취했다. 전국의 비정규 투쟁의 현장에서 치열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성과가 없었던 점에 견줘, 12명 전 조합원의 ‘단결’ ‘투쟁’을 통한 승리의 의미는 대단히 크다.

전 조합원의 ‘단식’ 통해 얻은 결실…‘복직’


강 위원장은 지노위의 복직판결을 대학측이 수용하라며 두 차례 단식을 했다. 단식 과정에서도 꾸준한 상담과 회의 주재는 기본이었다. “일반노조를 찾아 상담하시는 분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마지막으로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동부에 갔다가, 한국노총 들렀다가 노무사를 찾다가 마지막으로 일반노조를 찾게 되는 게 일반적인 경로다. 문제는 여기서 비롯된다.

“상황이 극도로 안 좋거나, 시간이 촉박하거나 해서 찾아올 때가 많아 수월한 일처리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안타까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죠.” 당장 내일자로 해고인데, 오늘 찾아와서 상담을 할 때는 진땀이 흐를 수밖에 없다.

강 위원장은 일반노조 활동을 하며 안타까운 상황을 너무나 자주 본다. 노조활동에 대한 의욕이 앞서 사고치는 경우도 있다. 분을 삭이지 못하고 상담하고 힘을 얻고 가서는 회사에다 ‘민주노총 갔다 왔다’는 얘기를 섣불리 해서 바로 해고되는 경우다. 허탈하다. 3~6개월 파견인 청소용역 등은 당장 해고가 눈에 보이지만 일반노조로서도 별다른 방법이 없어 책임 담보가 어렵다.

“본인이 각오하고 결의해야 되는 측면이 높은데, 쉽지 않죠.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붙어봅시다’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 많아요.”

중소영세 사업장의 근로조건과 임금, 노조의 조직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는 현실. 그러나 경남의 일반노조는 다른 일반노조들의 상황에 비춰 그런대로 잘 꾸려지고 있는 편이다. 지회 자체의 간부회의나 임단협 교섭 등을 꾸준히 하는 곳이 총 35개 지회 가운데 절반 정도다. 롯데백화점 비정규, 창원CC, 재활용종합단지, 마산상용직 등 40여명 규모의 지회가 대표적인 경우다.

이런 배경에는 경남의 일반노조 결성 과정이 잘 보여준다. 2000년 부산일반노조가 만들어지면서 경남지역 활동가들의 고민은 시작됐다. 다음해 8월 ‘마창지역일반노조’를 만들었고, 2년차에 ‘경남일반노조’로, 지난해에는 ‘일반노조’로 명칭을 바꿔 5년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일반노조의 결성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노조가 대중조직인데 더 고민할 필요 뭐가 있겠어요. 논쟁도 별로 없었어요. 일단 만들고 문제 시 총회를 열어 고치자는 생각이었죠.” 부산을 모범 사례로 해 뺄 건 빼고 더할 건 더하는 방식. 15명의 발기인들은 기업별노조의 한계를 넘어설 조직운영 방식으로 초기 ‘현장위원회’ 편제를 받아들였다. 재정과 교섭도 중앙집중 방식을 채택했고, 지회에는 조합비의 30%를 할당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하지만 ‘공동위원장제’는 애초부터 ‘단일위원장제’로 채택했다.

발기인 15명은 지역 노조활동 경험자들로 일은 알아서 척척 맞춰서 하게 되었다. ‘실업극복국민운동 경남본부’에서 일하던 그는 당시 관장이었던 전창현 초대 일반노조 위원장(현 민주노총 경남본부 사무처장)의 권유로 일반노조 활동(정책기획부장)에 몸담았다.

“10년 짱 박혀 있었으면 이제 일 좀 해야 안되나?” 당시 주변 지인들이 강 위원장을 수면위로 끌어내면서 하는 말이었다.

“10년 '짱' 박혔으니 이제 일 좀 해야지”


‘일반노조’가 노조활동의 처음이자 유일하다고 말하는 강 위원장. 별로 내세울 경력도 없다며 쑥스러워 한다. 그런데 10년여 공장에서 일만 할 수 있었기에 현재의 그가 존재하리라. “노동운동에 앞서 노동자가 되기 위해 직장생활만 계속했어요. 노동자가 되고, 노동자와 어울리는 것이 우선이었죠. 딱히 노조나 현장 활동 한 것은 없었어요. 일만 10년여 한 거죠.”

강 위원장은 느긋한 성격이다. 선반을 돌리다 어깨가 아파서 잠을 못잤던 고통, 하루 종일 서서 일하면서 다리가 당기는 증세. 너무나 자연스러운 ‘노동자 되기’의 과정이었고, 노동자들은 평생을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경남 진주가 고향인 강 위원장은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녔고, 86년 ‘건대 사건’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89년 4학년을 중퇴한 그는 ‘이전팀’과 함께 창원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시대는 사상과 이념의 혼란이 극에 달한 시기. 소위 현장 투신을 했던 많은 학출들이 우수수 빠져 나갔다.

사상·이념에 대한 혼란 속에서도 그는 고민은 별로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라는 것이 동구권의 체제보다는 내 주위의 삶과 인간적인 행복을 느끼는 것이 판단 기준이었어요. 당시 현장을 떠나는 이들은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거나 운동에 대한 전망이 없었던 겁니다.” 동구권 몰락을 통한 사상의 혼란은 겉으로의 주장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학생들은 현장투신하면서 5년 뒤면 세상이 바뀌겠다는 꿈을 꾸었죠. 애초에 목표 자체가 조급했죠. 평생을 다해도 못할 수 있는 것인데 말이에요.” 94년 김일성 사망과 함께 불어 닥친 공안정국. ‘구국전위’ 사건이 벌어졌던 당시 ‘일심단결’ 사건에 연루된 그는 2년여 수배 끝에 96년 중반 수감됐다. 2년의 감방 생활 뒤 98년부터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공문서 위조도 안되는 상황. 대공장은 더더욱 안되고, 중소 협력업체 등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는 시점이었다.

지회 간부 ‘발굴 육성’에 초점

다시 이야기는 ‘일반노조’로 돌아갔다. 경남일반노조에서 일반노조로 명칭을 변경한 이유는 뭘까? 전국에 걸쳐 있는 사업장. 교섭을 할 때 경남을 벗어난 사업장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 강남태양열과 영남아이티닷컴 등 전국 곳곳에 사업장을 둔 경우 등이 문제였다. “이후 조직발전의 전망을 봤을 때도 ‘하나의 조직’으로 언젠가는 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문제의식 때문에 ‘경남’이란 지역명칭을 빼버렸죠.”

일반노조의 경우, 민주노총 경남본부와 각 연맹 간에 협조체계가 잘 갖춰져 있기로 유명하다. 지역연맹에서는 현실적으로 금속, 화섬 등 연맹이 책임질 수 없는 단위는 일반노조로 보낸다. 서로서로 보이지 않는 합의선이 존재하는 것. 중소영세비정규 사업장은 조직을 만들기도 어렵지만 유지하는 것이 더 큰 일이다. 그 틀을 지키지 않아 사업장이 깨진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경남이 복잡하다고 하지만 서로 인정하고, 패권의식 같은 것은 없어요. 그래서 일처리 하기도 수월하죠.”

그래도 조직 사업장이 겹쳐서 나타나는 문제는 있을 터. 공공연맹의 경우 일반노조와 조직대상이 겹치는 영역이 많다. 마산예술단노조도 처음에는 공공 소속이었지만 투쟁 과정에서 일반노조로 조직을 변경하기도 했다. “당시 공공연맹은 ‘그러면 안된다’고 하던데, 우리가 ‘펌프질’ 한 것도 아니고, 조합원들이 그렇게 하겠다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조합(원) 스스로의 판단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진주CC의 경우, 올 8월에 공공으로 갔어요. ‘잘했다. 잘해라.’ 이렇게 하는 거죠. 우리도 연맹으로 가는 것 잡지 않습니다.”

일반노조는 올 8월 현재 35개 사업장 1,100여명이 소속돼 있다. 자치단체, 휴게소 등 공공분야가 22개 사업장으로 가장 많고, 레미콘 사업장이 8곳, 민간서비스 사업장이 3곳 등이다. 조직확대가 꾸준히 진행되면서 신규사업장을 조직하다 보니, 기존 사업장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게 현실. 기존 사업장의 교육사업이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부분도 있다. 전국의 일반노조 상황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올해는 앞에서 돈벌고 뒤에서 다 까먹으면서 실질적인 조직사업이 안 되는 상황입니다. 내년부터는 정상적 노조활동 체계를 만들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간부들이 1년 내내 투쟁 현장 쫓아다니다 보니 피로도도 높을 것이다. “활동가의 피로감을 풀 방법은 딱히 없습니다. 그리 살다가 죽어야지.” 웃음짓는 강 위원장은 다만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에는 신규사업장 발굴보다 노조간부를 발굴 육성하는데 초점을 맞춰 활동기반을 만드는 사업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상근자 중심 사업을 지회 간부들 중심으로 진행하는 게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중소영세비정규직의 희망이 될 수 있는 조직적 기반을 만들기 위해 단순히 규모만 키운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일반노조의 상근자는 7명. 내년에 3명을 더 채용할 예정이다. 문제는 돈이다. “재정보다 일단 사고를 치고 봐야죠. 월 500만원 더 들어가는데, 한 300명 더 조직하면 되지 않을까요.” 일반노조는 매년 적자예산을 짜고 있다고 했다.

첫해 2천만원에서 다음해는 1억5천만원. 당시에도 “정신없는 놈들” 소리를 들었지만 조직사업을 하니 되더라는 설명이다. “작년에는 3억원 예산을 맞췄고, 올해도 5억원 예산을 짰는데, 현재 4억5천만원이 집행됐다. 내년에는 8억원을 짜도 될 겁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말…‘현장’

쓸데없는 고민을 키우지 않는 강 위원장의 느긋한 성격을 다시 보여주는 말이다. 4년여 일반노조 활동과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민주노총이 위기라고 하지만, 민주노총 간부들의 위기입니다. 노조활동이란 게 조합원의 정서, 생각을 바탕으로 사업과 정책을 입안해야 하는데, 상층 간부들을 보면 대부분이 현장에서 떨어진 기간이 10여년은 기본입니다.” 그렇기에 현장의 정서와 생각에 기반하지 않는 정책이 나온다는 것. 간부들의 자기혁신. 조합원과의 친밀도와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노력이 배가되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일반노조를 위해 현장으로 다시 들어갈 고민을 하고 있는 강 위원장. 새로운 개척의 자세로 제2의 투신을 해야 노조활동이 제대로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민주노총이 한국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몇몇 간부들이 만든 조직이 아니기에 쉽게 흔들릴 조직이 아닙니다. 다만 간부들이 조직을 위해 복무,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민주노총이 내 조직이란 생각은 버려야 조직이 발전합니다.”

내년 1월 중순 일반노조는 ‘임원선거’를 통해 일반노조 위원장을 재선출할 예정이다. 올 9월부터 시작된 ‘직무대행’의 딱지를 떼고, 위원장으로서 막중한 역할을 맡게 될지, 아니면 다시 현장으로 돌아갈지, 강 위원장은 고민중이다. “‘현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노조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어느 길을 선택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일반노조 임원들과 많은 조합원들은 그가 위원장의 소임을 다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건 ‘현장의 힘’을 복원하는데 중점이 맞춰질 것이다. 민들레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뿌리를 내릴 ‘일반노조’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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