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건대 80년대(물론 여기서 80년대는 90년대 초반까지를 의미한다. 강고하고 야만적인 군사독재체제 아래서 목숨을 건 저항과 활화산 같이 터져나오는 대중투쟁의 역동성, 국가보안법의 서슬퍼런 사형, 무기징역에 맞서 ‘이적단체’를 결성하고 사상적 금기에 도전하던, 열정과 투지가 넘쳐나던 시기를 가리킨다.)는 이미 과거의 역사가 된 지 오래지만, 우리 모두의 사유와 행동을 여전히 사로잡고 있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너무도 찬란했기에,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도 황망하게 떠나갔기에 그 잔영이 살아 있는 우리를 아직도 지배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조류들은 태어날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을 자신의 보호자로 생각하며, 사람도 어렸을 때 받은 감성적, 이성적 영향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한다. 우리에게 80년대는 우리의 잠재의식을 긍적적이며 동시에 부정적으로 규정한 사건이라 생각된다. 80년대에 습득한 ‘익숙한 것들’은 무엇이며 우리는 왜 그것들과 결별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해악적 정파운동의 뿌리 - 형이상학적 사유

모든 것을 이야기하지만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민주노총 탄생 시점부터 본격화 된, 기업별 체계를 극복한 산별 건설, 정치세력화란 말이 있다.

산별, 정치세력화는 ‘전가의 보도’였다. 96~97년 노개투 총파업을 마치면서 당시 민주노총 지도부는 산별 정치세력화로 김영삼 정권을 심판하자며 대중들을 기만하였다.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는 금속산별 건설 논의와 진행과정은 산별, 정치세력화라는 ‘전가의 보도’로, 80년대 유례없는 격력한 투쟁을 통해서 성장해 온 한국 노동운동의 주력부대인 금속 노동자들을 갈갈이 찢어 놓았다. 금속연맹의 핵심사업은 대공장의 금속노조 가입이며, 금속노조의 핵심사업도 대공장의 금속노조 가입 촉구로 이어지면서 철의 금속 노동자들은 '종이호랑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각국의 노동운동과 정치세력화는 다양한 경로가 있으며, 그 구체적 실현 방안은 그 나라의 구체적 실정에 맞게 창조적 힘을 아래로부터 모아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박제화 된 독일의 경험을 끌어와 생생하게 용솟음치는 운동을 압살시켜버리고 말았다.

그 결과는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금속노동자 대오와, 대중과 현실에서 유리된 민주노동당이다. 생생하게 역동치는 현실과 살아 움직이는 대중들을 사민주의, 전투적 조합주의,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정통 맑스주의라는 관념적 잣대로 재단하고 그것은 결국 현실과 대중으로부터 유리된 해악적 정파로 귀결되었다.

이론은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고찰되고 재생성되지 않으면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 관념적 이론으로 현실 재단하기, 가장 먼저 결별해야 할 익숙한 것들이다.

일국적, 민족주의적 관점 - 우물 안 개구리

“현대의 산업화 된 세계에서, 부르조아 자본은 이전만큼 아니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그러나 자본의 정체는 깡그리 변했다. 그것은 더이상 자신을 낳아준 민족국가의 보호와 도움에 의존하지 않는다. 물론 여전히 민족국가의 구조를 이용하기는 하지만, 자본의 힘과 에너지는 다른 곳에 존재한다.”

- 미요시 마사오, <국경 없는 세계인가? 식민주의에서 초국적주의로>

80년대를 지배했던 반공이데올로기가 대중투쟁에 의해서 무너진 이후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 등장한 것이 ‘국가 경쟁력 강화’, ‘무한 경쟁론’이었다. 90년에 골리앗 점거투쟁으로 한국노동자운동의 영웅적 기개를 보여주었던 현대중공업 노조가 95년에 자본과 도장찍은 무쟁의 선언은 국가 경쟁력 강화 이데올로기에 대한 항복이었다. 투쟁 한번 제대로 해보지 않고 이데올로기 공격에 스스로 무릎꿇은 현대중공업 노조는 결국 2004년 금속연맹에서 제명 당하고 말았다.

80년대 한국경제의 규모는 세계 60위권이었으나 2005년 지금 한국 경제규모는 세계 10위권에 올라섰다. 또한 삼성, 현대, 엘지 등 한국의 재벌들은 이미 초국적 자본이 되었으며, 국내 상황에 결정적으로 좌우되지 않게 되었다.

일국에 갇힌 고정된 표적을 맞추는 수준이 80년대 운동이었다면, 지금은 세계화 된 무대에서 움직이는 표적을 맞추는 상황으로 급격히 변화되었다.

그러나 80년대에 익숙한 우리는 일국차원에 여전히 머무른 상태에서 고정된 표적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 방법론적 의견차이 수준에 머물러 있다. 산별 - 정치세력화, 사민주의로 맞출 것인가?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으로, 아니면 전투적 조합주의로, 그것도 아니면 정통맑스주의, 트로츠키주의로….

‘조사 없이 발언권 없다’는 말이 있다. 우리 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한국경제의 변화, 발전, 세계경제에서의 위상 변화를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투쟁방안을 찾는 것은 우리 운동의 활로를 여는 데 있어서 결정적이다. 노사정 참여냐, 노사정 참여 반대냐, 즉각 퇴진이냐, 선거 후 퇴진이냐 수준으로는 한 발자욱도 더 나아갈 수 없다.

국가 경쟁력 강화에 묶인 일국적 노동운동, 우리가 결별해야할 익숙한 것들이다.

당위와 명분으로 지금 여기를 죽이는 운동

지난 10월말에 울산 북구에서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거의 시가전을 방불케 하던 울산건설플랜트 투쟁과, 2년여가 넘도록 처절히 고립되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에 대해서, 민주노동당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었다.

그런데 투표일이 임박해오고, 여론조사 결과 민주노동당 후보가 불리하게 나오자, 민주노동당은 당대표, 사무총장, 현역 국회의원, 최고위원 등 300여명이 울산에 내려와 선거운동을 지원하였다. 그야말로 울산 북구는 황색물결이었다. 투표 전날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 5공장 불법파견철폐투쟁단이 꾸려 나가고 있는 포장마차에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최고위원들이 찾아와서 한 표를 호소하고 있었다.

몇몇 동지들이 어떻게 그런 후보를 뽑아놓고 지지를 부탁하느냐면서 항의하자 후보는 문제 있는 거 인정한다면서, 민주노동당을 보아서라도 찍어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후보와 당이 분리될 수 있단 말인가? 선거고, 민주노총 총파업이고, 정규직 비정규직 연대투쟁이고, 당위와 명분만 있었지, 아래로부터의 감동적 설득과 지도부의 모범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벼락치기로 당원을 가입시켜 내부경선에서만 이기기만 하면 모든 게 괜찮다는 '쪽수'와 힘의 논리가 판을 치고 있다.

전두환, 노태우 군사독재자들이 80년 5월 광주에서 피의 살육을 자행하여, 권력을 찬탈하고 총과 칼로 한국땅을 겨울공화국으로 만들었지만 아래로부터 한발 한발 쌓아올린 투쟁의 불길은 불과 7년만에 87년 6월 민주화 대항쟁과 87년 7,8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폭발하였다.

민주노동당을 통한 집권시나리오에 눈이 멀어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노동자, 민중들의 처절한 투쟁을 오로지 자신들의 정치스케줄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자들과 우리는 결별하여야 한다. 여기 시를 하나 소개한다.


돌맹이 하나

하늘과 땅 사이에
바람 한점 없고 답답하여라
숨이 막히고 가슴이 미어지던 날
친구와 나 제방을 걸으며
돌맹이 하나 되자고 했다
강물 위에 파문 하나 자그맣게 내고
이내 가라 앉고말
그런 돌맹이 하나

날 저물어 컴컴한 밤
친구와 나 밤길을 걸으며
불씨 하나 되자고 했다
풀밭에서 개똥벌레쯤으로나 깜박이다가
새날이 오면 금세 사라지고말
그런 불씨 하나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돌에 실릴 역사의 무게 그 얼마일 거냐고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불이 밀어낼 어둠의 영역 그 얼마일 거냐고
죽음 하나 같이 할 벗하나 있음에
나 그것으로 자랑스러웠다.

- 김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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