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에서 진주를 거쳐 1시간여만에 ‘삼천포’로 빠졌다. 곁길로 빠진 것도, 일을 엉뚱하게 그르친 것도 아니었다. 기자의 목적지는 정확히 경남 사천시 삼천포 항이었다. 인구 11만여명의 아담한 중소도시. 16일 오후, 삼천포 버스터미널에 내려 곧장 항구로 향했다. 비릿한 냄새와 바람을 따라 걸으니, 2~3백여 척의 배들이 묶여 있는 포구가 시야로 들어온다.

마주치는 어민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없다. 어시장 상인들의 표정에도 웃음을 찾아볼 수가 없다. 깊은 시름이 깊게 패인 주름을 만들었는지, 깊은 주름이 더 깊은 시름을 부르는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듯 보인다.


“(고데구리 어선) 정리 이후 어떻게들 지내세요.”
“논다 아입니까.”

당연한 얘길 왜 묻느냐는 표정이다.
“단속 땜에 (바다에) 못 나간 지 오래요. 묵고 살 대책을 세워져야 안 됩니까.”
낮술에 거나하게 취한 고데구리 어부는 한탄을 쏟아냈다. “(집에) 쌀도 없어요.”


‘어민들의 좌절’ 낮술에 화투판 전전

‘사천·남해어민회’가 자리 잡은 포구의 컨테이너 박스. 문고리 옆 ‘소형기선저인망(고데구리) 정리사업’ 신청 관련 공고문은 찢겨져 나갔다. 문을 열었다. 십수어명의 어부들이 몇패로 나뉘어 화투판을 벌이고 있다. 대낮부터 이게 웬일인가? 무료한 나날, 이렇게라도 시간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이미 반 포기 상태입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보상금은 적고, 빚잔치 하면 그뿐인기라예. 어선 날리고 어민이 뭘 하겠능교.” 박추성 어민회 회장은 사무실이 아닌 다방으로 기자의 손을 끌었다. “(국회, 해양수산부 가서) ‘살려 주십시오.’ 통 사정을 해도 도대체가 어민들 사정 이해를 못해줍디다. 대정부 투쟁할 힘도 없어요. 힘도.”

이곳 사천과 남해의 고데구리 정리어선은 350여척. 인근 통영은 500여척이다. 정부의 보상가가 이미 나왔고, 연말까지 각 어민들에게 돈이 지급될 예정이다. 그러나 수협에서 빚을 뗀 나머지가 어민들에게 전달된다. “보상으로 돈 한푼 만지지도 못하고 배는 배대로 잃고, 어민들이 뭘 하겠어요?” 가령 5년된 3톤짜리 강화플라스틱(FRP) 배의 경우, 감정가는 톤당 4백만원으로 해서 1,200만원. 여기에 어업허가 비용으로 1,600여만원이 지급된다.

그러나 이 배를 구입하는데 든 비용은 약 3천여만원이다. 결국 배값 마련하느라 수천만원의 빚을 낸 어민들의 수중에 떨어지는 돈은 한 푼도 없게 된다. 적자 보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인 판이다. 빈털터리에 배만 날리게 된 어민들은 자포자기 심리다.

통발, 자망 등 용도를 변경하려면 어구를 갖추는 데 최소 1천만원 이상이 들어간다. 이마저 어장이 좁아 다른 어민들과 사생결단의 싸움을 각오해야 한다. 어장이 좁다 보니 서로 구역을 침범하다 보면 어구 자르고, 언성이 높아지면서 대판 싸움이 벌어진다. 생선이 많이 나는 자리에는 자망, 통발 등 폐어구들이 가득 깔려 있다는 게 어민들의 설명이다. 부가가치가 높은 고급 어종은 암초 등에 많았지만 지금은 ‘씨가 마를’ 정도다.

부산과 사정은 비슷했다. 고데구리와 비슷한 조업방식인 ‘새우조망’으로 허가변경도 이뤄졌다는데, 마냥 넋 놓고 있을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그거는 고기잡이 미끼를 잡기 위한 방법입니더. 그나마 허가가 한정되어 있고, 단속에 한번이라도 걸린 이들에게는 안줘요.” 현재 삼천포에는 40여척의 배들이 새우조망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인근 화력발전소와 조선소에 일용직으로 들어가거나 멸치잡이 큰배에 선원으로 재취업 하거나, 잠수기도 타는 등 살아가려 발버둥치는 어민들도 있다. 그러나 일자리가 꾸준히 있는 것도 아니다. “어민 보고 뭍에서 일하라는 것은 일반직장 다니는 사람한테 배타라는 것도 똑 같아요. 그기 어디 말같이 쉽소?”

고기잡이 그물을 당겨야 하는 어부의 손은 화투장으로 향해 있다. 뱃전에서 잡은 생선으로 회를 쳐 초장에 찍어 먹어야 할 어민의 손은 깡소주를 들이킨다. “할 일이 없으니 화투치고 술 마시고, 부인들은 나가서 식당일 하고, 완전히 생활이 엉망입니더.”


“오늘 마수걸이도 아직 못했소.”

지난해부터 고데구리가 금지되면서 고데구리 어민들만 타격을 입는 것이 아니었다. 어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것도 중국산 수입품이 다수다. 여수, 통영 등지에서 차로 실어온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냉동생선까지. 다양한 어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싱싱한 생선이 공급되는 것도 아니니, 육지의 상인들이나 시민들이 애써 이곳을 찾을 이유가 없다.

“오늘은 아직 마수걸이도 못했소.” 새벽3시에 나와 오후2시에 이르도록 하나도 못 팔았다니. 곰장어, 납세미 등 생선을 말리고 있는 어시장의 한 아주머니의 한숨은 절로 나올 뿐이다. “이기 참말로 뭔짓인지 몰르겄소.” 예전에는 도매도 하면서 하루 20~30만원 매출을 올리기도 했지만 요즘은 하루 2만원 벌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삼천포 시장이 죽었지 뭐. 옛날에는 도매도 하고 했는데. (요즘에는) 그기 없으니….” 고데구리 어선이 묶이면서 나타난 일이었다. 예전에는 인근 진주 등지에서 상인들이 와서 많이 사갔는데 이제 발길은 뜸하다. 포구에서 동고동락 하는 처지. 상인들에게 고데구리 어민들의 근황을 물었다. “(고데구리 어민들이) 고기 잡으러도 못가고 불쌍치.” “놈팽이들 아이가. 다들. 맨날(매일) 술 처먹고.”

잠수배에서 나오고 있는 환갑을 넘긴 어민을 만났다. “예전에 내도 고데구리 했는데 불쌍타니까. 우리도 좋을 기 없지. 어부들이 고기 잡아 와서, 가족들이 그 생선 팔고, 포구에서 술 한잔 하고, 밥 사묵고 해야 하는데, 지금은 동네에 활기가 없는 기라.”

항구에서 건어물을 말리고 있는 50대의 한 어민. 그는 통발어선을 몬다고 했다. 통발은 잘 되냐고 물었다. “정부에서 준 그물, 그거로는 안된다카이.” 연안에서는 도저히 잡히지가 않아서 4~5시간을 나가 일본 접경지역까지 가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고데구리 어민들에 대한 생각도 물었다. “어구 갖추는 데 수천만원인데 그걸 어찌 감당해요. 그라고 자망, 통발 허가도 안 내주고, 뱃놈이 또 뭍에 일이 안 맞지.” 어민들과 상인들은 다들 정박해 있는 배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어민들과 이야기 하는 내내 왕성한 식욕으로 생선 내장을 섭취하는 갈매기들. 그래도 얻어먹을 떡고물이라도 있는 갈매기들의 비상이 부러울 지경이다. 항구 옆으로 보이는 삼천포대교를 건너면 바로 남해다. 그곳을 바라보고 오른쪽은 광양만, 왼쪽은 통영과 거제다. 이른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중심이 되는 곳. 그러나 푸른 바다, 넘실대는 파도는 어민들의 시름만 날라줄 뿐이다. 화력발전소는 진분을 날리고, 해안가 공단 건설로 인한 준설과 매립은 어장을 갈수록 황폐화시키고 있다.


공단 건설, 갯벌 매립, 화력발전소 오염

고기들의 산란장소인 갯벌은 매립으로 신음하고 있다. 인근 남해의 경우, 어민들의 삶의 터전으로 갯벌이 잘 되어 있었다. 그러나 광양제철로 큰 배들이 들어오기 위해 바다모래를 준설하면서 어장은 황폐화 되었다. 남해군 4개면 18개 어촌계 어민들은 흙탕물과 소음 등으로 피해를 입었다며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어민들은 준설공사 강행에 대해 해상시위 등 실력으로 저지하겠다는 방침이다.

낙동강 하구 준설로 진해만의 거제시 어민들도 반발하고 있다. 모처럼 돌아온 대구의 회유 생태계가 또다시 파괴된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87년 둑 조성 뒤 대구가 사라졌다가 몇년 뒤 겨우 인공수정란 방류 등을 통해 대구가 겨우 회귀했던 경험 때문이다.

인근 마산의 경우, 마창환경운동연합이 ‘마산만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마산시와 환경부가 마산만 관리소홀로 마산만의 오염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환경단체들은 마산만 서항 매립 계획은 진해 용원과 웅동지역 등 신항만건설 매립지역처럼 모기와 파리떼의 습격이 불을 보듯 뻔하다고 경고한다. 재앙을 부르는 매립. 상습침수는 물론 마산만과 진해만 일대의 잦은 적조와 수산물 감소, 어패류 오염은 심각한 상황. 원인규명 없이 개발을 진행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삼천포항도 지난 80년대 화력발전소 건설과 함께 홍역을 치뤘다. 삼천포 화력발전소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석탄 화력발전소로 연간 7만여톤의 대기오염 물질을 내뿜고 있다. 온배수, 송전탑 등도 각종 오염의 원인이 되고 있다. 사천환경운동연합 등은 화력발전소로 인한 오염 피해 방지를 요구, 2002년경 황산화물 배출 절감을 위한 탈황시설 설치를 강제했다.

그러나 오염은 계속되고 있다. 올 10월 국회 산자위 소속 선병렬 의원(열린우리당)이 한전 국감에서 밝힌 주요 발전시설별 상반기 배출허용기준 초과현황에 따르면, 삼천포화력은 546회를 기록했다. 중부발전 서천화력의 4,438회 바로 다음인 것이다.

“저 화력발전소 진분가루 때문에 10년여 전부터 조개고, 고기고 싹 없어 졌어요.”
“진분가루가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데, 그게 어디로 갔겠어요. 그 밑은 시꺼매요.”

삼천포 화력발전소 인근 수 킬로미터는 아예 가지도 않는다는 어민들. 여전히 삼천포 화력발전소는 희뿌연 연기를 계속 내뿜고 있었다.

고데구리 어민, 그 다음은?

등대를 지나 다시 항구로 돌아오는 길. 항구에 정박해 있는 작은 배들은 정처 없이 묶여 있고, 59톤의 쌍끌이 중형기선저인망 배는 물살을 가르며 바다로 나아간다. ‘예금, 위탁은 수협으로’를 외치는 삼천포수협 위판장은 이제 큰 배들이 실어 나르는 어패류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겨울 찬바람 맞으며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는 생선은 먹기 좋게 마를 것이다. 그러나 얼어붙은 영세어민의 마음은 풀어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매서운 찬바람에 휑한 항구의 겨울. 어민들의 올 겨울은 더욱 혹독하리라. 고데구리 영세어민, 그 다음에 울 어민은 누구인가. 바다는 말이 없고, 파도는 한없이 출렁이기만 할 뿐이었다. 갑갑한 속을 달랠 요량으로 물메기탕을 찾았지만 시원함은 만끽할 수 없었다.

사라지는 연안지선 떠도는 영세어민
                                                                                            윤미숙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


흔히 개발과 보존의 논리는 맞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한다. 더 나아가서 둘의 상반된 논리는 종종 발전과 후퇴의 개념으로 치닫기도 한다. 그러나 결론을 말해 사실은 전혀 ‘아니오’이다. 얼핏 있을 수 있는 푸념이나,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본다면 개발‘군’과 보존‘녀’는 나란히 함께 가야 할 부부와도 같은 의미이다.


아름다운 해안선을 밀어내고 매립을 해서 그 땅의 이용가치를 최대화, 막대한 이윤을 추구하려는 개발업자에게 보존은 다만 귀찮은 그 무엇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해안선 언저리에 기대서 살아 온 사람들에게 이는 생존권의 상실이며, 삶의 터전에 대한 훼손이다. 어민들의 상대적 손해를 지속적으로 입히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바다는 아직도 보호자가 없는 ‘과부의 자식’ 같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러나 쓰라리더라도 처해진 현실은 냉혹하게 진단 할 수 있을 때, 해결책도 생기고 상호 ‘지속가능한’ 살길도 열린다. 연안지선을 손쉽게 매립해 돈을 벌려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바다의 건강성과 나아가 국민들의 건강권을 지키겠다는 정책은 여전히 생색내기 수준이다. 먼 바다는 해상교역의 뱃길로 인식하거나 대형 어업선단의 고기잡이 현장으로 이용된다.


그러나 육역에서 가까운 연안지선은 해안도로 개설, 임해공단 건설, 물류기지, 주택조성단지 등등을 이유로 죄다 뜯기고 매립되어가고 있다.


맨 먼저 죽어나는 것은 영세어민들이다. 연안지선의 생태계가 파괴되면 연안어족의 씨가 마르는 것은 당연한 순서이다. 이들에게는 먼 바다로 고기떼를 쫓아 나설 만한 장비도 힘도 없다. 그저 조상 대대로 가까운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조개와 해산물을 채취해서 그날그날을 연명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그 바다의 기슭인 연안선은 인간의 욕심이 점령해버렸다. 자연히 인간의 지나친 간섭으로 망가진 해안선은 시나브로 오염되고 해초류가 사라졌으며 어패류도 점점 사라져갔다. 갯가에는 늙은 어부의 한숨과 폐선으로 변해가는 어선이 갯잔디 위에서 하얗게 야위어가고 있을 따름이다.


해안선을 보존하는 일은 바다를 보호한다는 말과 같다. 해안선을 보호하지 않는 나라는 바다를 포기한 것과도 같다. 한사람의 허파를 포기하고서 몸이 성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해안지선의 생태적 가치와 그 역할은 이미 밝혀질 만큼 밝혀졌으나 국책사업, 지자체사업, 리조트사업 등등 여러 유형의 개발압력은 높아만 가고 있다.


자정공간을 상실한 바다는 점점 상해만 간다. 그속에서 겨우 길러낸 것들은 병이 들어 결국 그것을 먹는 사람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해양에서 얻어지는 것으로 인한 순환의 고리는 결코 먼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식탁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개발과 보존이 양립이 아닌 병립의 형태로 가야하는 이유는 수없이 많다. 방법이 없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색깔이 흑과 백만이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눈만 뜬다면 방안은 쉽고도 가까이에 널려 있다. 해안선의 개발로 인한 폐해를 계산하고서 재빠르게 복원으로 돌아간 일본이나 독일의 예에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들의 ‘뼈아픈 후회’를 보면서도 그 길을 고스란히 뒤따라가고 있는 자세가 문제인 것이다.


해안선을 고스란히 보전하고 즉, 자정공간을 살려두고, 저만치 뒤로 물러나서 도로도 만들고 공단도 만들고, 택지도 만드는 정책이 확고하게 성립된다면, 우선 바다가 살고 가난한 영세어민도 살고 관광을 목 터지게 외치는 지자체도 사는 길이다.


그럼에도 왜 안하는가. 적게 투자해서 많이 얻으려는 누가, 무엇이 죽든 말든 나만 살고 보겠다는 천박한 자본논리가 낳은 근시안의 결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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