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딸아이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초보 학모이지만 정치적 목적(?)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운영위원회, 급식소위원회를 맡고 있다.

얼마 전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올해 1차 추경예산(안)을 검토하는데 목간 전용된 부분이 많아 한참 회의가 길어졌다. 그 중 가장 덩어리가 큰 것은 도서실 운영비였는데 600여만원이 삭감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설명인즉슨 교육청에서 권장하는 도서대여 및 관리 프로그램 설치를 위해 예산을 책정했으나 그 프로그램이 정보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많아 전액 삭감하고 여기저기에 전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전용했다는 '여기저기'가 솔직히 아이들의 건강하고 안전한 학교생활을 위한 용도라기보다는 학교장의 '공'을 높일만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는 직전 교장의 자랑거리였던 조형물을 설치한 지 몇 년 되지 않았음에도 현직 교장의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바꾸는데 이 돈의 1/3이 쓰여졌다. 

여전히 학교는 침범할 수 없는 성역

또 교육감 선거 공약사항에 따라 교육청에서 지정 공급한 높이조절 책상, 의자가(상당히 돈을 많이 들여 바꿨다고 한다) 부실할 뿐 아니라 오히려 실효성이 없고, 개보수를 하려 해도 공급한 업체가 부도가 나서 선생님이나 학교에서 알아서 해야 한다며, 오히려 예산만 더 낭비한 꼴이라고 교원운영위원들이 볼멘소리를 했다. 설왕설래하던 회의는 '시간'이라는 구세주 덕분에 '예산을 낭비하지 말고 아이들에게 해택이 돌아갈 수 있는 방향에서 잘 쓰자'라고 대충 마무리 되었다.

마칠 즈음 교장선생님이 자랑삼아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각종 경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낼 수 있도록 '꿈나무'를 집중 육성하겠다, 몇몇 선생님들이 특별지도를 승낙했다는 포부를 밝혔다. 머리가 '띵'해지는 순간 전교조 조합원 운영위원들의 표정은 붉으락푸르락 하고 있다. 틀림없이 몇몇 소수 아이들을 위해 전교생과 선생들을 '잡'았을게 뻔하다.
어쩌면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2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교육행정과 학교현장은 이렇게 달라진 게 없나 싶어 참 망막해졌다.

학교는 여전히 교장이 제왕이고 그(녀)의 이름을 빛내기 위해 예산은 전용되고 교감·교무부장으로 이어지는 위계질서는 그 누구도 침범하기 어려운 성역으로 자리하고 있다. 여전히 교육행정은 실사구시 없는 관료들의 전시행정일 뿐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예나지금이나 아이들은 훈계와 훈육의 대상이고 소유물일 뿐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이므로 20~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바뀌어서는 안 되는 것인가 보다. 

학교행정의 민주화 멀지 않았다

회의를 마치고 따로 가진 뒷자리에서 전교조 선생님과는 설전을 벌였다. 나는 나대로 '학교가 왜 이 모양이냐', '교원평가제 저지투쟁은 전교조가 우군도 얻지 못하고 투쟁 조직도 잘 못하면서 자중지란만 일어났다'고 따지고 선생님들은 선생님들대로 힘겹다고 하소연하면서 말이다. 사실 나는 이 젊은 선생님들에게 뭐라고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그냥 3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우리 교육현실과 전교조를 비롯한 진보진영의 무력함이 안타까웠을 따름이었다.

물론 내 딸아이가 나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 그녀의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쯤에는 이렇지 않을 것이라 짐작한다. 왜냐하면 힘겨워 하면서도 고민하는 이 젊은 선생님들이 지금처럼 교과 연구하는 것에서나 아이들과 생활하는 것, 전교조 활동하는 면에서 고군분투할 것이고, 교육행정을 민주적으로 바꾸기 위해 일선 학교운영위원회에서부터 교육감에 이르기까지 진보진영이 참여하고 더 넓은 참여교육이 되도록 개혁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교육은 더 폼 나고 번쩍번쩍한 세상을 위한 탈출구가 아니라 더불어 사는 세상의 구성원을 만들고 사회로 환원할 자기개발의 장이라는 철학이 점차로 교육행정에 녹여지도록 강제할 권력을 우리가 만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 필자는 지난 11월초 민주노동당 대구시당 임원 전원사퇴에 따라 현재 평당원으로 정치현장에서 발로 뛰며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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