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170여명이 부산일반노조에 가입했던 한솔학습지 노동자들. 다달이 계약기간 만료를 들이대는 사측과 노조활동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부산지방법원에 의해 조합원은 거의 모두 탈퇴했다. 현재 해고자 몇몇이 남아 있는 상황. 환경미화와 정화 사업장에서도 개별적 징계 해고자들이 부단한 싸움을 벌였다.


지하철의 부산시 이관에 맞춰 전개되고 있는 부산시 교통정책 변화에 따른 지하철 매표소 폐쇄, 버스 준공영제 실시 등으로 정리해고된 30여명의 노동자들. 노조를 만들었다고 관리자들이 폭행을 일삼고, 다른 업체를 내세워 일거리를 빼돌리는 바람에 모두 쫓겨나다시피 흩어져 생계와 고용투쟁을 병행하고 있는 케이블 하청업체 조합원들. 이들 사업장들은 힘겨운 장기투쟁을 일상적으로 벌여나가는 부산지역일반노조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부산지역일반노조는 신규사업장과 임단협 갱신 사업장 등 보통 7~8개 사업장이 동시다발적으로 교섭이 이뤄진다. 정신없는(?) 모습은 정도의 차이일 뿐 전국의 일반노조 상황과 매 일반이다.


전세 계약도 이렇게 쫓아내지 않는데…

8일 오후 부산역 앞 광장의 시국농성장에는 민주노총, 민주노동당과 함께 부산지역일반노조 천막이 쳐져 있다. “매표소 폐쇄 철회!” “고용승계 보장!” 천막 입구에 걸려있는 흰 천에 ‘피’로 쓴 요구사항. 2002년 8월 용역3사에 의한 민간위탁 이후 올해 9월15일자로 해고된 비정규 노동자들의 절박함을 대변하고 있었다. 부산교통공단은 내년 1월 건설교통부에서 부산시로 이관된다. 이 과정에서 교통공단은 ‘매표소 무인화’라는 미명 하에 서둘러 100여명의 비정규직 매표노동자들을 전원 해고한 것으로 보인다.

“올 12월까지가 계약기간이었는데 불법파견의 짐을 덜기 위해 일방적인 해고를 한 겁니다.” 현장위의 조은영 총무는 분통을 터트렸다. “입사시 올 12월까지 장기계약 이야기를 듣고 왔어요. 전세계약도 기간 내에 쫓아내는 일은 없잖아요.” 이들 노동자들은 하루 10시간씩 일을 하고도 월 100만원 남짓의 임금으로 생활해 왔다. 연월차 휴가도, 여름휴가도, 명절에도 쉼 없이 그들은 일을 해야 했다.

“하루 한번 찾아오는 교대자가 없으면, 식사도 할 수 없고 심지어 화장실조차도 제대로 갈 수 없는 조건 속에서 일해 왔어요.” 대부분 20~30대인 여성 조합원들은 실업급여가 끊어지자 하나둘씩 생계를 찾아 떠나갔다. 현재 부당해고에 맞서 남아 있는 24명의 조합원들은 ‘시민 안전대책 없는 매표소폐쇄 철회와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투쟁을 지속할 방침이다.


부산지역 공대위도 이날 저녁 꾸려졌다. 부산역에서 12월2일부터 천막농성을 벌인 매표소 해고자들은 12일부터는 부산시청 앞으로 천막농성장을 옮겨 부산시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일자리는 줄어들고 정부가 근본적으로 비정규직을 보호할 마음이 없다고 생각해요.”

“노동조합은 별난 사람들이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제가 당하니까 너무 억울해요.”

“대안이 쉽게 나오지는 않겠지만 끝까지 갈 겁니다.”

부당한 해고에 맞서 원직복직을 하고야 말겠다는 조합원들의 각오는 높았다.

지하철을 타고 ‘중앙케이블방송’으로 가는 길. 매표소에서는 듣던 대로 표를 팔지 않는다. “이거 어떻게 하는 거지?” 줄지어 서있는 많은 시민들이 승차권 구입기계에서 머뭇머뭇 거린다. 물어볼 역무원도 없다. 우대권발매기는 빨간 버튼만 누르면 누구나 가져갈 수 있게 되어 있다. 비싼 기계가 경로우대증, 장애인증 등을 인식하지 못해 벌어지는 촌극이었다. ‘무임승차’나 ‘미자격자의 우대권 사용’은 30배로 처벌하겠다지만 제대로 지켜질 리가 없다. 우대권 발권을 위해 빨간 버튼을 누르는 시민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인건비 때문에 매표소 노동자들을 해고해놓고서 무임승차 시민들을 범죄인 취급하는 모습. 이해하기 어려운 주먹구구식 경영이 아닐 수 없었다.


친인척이 요직 차지, 어용노조 결성까지

70여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중앙(범진)케이블은 부산지역 20만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는 중견 케이블 업체다. 이 가운데 현재 조합원은 8명뿐이다. 지난 9월 범진이 중앙에 통합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의 한파가 몰아칠 징조가 보였고, 노조는 ‘고용보장확약서’를 요구하며 회사 앞에서 9월말부터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이미 기존 정규직원들이 하청업체로 보내지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외주화 자체가 문제입니다. 그나마 100~110만원 저임금을 받던 정규직 노동자들이 1~2년 단위 재계약이라는 고용불안에 떨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천막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신기식 수석현장위원(위원장)은 2002년 노조 결성 뒤로 해마다 임단협 교섭이 난관에 봉착했지만 이번에는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회사측은 “20~30명 유휴인력이 있어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딸과 사촌, 처남, 고향후배 등 친인척이 요직에 앉아 회사운영을 좌지우지하는 경영. 이것도 모자라 회사측은 ‘노조무력화’에 들어갔다. 지난 9월 친인척 위주의 ‘어용노조(35명)’를 결성해 기존 조합원을 빼내갔다. “가입을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 아나운서를 취재기자로 발령내면서 조합 탈퇴를 강요하는 등 온갖 회유와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는 게 중앙케이블 현장위원회측의 설명이었다.

“다 나가서 파업해라. 직장폐쇄해 버릴테니.” 회사측에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중앙케이블 현장위원회는 수석을 뺀 나머지 조합원들이 정상근무를 하고 있다. 퇴근 후 농성에 동참하는 노동자들. 그들의 근로의욕은 이미 ‘상실’ 그 자체였다.


“니들이 감히 대통령같은 주지스님을 만나?”

다음날인 9일 오전, 부산에만 신도수가 35만명에 이른다는 거대한 사찰 ‘삼광사’를 찾았다. 엄청난 절 살림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부처님오신날’ 연등값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33만원짜리 연등만 1만여개. 이것만 해도 33억원인데, 전체 연등은 3만여 개에 이르렀다. 살림살이가 크다 보니 절의 행정사무, 보일러, 관리, 운전, 경비, 주방 등 인력이 50여명에 이른다. 부설 유치원과 자원봉사자들을 합하면 인력은 100여명에 이른다. 이쯤되면 이미 부처님이 좋아 봉사 차원에서 일을 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30여명의 노동자들은 다년간 누적된 인사문제와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지난 8월 부산일반노조 삼광사현장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현장위의 교섭요구에 사찰측은 상견례는커녕 일부 신도회 회원을 동원해 집회를 방해하고, 현수막을 찢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 해고와 노조탈퇴 압력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갔다.

“다들 10~20년 이곳에서 일한 사람들이에요. 하다하다, 오죽 답답했으면 절에서 노조를 만들었겠어요.” 버스기사로 13년간 일했다는 해고노동자 김승조씨가 말문을 열었다. “월급줄 때 주지스님이 우리 보고 ‘밑바닥 인생’이라 합디다. 주면 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거죠.”

곁에 있던 중년의 조합원들도 말을 거들었다. “조금만 눈에 거슬리면 잘라 버리고.” 이어지는 김승조씨의 말이다. “운전하고 돌아오면 노가다 하고, 우리가 여태 그렇게 해왔어요. 밤샘근무도 당연히 해야되는 걸로 알았고요. 4대 보험도 없이 10~20년 그렇게 해온기라.”

절집의 구조조정 상황은 이랬다. 종단 감사원 감사결과 보고 자리에서 현재의 주지스님이 오래된 직원 4~5명을 해고하겠다는 통보가 있었다. 버스기사 김승조씨는 곧 해고되었고, 백 아무개 방송실장은 보직을 강등해 방송보조를 맡게 했다. 실장 후임자리는 3개월 수습을 마친 신입사원에게 돌아갔다. 부당인사라며 물의가 빚어지자 사찰측은 백 실장을 지장전으로 발령을 내어 화장실 청소, 식당음식물폐기 등을 맡기고 있다.


이밖에 사찰측은 지관전 관리실장, 전기실 관리실장, 경비실 등 10~20년 근속자를 해고대상에 올렸다. 봉급 160여만원이 너무 많고, 오래 근무해 절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이유였다. 희한하다. 절 사정을 잘 알면 좋을 텐데. 그러나 스님들이 어디서, 어떻게 돈을 물 쓰듯이 쓰는지, 알아서는 안 될 것을 너무 많이 아는 것이 죄라는 게 조합원들의 설명이었다.

“부처님 좋아서 절에 왔고, 월급 보고 일하러 오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하루아침에 나가라는 건 굶어 죽으라는 것 아닙니까.” 자르더라도 날 좀 풀리면 해고하던가. 집에 가면 죽고 싶은 심정이라는 조합원의 말에 스님이 한 말은 비수로 꽂힌다. “당신 죽는 거랑, 나랑 무슨 상관이 있어. 나가라.” 뚫린 귀를 의심케 하는 성직자의 몰상식한 발언에 조합원들의 가슴 속 응어리와 상처는 커 보였다.

절에서는 불심이 강한 조합원들의 심리를 이용하기도 한다. “큰 스님께 누를 끼쳐야 되겄나. (노조 만들고) 그래 갔고, 느그 자슥들 잘 되겠나.” 악담도 이런 악담이 있을 수 없다. “너희들이 어떻게 감히 대통령 같은 주지스님을 만날 수 있느냐.” 주지스님과의 만남은 기약이 없고, 협상하자면서 뒤돌아서서는 ‘노조 탈퇴 안하면 잘라버리겠다’는 사찰측에 대한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노조를 탈퇴하면 요구조건을 다 들어주겠다는 것이 사찰측의 입장. 헌법에 보장된 노동조합조차 부정하는 사찰의 행태. 노조탄압 수법을 꿰뚫고 있는 사찰의 모습은 더이상 사찰이 기도도량이 아닌 거대한 기업처럼 보이게 하는 지점이다. 부처님의 자비광명은 삼광사를 비켜가고 있었다.

웬만한 연대로는 지키기 어려운 현실

부산지역일반노조 소속, 여러 투쟁사업장은 열악한 중소영세 비정규 노동자들의 처지를 웅변해주고 있었다. 지난 1년여 부산일반노조가 벌인 한솔학습지 투쟁도 웬만한 연대의 힘으로는 지켜내기 어려운 현실을 잘 보여줬다. 하물며 이보다 규모가 적은 10명 안팎의 조합원들로 구성된 각 ‘현장위원회’가 노조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다.

재정과 집행역량의 부족, 빈약한 일상활동, 취약한 교섭구조, 현장의 자구력 취약 등 일반노조 운동은 많은 한계와 어려움을 안고 있다. 그러나 부산지역일반노조는 과거에도 그랬듯 앞으로도 중소영세비정규 노동자들의 구심으로 우뚝 설 활동을 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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