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상식에 가까운 문제다. 정답은 당연히 근로계약서다. 근로계약서에는 근로자가 일하면 받을 수 있는 임금과 일해야 하는 근로시간, 사용자로부터 보장받는 휴가기간 등이 명시되고, 이를 양 당사자가 각각 기명·날인함으로써 그 계약내용의 진정성을 가장 확실히 보장하는 서류다. 노동자 A씨는 2005. 3. 1. 회사에 입사하면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월 150만원을 준다고 했지만 사용자가 임금도 제때 주지 않고, 퇴근시간이 지나도 계속 일하라고 하는 일이 비일비재해 이를 참지 못한 A씨는 사용자를 찾아가 한마디 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갑자기 사용자로부터 “계약만료통지서”라는 게 날아왔고, 이번 달 말부터 나오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나 황당하고 억울했던 A씨는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신청을 냈다.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용자로부터 받은 자료 중에 자신이 날인한 근로계약서가 있었는데 그 내용을 보니 애초 계약체결 당시 공란으로 놔두었던 근로계약기간 란이 “2005. 3. 1. ~ 2005. 8. 31.”이라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고, 사용자는 이를 근거로 A씨가 기간제 노동자라고 주장했다. 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A씨는 줄곧 “나는 근로기간을 정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고, 자필과 다르다는 점을 유력한 증거로 내세웠지만 이에 대해 사용자는 근로계약서를 보여 줄 당시 근로계약 란은 채워져 있었고, 계약직으로 뽑으려고 해다는 주장을 거듭했다. 당초 근로계약서를 교부받았다면 사용자의 이런 위증행위는 금세 탄로 날 것이지만 사용자로부터 근로계약서를 교부받지도 못했기 때문에 이를 뒤집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임금의 일부를 지급받지 못해 노동부에 가서 임금지급 진정을 제기해도, 사용자가 다른 주장을 하면서 임금대장을 만들지 못했다거나 근로계약서 없이 구두로 계약했다는 식으로 주장하면 사용자는 근로기준법 제42조(임금지불)위반에 따른 임금지급의무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미만의 벌금의 형을 피해 제24조(근로조건의 명시) 또는, 제41조(계약서류의 보존)위반에 따라 500만원 미만의 벌금으로 처벌받게 된다. 물론 이런 경우 사용자에게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발생하지도 않는다.

이런 모든 문제는 노동자가 근로계약의 내용을 증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인데, 이는 상당수의 기업들이 근로계약을 체결할 경우 근로계약서를 교부하지 않는 관행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사용자의 계약서 미교부는 불법일까? 근로기준법 제17조는 근로계약을 정의하면서 “이 법에서 ‘근로계약’이라 함은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이에 대하여 임금을 지급함을 목적으로 체결된 계약을 말한다.”고 하고, 제24조는 근로조건의 명시방법을 규정하면서 “사용자는 근로계약체결 시에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 근로시간 기타의 근로조건을 명시하여야 한다. 이 경우 임금의 구성항목, 계산방법 및 지불방법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방법에 따라 명시하여야 한다.”고 하였으며, 시행령 제8조는 이에 대해 서면으로 할 것을 정해놓았다. 정리해 보면, 근로계약을 체결하려면 그 내용을 서면으로 명시하여야 하는 것일 뿐 반드시 교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사회통념상 모든 계약은 당사자가 계약서에 서명 날인 한 뒤 1부씩 나누어 갖는 것이 정석이지만 근로기준법은 교부되지 않았을 경우를 상정한 의무를 두지 않고 있었다.

독일의 경우 지난 1995년 “근로조건증명법”을 제정하여 적용하고 있는데, 이 법에는 “노동법상의 규정을 유럽공동체법(EG-Recht)에 적합하게 하기 위한 법률 제1조”라는 부제가 들어있다. 이 법 제1조는 “이 법률은 모든 근로자에게 적용된다. 다만 최고 1달의 기간으로 고용된 일시적인 보조인력(vorübergehende Aushilfe)인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하였고 법 제2조는 “사용자는 늦어도 근로관계의 합의된 개시 시점 이후 1달 이내에 중요 근로조건을 서면으로 기록하여 문서에 서명하고 이를 근로자에게 교부하여야 한다. 문서에는 최소한 (다음 각호의 사항이) 기재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유럽연합과 그 소속국인 독일의 법 제정취지는 계약의 관계와 그 내용을 명확히 하고 그 이해당사자가 그에 따른 권리와 의무를 명확하게 이행하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와 같은 입법이 없는 관계로 위에서 예시한 여러 근로조건 상의 이해 불일치가 기형적으로 해결되거나 입증능력 없는 노동자의 패소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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