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자유’라는 주류, 비주류 언론의 틈바구니에서 노동(진보) 언론의 목소리는 언제나 ‘소리 없는 메아리’가 되기 일쑤였다. 미군정과 군사정권 시기에는 공공연한 탄압으로 우익지의 대적이 어려웠을 만큼 주도권을 장악했던 노동 등 좌파언론이 좌초했다. 이후 자유주의 정권에서는 물적, 인적 한계로 인해 숱한 노동(진보) 언론들이 사라져갔다. 그들의 외롭고 고단한 이데올로기 싸움은 가시밭길이었다.

쓰러져간 노동언론의 발자취

해방 이후 ‘중립화통일’을 주창한 <민족일보>의 조용수 사장마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했던 독재정권의 암울한 시대. 진보언론과 노동자언론은 숨죽여 있어야만 했다. 우리 사회에 노동자언론이 재등장하게 된 것은 85년 서노련의 결성과 87년 제헌의회그룹,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등의 정치조직이 결성되면서부터이다.

“정권은 관제언론을 손아귀에 넣었고, 이러한 관제언론은 소수특권층의 온갖 거짓과 비리를 철저히 미화시키는 반면 노동자나 학생, 농민들의 정당한 행동에 대해 무자비하게 난도질하여 왜곡시키고 있다. (중략) 우리는 진실을 적나라하게 밝혀주는 우리 노동자의 신문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최초의 노동자 정치신문으로 발행된 <서노련 신문> 창간사 가운데 한 대목이다. 그러나 <서노련신문>을 비롯해 <노동자의 길> <선봉> 등 80년대 전국적 정치신문으로 발행되었던 신문들은 해설이나 주의주장에 치우쳐 있었다. 그 때문일까. 본래 대상으로 한 노동자대중으로부터 괴리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오래 가지 못했다.

<선봉>의 경우, 조직통일의 매개로 ‘공동편집진’의 구성과 ‘공동배포망’의 구축 등을 선언하기도 했지만, 말 그대로 선언에 그쳤다. 이념과 정파의 차이를 뛰어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이후 <노동해방문학> <월간노동자> <새벽> <길> 등의 잡지 등이 만들어지며 한때를 풍미했지만 이들 매체도 역사 속으로 묻혀져 갔다. 89년 창간한 <주간노동자신문>은 99년 <노동일보>라는 일간지로 전환되면서 큰(?) 기대감을 심어주었지만 2003년 끝내 문을 닫고야 만다.


필요성 공감이 생존조건은 아니다
 
적어도 노동자 입장의 우호적 언론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 우호 세력 내 일각의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합리적인 방향을 이끌어줄 그런 노동언론에 대한 기대는 역설적으로 노동 적대적인 보도 일색과 이로 인한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신문이 다루는 주제에 대해 독자들은 어떤 판단을 하고 있을까? 단행본 <신문의 위기>에 실린 ‘신문의 질에 대한 독자평가와 충성도’에 따르면 독자가 더 적게 다루기를 원하는 경제기사들은 기업과 주식 등에 관련된 주제들이었다. 주목할 점은 가장 많은 응답자들(27.9%)이 ‘노사간의 갈등에 관한 기사’를 더 적게 다루기를 원했다.

노사갈등 기사들이 주로 파업 등 외양적인 것으로, 갈등 원인을 분석하거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특정회사 경영자와의 인터뷰나 소개’(18.6%), ‘주식시세, 주식안내’(18.5%)가 그 뒤를 이었다. 

또다른 조사를 보자. 지난해 <매일노동뉴스>가 지령 3천호를 기념해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한국의 노사관계’ 여론조사에서는 노조 지도자의 절반 이상이 언론보도를 불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언론의 노사관계 보도 신뢰도’는 노조 지도자의 경우 불신하고 있다는 응답이 57.6%인 반면, 신뢰하고 있다는 응답은 7.8%에 그쳤다. 보통이라는 대답은 34.3%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일반 국민들의 응답과는 차이를 보였다. 절반 이상인 50.5%의 국민이 ‘보통’이라고 대답했으며 ‘신뢰한다’는 응답도 25.9%에 달했다. 반면 언론의 노사관계 보도를 ‘불신한다’는 응답은 22.6%에 그쳤다.

또한 노조에 대한 국민들의 이미지는 나쁘지 않으면서도 파업에 대한 지지도는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조에 대한 국민들의 이미지는 ‘긍정’이 31.1%, ‘부정’이 31.4%로 긍정과 부정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파업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50.4%가 ‘상황은 이해하지만 파업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응답했고 ‘사회경제적 혼란만 늘어난 이기적인 행동이므로 부당하다’는 의견도 39.1%에 달했다. 반면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이므로 정당하다’는 응답은 9.0%에 그쳤다.

특히 국민들은 보수 언론들의 ‘대기업 고임금 노동자 이기주의’ 주장에 대해 58.8%가 ‘찬성’ 입장을 나타냈으며 ‘반대’ 응답은 35.1%에 머물렀다.

이같은 여론조사 결과는 노조지도자와 국민의식의 괴리를 나타내고 있으며, 보수언론들의 노동관련 부정적 보도의 이데올로기 효과를 드러내고 있다. 또 보수언론이 지배하고 있는 노동을 둘러싼 언론환경에서 ‘노동언론’이 해야 할 역할이 적지 않다는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러나 ‘노동언론’의 필요성에 대해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고 해서 ‘노동언론’ 나아가 진보언론이 생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척박한 토양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이상은 하늘에 닿아 있었지만 실제 하는 일은 부도직전의 중소기업 사장 역할을 할 때가 많았다.” “돌이켜보면 자랑스럽지만 다시 하라고 한다면 정말 자신이 없다.” 새까맣게 타들어 가던 남모를 가슴앓이. 긍지와 자부심 한편에 돈과 인력의 한계를 절감하며 진보언론, 노동언론을 접어야 했던 책임자들의 소회이다. 기사와 광고를 ‘거래’할 수 없는 진보매체의 ‘숙명’. 노동계와 진보진영의 도움은 절대적으로 필요했지만 매체 구독이나 ‘후원금’ 납부금액은 갈수록 강팍해져 간다.

이제는 답해야 한다. 척박한 토양에 뿌리박으려는 노동언론에 과연 희망은 있는가? 전현직 진보언론 종사자들은 노동언론의 비전에서부터 재정과 인적구성, 편집형식과 내용까지 다양한 의견을 피력했다.

노동일보의 이용수 전 이사(현 참여와혁신 발행인)는 “조중동이 비판하면 침묵하던 노동계도 노동일보의 우군에 대한 조금의 비판도 용납하지 않는 풍토였다”며 “노동계의 잘못된 부분은 지적하고, 일부 세력의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노동언론이 갖춰야 할) 대의와 철학은 기본이지만 당장 신문이 광고 없이 운영되기는 힘들다”며 “경영에 대한 열린 생각과 내부소통 시스템을 충분히 마련해 줄 것”도 덧붙였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은 과연 노동언론을 키울 수 있는 풍토와 의식을 갖추고 있을까? 김보헌 외환은행 노조 전문위원은 “노조에서 원하는 것은 한겨레나 경향처럼 그나마 영향력 있는 매체를 만들면서 노동 지면이 4~6면정도 나와 주는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또 “노동계를 이끌려면 과거의 선전선동의 잘못된 관점을 수정해야 한다. 공무원노조 파업에서 보듯 일반국민의 정서와는 많이 동떨어져 있다. 일반국민과 노동자의 인식의 간극을 없애는 부분에 천착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영향력과 함께 새로운 신문은 확실한 이념적 지향 등 색깔이 뚜렷해야 한다. 매체의 지향이 분명해야 하고, 비전이 먼 미래의 일이어서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사기치는 것 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노동언론은 옳은데 국민이 잘 알지 못하고, 이해를 못한다.” 노동언론에 아직 남아 있는 무거운 원칙을 넘어 전술적 패러다임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그러자면 “노조 성명서 수준의 기사가 지금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는 많은 이들의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광호 <진보정치> 전 편집위원장은 “노동언론은 노동계 소식 전달 위주에서 탈피해 노동자의 관심사, 당면과제 등에 대해 다뤄야 한다”며 “노조와 노동운동의 사회적 연대와 관련해서도 노동언론이 선도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노동운동의 위기와 관련 말이 많듯 노동운동, 노조 등 내부의 비판기능을 충실히 갖춰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정의 부족은 낮은 임금과 열악한 신문제작 환경을 만든다. 돈이 적어 할 수 없는 일은 수두룩하다. 그러나 최소한 편집 등에서 유치한 수준은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정희윤 노동일보 초대 노조위원장(현 한국금융신문 기자)은 “<매일노동뉴스>도 공신력 있는 매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내용과 함께 편집스타일 등 형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의 한 기자는 특이한(?)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주 1회 정도 ‘노동섹션’ 제휴도 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이 기자는 “노조에 대한 언급은 파업할 때나 나오는 등 한겨레조차 노동 분야가 중요도 영역에서 자꾸 밀려나고 있다”며 “한겨레가 현재 내부 인력을 늘릴 수 없는 상황이고, 진보매체도 재정적 여력이 없다면 상호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IMF 이후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선 대안모델을 세우지 못하다보니 양대노총의 침체와 맞물려 노동(진보)매체도 수세적인 방어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 이념적 혼란 속에 노동(진보)언론의 명확한 비전과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하면 그간의 노력이 말짱 도루묵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같은 인식에 동의하더라도 한겨레와 특정 노동매체간의 제휴는 동질성 보다는 이질성이 커 실현가능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밖에 노동(진보)언론은 절대 ‘운동가’를 뽑아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아무리 진보적 시각을 갖추고 있더라도 비전문가는 언론 조직 내 통합적인 리더십 뒷받침이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론은 전문가인 기자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얘기였지만 그간 진보매체들이 그렇게 해오지 않았다는 반증이었다.


“무조건 통합해야” vs “현실가능성 낮다”

현재 <민중의소리>, <프로메테우스>, <참세상> 등 진보진영의 언론매체들이 활약하고 있다. 최근 다양한 좌파매체의 출현에 대해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각 정파별로 매체를 하나씩 만들겠다는 것인가”라며 “그렇게 배타적으로 나와서야 어디 될 법이나 한가”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던졌다.

이와 관련, 진보언론 진영에서는 재정과 인력의 재정비를 갖출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재정은 ‘깨진 독에 물 붓기 식’이 아닌 체계적인 정비로 쓸데없이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또한 인력은 경쟁력 있는 상층 인력의 확보와 함께 기자들의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함으로써 안정적인 재생산 구조를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보다 앞선 선결과제는 노동·진보매체들 간에 우선 크게 뭉쳐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학림 언론노조 위원장은 “진보언론이 합쳐지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작은 차이는 뛰어 넘어야 한다. 계파니 정파싸움은 미친 짓이다”며 “생존의 위기 앞에 (진보노동언론들이) 크게 뭉쳐야 하는데 지금이 내부싸움 할 때인가”라고 강조했다.

이정호 언론노조 전 정책국장도 “뭉쳐도 힘들 때 진보진영의 매체들은 소모적인 자기분화만 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격언을 상기시켰다.

그는 또 “인력이 소중한 만큼 임금의 현실화를 통해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면서 “노무현 정권에 가기 싫어하고 주류매체에서도 카운터파트너로서 인정하는 아까운 인자들이 주변에는 너무나 많다”며 관심을 촉구했다. 이들을 수수방관 버려두지 말고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준비한다면 승산이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물적, 인적으로 어려운 노동(진보)언론의 현실을 감안한 통합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좌파매체들 간에 통합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민주노총의 이수봉 홍보실장은 “과연 상호 토론과 대화를 통해 조정이 가능할까는 의문”이라며 “통합이 불가능하다면 매체의 상호 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상호 긴장과 견제가 있어야 하며 ‘사안별 연대’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또 “통합에는 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 진보가치의 재정립 과정에서 비리나 폭력 등 운동의 거품이 빠지고 있고, 새로운 운동을 찾는 과정”이라며 “(그것은) 새로운 진보, 노동언론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이광호 전 진보정치 편집위원장도 “인위적인 통합은 어려울 것이다. 진보진영 내 다양한 매체의 다양한 목소리를 굳이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며 “결국 대중의 선택과 판단으로 결정될 것인데, 폐쇄적인 정파 입장만을 대변하는 매체는 점차 대중성의 한계를 드러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일보>의 사례를 통해 보았듯 ‘친○○’ ‘반○○’ 등 정파지의 멍에, 즉 개개인 친소관계를 중심으로 한 노동언론은 생명이 짧을 수밖에 없다. “쉽게 노동자의 지지를 얻겠다면 (노동언론) 안하는 게 낫다”는 이수봉 실장의 지적처럼 노동계의 전폭적 지지를 받기를 원하기보다는 노동문제에 대한 정론을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

정론을 지향하는 데 있어서 다양한 정파와 일정한 거리두기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취재 중에 만난 취재원들은 한결같이 “본질적으로 언론은 각 정파나 단체와 건강한 견제, 긴장관계에 있어야 한다”며 “노사관계에서도 노동계의 올바른 주장은 물론이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본질적 비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간의 각종 노동계 비리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노동, 진보언론은 ‘침묵’하거나 ‘제 식구 감싸기’식의 편향들이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노동언론, 큰 출발의 계기 놓치지 말아야

지난해 민주노동당이 17대 총선을 통해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한 것은 40여년 만에 진보정당이 역사의 무대로 재등장했음을 알리는 쾌거였다. 진보주의자들은 그에 상응한 진보매체가 나오리라는 기대를 가졌다. “제대로 된 진보매체가 떴어야 했다.” <한겨레>가 87년 항쟁을 토대로 만들어졌듯 ‘진보(노동)언론’의 태동을 기대했던 진보주의자들은 못내 아쉬운 한숨을 던져야 했다.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의 이광호 전 편집위원장은 “다양한 진보 인터넷매체들이 나왔지만 대중적 영향력을 갖출 만큼 위력적이지 않았다”며 “<진보정치>도 당 기관지의 한계를 극복해 힘 있는 진보언론의 주체가 되리라 생각했지만 당내의 다양한 의견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실패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역사는 언제나 준비해왔던 사람들의 몫. 프랑스의 진보매체 <리베라시옹>과 <루마니떼> 등이 레지스탕스에 기반으로 했듯, <한겨레>는 고 송건호 선생 등 동아, 조선투위의 해직언론인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진보, 노동언론은 새로운 시대적 변화를 주도할 주체의 준비 부족이 너무나 컸다. 최근 민주노동당의 지지율 하락을 보며 한 언론인은 “(원내진출) 이것이 우리의 힘만이 아니었구나”라며 “한겨레를 뛰어넘는 매체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진보 10석이 우리의 힘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라고 의문을 던졌다.

그러나 주·객관적인 상황이 어려운 만큼 ‘상대적 진보성’을 내세우는 <한겨레>나 <오마이뉴스> 등 자유주의 성향의 본질을 폭로하기 위한 진정한 의미의 독립언론, 즉 ‘노동언론’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진다. 노동(진보)언론을 키워서 자유주의 언론을 견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진보와 노동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진상 경상대 교수는 노동언론의 필요성에 동의하면서도 “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진보와 보수의 대치선은 불분명하다”며 “특정한 계기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노동언론의 발전도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정 교수는 “일반대중 독자에게 급히 다가가려 하기 보다는 조직대중에게 확실한 관점과 내용을 분명히 해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며 “신문법 등 유리한 조건을 활용해 기성언론에 대항할 수 있는 진보적인 ‘대항언론운동’을 펼쳐 나가는 것도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노동 없는 진보 없고, 진보 없는 노동 없다.” 진보를 자처하는 개혁언론의 위장된 ‘진보’의 허울을 벗기고 진보의 제 이름에 걸 맞는 옷을 입혀주는 것은 이제 진보진영, 노동계의 몫으로 온전히 남아 있다. “실패했지만 노동언론은 꿈이 아니다.” 각 분야에 흩어져 있지만 여전히 꿈을 간직하고 있는 진보언론인들. 이들의 굳건한 믿음은 거듭된 진보, 노동언론 실패의 교훈을 ‘반면교사’삼아 곱씹어 보는 데서 다시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미군정 3년간 씨가 마른 ‘노동·좌파언론’
해방 이후 3년간 미군정의 탄압으로 좌파언론의 싹은 무참히 짓밟힌다. <조선인민일보>, <해방일보>, <건국>, <노력인민> 등은 해방공간의 대표적인 좌파언론들이었다. 조선인민보는 45년 9월8일 타블로이드판 국문으로 발간됐다. 9월19일에는 조선공산당 기관지인 해방일보가 창간된다. 이밖에 경성노조에서 발행한 <노동자신문>, 전평의 기관지인 <전국노동자신문>도 해방 이후 창간된다.


이들 좌파신문은 광복 직후 한때 언론계의 기선을 장악하면서 이데올로기 선전과 좌익의 영향력 확대에 큰 무기가 되었다. 일제시대에 발행되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아직 복간되기 전에 창간된 이들 좌파언론은 언론계에 있어 우익의 대적이 어려울 정도로 강력했다.


그러나 46년 5월부터 미군정의 탄압이 심해졌다. <인천신문>의 인천시청 적산과장에 대한 보도가 허위였다며 기자 등 40여명을 구속한데 이어, 5월18일에는 공산당의 위폐사건(정판사)과 함께 <해방일보>를 발행 정지시킨다. 8월 들어 미군정은 전국에 걸쳐 대대적인 좌파언론 단속에 나섰다.


일부 서울 시민들이 벌인 식량배급 청원 보도가 선동적이라며 <조선인민보>의 사장, 편집국장이 구속되기도 한다. 미군정의 좌익 탄압이 노골화되자 공산당은 46년 9월24일 철도 총파업을 일으키고, 다음날 다른 언론들도 동조 파업에 들어가 근 일주일간 신문 없는 사회가 되기도 했다.


48년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좌파언론 <독립신보>와 <조선중앙일보> <신민일보>를 비롯해 5월26일에는 <우리신문>과 <신민인보>가 미군정에 의해 폐간된다. 이로써 8·15 해방 후 줄곧 좌파지들에 눌려 힘을 쓰지 못하던 우익지들이 비로소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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