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조종사노조의 파업에 긴급조정권이 발동됐다. 정부는 파업 돌입 전부터 경제부총리와 건교부장관이 나서 긴조권을 발동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더니, 불과 4일만에 노동부장관이 긴조권을 발동했다.

파업 돌입 뒤 노조는 2번에 걸쳐 수정안을 냈지만 사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쪽은 뭘 믿고 꿈쩍도 하지 않았을까. 파업 돌입 이전부터 정부 관계자들은 "대한항공 4일 파업은 아시아나항공 25일과 맞먹는다", "4일 안에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해 왔다. 다시 말해 정부는 사쪽에 파업이 4일을 넘기면 긴조권을 발동하겠다는 방침을 공공연히 흘려, 파업으로 교섭을 압박하려는 노조의 전술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이를 시험에 비유하면 출제자(정부)가 어느 한쪽에게만 힌트를 준 셈이다. 그러니 교섭이 될 수가 없다. 정부와 사쪽은 부정시험을 치른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노조 파업으로 하루 235억원의 추정 손실이 예상된다는 대한항공이 손실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정부는 알고 있을까. 대한항공은 파업 첫날부터 하필이면 흑자노선인 미주노선을 포함한 국제선 32편을 결항시켰다. 이리하여, 사쪽 주장대로라면 매일 253억원 손실로 파업 4일 동안 대한항공이 감수해야 할 손실액은 1,012여억원이 된다.

그러나 노조의 임금인상안을 수용할 경우 회사가 지불해야 할 비용은 40여억원(2003년 전체 조종사 임금지불액 1,500여억원/노조 최종안 총액임금대비 기본급 및 비행수당 3.5% 인상). 사쪽은 무엇 때문에 25배의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기존 입장을 고수했을까. 비밀은 단 하나, 긴조권이다. 사쪽은 정부의 긴조권 발동에 기대 노조에 양보하는 선례를 남기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셈이다.

조종사들의 파업은 상당한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올해 양대항공 조종사노조의 파업은 그렇지 못했다. 정부가 파업의 위력을 앞장서서 깎아내렸기 때문이다. 양대 항공사 모두 정부의 긴조권 발동 언급 이후부터는 전혀 태도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긴조권은 노사간 자율교섭 기회를 원천봉쇄한 것은 물론, 단체행동권을 통해 노조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던 노동자들의 권리까지 빼앗은 것이 됐다.

역사상 단 2번 발동됐던 긴조권이 올해에만 2번 발동됐다. 이제 긴조권 발동은 중요한 파업마다 등장하게 될지도 모른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이 노동2권으로 격하되는 순간이다. 노동부의 정책집행 대상은 사쪽만이 아니다. 정책의 대상을 코너로 몰며 노동부가 얻으려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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