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제 사용기간을 2년 혹은 3년으로 하고, 그 기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채용 한다구요? 이같은 내용의 법안이 얼마나 실효성 없는지, 이랜드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미 5년 전부터 몸으로 체험해 왔습니다. 자본가들은 해당 기간이 되기 전에 비정규직을 그만두게 할 것이고, 그 자리를 다른 비정규직으로 채우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여성민우회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주최로 8일 오전 열린 ‘비정규직 노동자 증언대회’<사진>에 참석한 홍윤경 이랜드노조 위원장의 주장이다.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이랜드 “3년 뒤 정규직화 합의했으나, 비정규직만 늘었다”

“지난 2000년 이랜드 물류창고에서 근무하던 기간제 비정규직(아르바이트)들은 50만6,000원의 저임금을 받기는 했으나, 본인이 원하면 계속 근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쪽은 자연감원으로 인한 빈 자리를 불법파견 노동자들로 채용하더니, 급기야는 기존에 근무하던 기간제 비정규직들을 모두 불법파견 회사로 넘기려고 했습니다. 이에 당시 기간제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했고, 정규직노동자들과 함께 265일간 파업을 벌여 ‘불법파견 노동자를 포함한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처우개선’이라는 성과를 얻어냈습니다.”

실제 당시 이랜드 노사는 △불법파견으로 해고된 조합원 직접고용 △파업에 참가했던 비정규직 조합원 2년에 정규직화 △사내 모든 비정규직 3년에 정규직화 △2001아울렛의 캐셔·판매·상품관리 업무에 정규직 충원 등을 합의한 바 있다.

“그런데 사측은 이후 비정규직들을 ‘3·6·9계약’(처음 3개월 계약 후 다음엔 6개월 계약, 총 9개월 이상은 근무할 수 없음)으로 묶어두어, 3년은커녕 1년을 넘기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9개월만 되면 회사를 떠나야 하는 상황인 거죠. 그전엔 비정규직이라도 계속근로가 가능했는데, 노사합의 이후 고용이 더욱 불안정해진 것입니다.”

홍 위원장에 따르면, 이랜드가 운영하는 대형유통업체인 ‘2001아울렛’에서 캐셔 및 상품판매 업무를 맡고 있는 계약직 직원들도 각종 차별 및 고용불안에 노출돼 있는 상황이다. 이들 역시 ‘3·6·9계약’의 적용을 받고 있으며, 정규직 직원들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정규직 임금의 절반수준만을 지급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랜드의 사례는 무엇을 시사하는가. 홍 위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이랜드 노사는 현재의 정부안이나 한국노총이 제안한 안과 같은 내용으로 5년 전 합의했으나, 결과적으로 합의를 안 한 것만도 못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랜드의 사례는 ‘사유제한’이 빠진 기간제 법은 국회의원의 생색내기용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비정규직을 위한 법은 될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습니다. 기간제 채용은 반드시 그 사유를 제한해야 합니다.”

“사유제한 없이 기간제 남용 막을 수 없어”

‘정부의 비정규직 법안은 누구를 보호하는가?’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증언대회에는 이랜드의 사례 외에도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이 바뀌어서 3년을 넘으면 해고해야 한다”며 4차례 근로계약을 갱신한 사무조교 직원들을 상대로 재계약을 거부한 ‘ㅅ’여대 사례 △파견직으로 2년, 도급직으로 1년7개월, 계약직으로 2년 등 총 5년7개월 동안 동일 업무를 맡아오다가 최근 계약해지 당했다는 ‘ㄱ’도시가스 비정규직 사례 △위탁고용된 KTX 계약직 여승무원들에 대한 차별 및 해고 위협 사례 △3개월마다 근로계약을 갱신하며 2년 가까이 근속해오다 집단해고 당한 은행 비정규직 사례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저임금과 차별을 감수해야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 계약직 노동자 사례 등에 대한 증언이 이어졌다.

이날 증언대회를 공동주최한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김성희 소장 역시 “비정규직이 남용되고 있는 ‘정글’에 보호망을 설치해야 하는데, 현재 논의되는 수준은 ‘2~3년’을 기준으로 기업들이 알아서 움직이라는 것밖에 안 되며, ‘계약직을 쓰려면 2년 안쪽으로 써라, 2년 뒤 또 필요하면 사람만 교체하라’는 것”이라며 “정부여당은 비정규직 남용현상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인 ‘사유제한’ 없이 어떻게 비정규직 남용을 막겠다는 건지 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