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회는 예결산위원회에서 예산심의가 한창이다. 그러나 정부의 방만한 예산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하는 국회예산 심의를 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충분히 검증되지 않는 예산을 은근슬쩍 끼워 넣는 민원성예산 증액, 예산 나눠먹기식의 구태로 인해 사업부실과 예산 낭비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예산 심의나 분석은 매우 중요하다. 예산은 한해 어떤 사업에 집중하고 있는지, 어떤 사업을 할 것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어 놔도 예산이 책정되지 않으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중요한 예산에 여전히 성인지적 예산 편성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성인지 예산 분석·수립 쉽지 않은 이유

성인지 예산이란 정부예산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효과를 평가하여 이를 예산 체계와 편성에 반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을 위한 특별 사업이나 프로그램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정책 예산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실제 정부에서 진행한 예산 분석은 유방암 검진과 같이 여성 혹은 남성만을 위한 정책 예산인 성 특정 예산과 성 평형성 예산(여성공무원 우대 조치나 모성보호 비용 등 성평형성 확보를 위한 예산)의 일부에 대한 예산추이 분석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실제 예산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일반예산에 대한 분석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성인지 예산 분석 및 수립이 쉽지 않은 이유는 인프라와 도구가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통계조차 성별로 분리되어 있지 않아 정책이 성별로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각 부처 내 여성정책을 통합하여 바라볼 수 시스템이 부재하다. ‘여성정책조정회의’는 여성정책 추진 현황을 점검하도록 되어 있으나 실제 정책 조정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난 2002년 11월 국회는 ‘성인지적 예산편성 및 여성관련자료제출촉구결의안’을 채택하였으나 아직까지도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지자체로 가면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여성전담 부서조차 없는 곳이 수두룩하며, 아동이나 복지분야 예산을 여성관련 사업으로 예산편성을 하기도 한다. 또한 여성사업으로 매년 동일한 내용의 이벤트성 사업에 많은 예산이 치중되어 있다. 아빠요리경연대회, 여성솜씨 작품전, 알뜰시장 운영, 동거부부합동결혼식, 월동용 김장 담가주기 등 여성과 관련 없는 사업이나 행사에 예산이 지원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자체의 경우에는 여성관련 법규나 단체장의 책무가 자치법령으로 명시되지 않은 경우도 많으며 자체의 전문성과 역량, 예산 확보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사실상 처음부터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성인지 예산 편성 위한 인프라 구축 필요

성인지 예산 편성을 위해서는 인프라 구축, 성인지 교육, 여성정책자문 기구의 전문성과 역량 강화, 필요성을 명시하는 법령 개정 등 필요한 것이 많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성정책을 ‘출산율 제고 정책’, ‘여성인력 활용정책’으로 대치하거나 여성을 ‘동원의 대상’, ‘보호나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온존하는 한 제대로 된 성인지 예산이란 요원하다.

평등한 관계를 바탕으로 여성이 정치, 경제, 사회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전통적 성별분업을 해소하고 남녀 모두가 일과 가정, 여가 생활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정책과 프로그램의 제시, 여성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차별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 여성의 생애주기에 따른 노동, 건강, 임신, 출산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정책, 여성농민, 장애여성, 이주여성, 여성노인 등 다양한 집단의 여성의 특성을 고려한 정책 등 세심한 노력이 수반될 때 진짜 성인지 예산이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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