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 이용범 기조본부장의 반박글을 읽고 답답함을 느끼면서 여전히 한국노총이 민주노총의 입장을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민주노총의 비판을 ‘비난’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 또한 안타깝다.

한국노총이 비정규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고자 하는 의지에 대해서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민주노총의 입장에 대해 다시 한번 분명히 할 필요가 있어 정리를 한다.

원칙을 지키면서 유연성 발휘해야

첫째, 내가 지난 2일자 매일노동뉴스를 통해 한국노총의 수정안을 비판한 이유는 한국노총이 정작 투쟁해야 할 때 투쟁을 포기하고 야합하였다는 점이었다. 독자들은 11월 노사교섭에서 사용자단체는 일관되게 불성실한 교섭 태도를 보였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교섭 결렬은 이미 예고된 수순처럼 여겨져 왔다. 연내입법화를 위해서는 12월1일부터 국회 심사과정에 대응하여 본격적인 장외투쟁과 국회의원 설득작업이 필요한 일이 되고 있었다.

한국노총은 민주노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년4개월 간 양노총이 함께 요구하며 노력해 왔던 공동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포기 선언하고 말았다.

백보 양보하여 한국노총 이용범 본부장이 주장하듯 투쟁도 하고 법안도 쟁취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지 못할 만큼 ‘한국노총의 실력과 자신’이 없었다면 투쟁하려는 민주노총의 발목을 잡고 수구언론의 왜곡된 주장을 돕는 일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 민주노총은 한국노총이 하반기에 총파업 준비를 하지 않았다고 비판하지 않았다. 총파업을 할 만큼 준비되지 못한 것을 상호 이해하고 총파업 이외의 다른 방법이라도 최선을 다해 함께 가는 것이 동지적 의리이자 배려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쟁할 엄두도 내지 않고 투쟁하려는 동지의 발목을 잡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한국노총 이 본부장은 야합이 아니라며 브라질 모교수의 “특정시기에 계급간의 힘 관계를 정확하게 계산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고용임금 관계에서 타협을 배제하고 최대치를 요구하는 최대강령주의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혁명을 하더라도 주고받기 식의 타협은 불가피하며 개혁 국면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타협은 야합이나 배신과 다르다”라는 인터뷰를 인용하였다.

그렇다면 타협과 야합의 차이는 무엇이겠는가? 힘 관계(주체역량과 객관정세)를 고려해야 한다는 말은 나의 평소 지론이다. 최대강령주의를 반대하는 것도 나의 지론이다. 그러나 나는 타협과 야합의 차이는 구분할 줄 안다.

한국노총은 비정규 확산을 막고 차별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조차 밑도는 주장을 하고 있다. 4월과 6월 국민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되었던 비정규 남용을 막아야 한다는 ‘사용사유제한’을 포기하였다. ‘원칙을 포기한 타협’을 한 것이다. 그래서 야합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힘이 약하면 원칙도 버릴 수 있고, 영합할 수 있다는 식의 생각은 노동운동의 근본 자세가 아니다. 자본주의체제 내에서 노동운동을 한다는 것은, 자본의 착취와 두터운 벽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것이며, 투쟁하는 것이다. 당장 실익만을 추구한다면 노동운동을 하기보다는 정치를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노동운동은 최대강령주의를 해서도 안 되며, 현실타협적인 실리주의에 빠져서도 안 될 것이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현실을 감안하는 유연성이 발휘하는 것, 이것이 민주노총 기획실장인 나의 생각이다.

한국노총 이용범 본부장의 주장은 실력도 자신도 없으니 타협했다고 말하며, 원칙을 지키려는 민주노총을 향해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힐난해서는 안 된다. 노동운동의 원칙을 지키고자 어려웠던 그 많은 시절을 눈물과 피땀으로 이겨 온 수많은 열사들과 동지들의 노력을 함부로 깎아내리는 논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칙은 현실을 바꾸는 것

둘째, 민주노총은 절박한 비정규 문제 해결을 위해 연내입법화를 미루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용범 기조본부장은 마치 ‘민주노총이 원칙만 내세우고 연내입법이 안 되어도 별로 개의치 않는 것’ 럼 말하는 것은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5년 동안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비정규 차별 해소를 위해 투쟁해 왔던 조직이다. 하루라도 빨리 법제도를 정비해서 매년 50~60만명꼴로 확산되고 있는 비정규직 확산을 막고 차별을 없애고 노동3권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앞장서 이끌어 왔던 조직이다.

연내입법화는 이미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노사대표 회동에서도 밝힌 바 있고, 올해 9월23일 대의원대회에서도 하반기에 권리를 보장하는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고 목표를 정한 바도 있다. 마치 한국노총식의 수정안에 동의하지 않으면, 비정규 법안의 시급성을 부정하는 것처럼 매도하는 것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셋째, 비정규직 남용을 막기 위해서는 사용 사유제한이 꼭 필요하며,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적용과 현실적인 차별시정제도가 필요하고, 불법으로 판정된 파견근로(이른바 불파)는 안정된 일자리로 전환시키는 고용의제가 보장되어야 한다.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비정규직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정부는 모른 척 방치하다 보니까 비정규직이 900만명에 가까워졌다. 이런 현실을 바꾸려면 돈벌이가 되면 최고라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정규직을 최대한 줄이고 차별을 없애야만 경제도 살고 노동자도 살고, 사회양극화도 줄일 수 있다는 사고의 전환이 있어야만 한다. 원칙이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꿔나가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이 시점에서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을 다시 들먹이지 않겠다.

김태환 열사 죽음 헛되이 말아야

넷째,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은 미룰 수 없는 현안 문제이다. 한국노총은 비정규 법안(기간제, 불법파견 등)과 별도로 특수고용 노동3권 문제를 이후에 노사교섭을 하여 만들자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비정규 차별해소와 권리보장이 사회적 쟁점으로 되어 있는 지금 이 시점에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입법화 문제에 대한 최소 원칙과 구체적인 날짜라도 잡지 않는다면, 사실상 몇년을 더 끌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미 쟁점이 된 사항도 사용자가 버티고 사용자 눈치나 보는 거대정당들이 모르쇠 하면 포기해버리는 상황에서, 사회적 관심이 다 떠나버린 내년 상반기에 입법화하자는 것은 아예 하지 말자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나는 김태환 열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적어도 연내 국회에서 각 정당들은 최소한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을 명확히 합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노동3권을 줄지 말지를 흥정하거나 11월 노사교섭에서 사용자가 그랬던 것처럼, ‘만만디’로 나와서 교섭이 유명무실해지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 한국노총의 수정안처럼, 비정규 법안 논의와 분리시키고, 원칙도 명확치 않은채 기약없이 노사교섭에 맡겨두어서는 특수고용 노동3권은 차기 정권에 가서나 다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번 논쟁이 발전적으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비정규 노동자를 위한 한국노총의 선택은 다시 검토되어야 하며, 투쟁하지 않고는 단 한 걸음도 전진할 수 없다는 너무나도 평범한 진리를 되새겨 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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