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단칸 셋방, 4남매, 6남매가 한 이불에 엉겨 붙어 추위를 잘도 피했다. 형제들의 이불 한쪽 당기기 몸싸움은 치열했다. 우애를 강조하던 어머니는 형제들 사이의 다툼에는 빗자루 몽둥이를 들이댔다. 그런데도 형제들은 식사 때면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기 위해 허겁지겁 밥그릇을 비웠다. 마치 어미 새에게 먹이 더 달라고 입을 쫙 벌리던 아기 새들처럼.

“배고파, 밥 더 줘.” 더 달라는 눈치에 당신의 그릇에서 늘 덜어주곤 하던 어머니. 쫑알대는 새끼들을 위해 어머니는 쌀 한말에 쑥을 버무렸다. 밥인지, 쑥인지 알 수 없는 정체모를 밥도 금방 동이 났다. 밀가루 한 포대를 가져다 수제비 한 솥을 끊여도 무쇠 솥을 삼킬 듯한 아이들의 먹성은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가난했지만 그래도 그 때는 잘만 살았는데.”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아이들은 용케 잘도 컸다. 결혼하고 애 낳고 대견하게 자라난 자식들과 손주들의 재롱을 보며 미소를 지을 나이. 그러나 자식들은 부모를 모실 형편이 못되거나 외면했고, 자식을 위해 다 바친 부모의 생은 날개 꺾인 신세가 되었다. 노동력을 상실한 채 의탁할 곳이 없어진 ‘홀로된’ 부모의 삶은 전국에 78만여명에 이른다. “지 밥그릇 복은 갖고 태어나. 애 하나는 낳아서 키워야지.”


“이렇게 살다가 아프면 죽는 기지”

서울 성북구 보문동 ‘독거노인’ 김분기(65) 할머니는 꼭 1년 만에 다시 찾은 기자에게 “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면서도 “애는 꼭 낳아야 돼”라며 질책했다. 지하철 6호선 보문역에서 내려 가파른 길을 따라 10분여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산동네. 누군가 주워놓았을 박스 뭉치와 장판이 이름모를 주인의 현관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할머니, 계세요.”

문을 두드렸다. 인기척이 없다. 다시 창문을 두드렸다.

“누군교.”

다행히 집에 계신다. 안부를 물었다. 1년 전과 달라진 것은 사회단체 ‘작은 손길’에서 해준 도배와 문짝 섀시. 삐걱거리는 마룻바닥과 위풍을 조금 잠재웠을 뿐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방안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에 놓인 먼지 쌓인 가스렌지와 양철냄비는 그대로였고, 연탄불에 올려놓은 큰 솥의 물로는 간신히 세수만 할 수 있는 처지였다. ‘퇴행성관절염’ 치료는 여전히 진척이 없었고, 동사무소에서 받는 17만원이 수입의 전부였다. 시집간 딸은 살림살이가 더욱 안 좋아 지는지 최근에는 연락도 뜸하고 잘 찾아오지도 않는다.

“사위가 잘 돼야 되는데 요즘 일거리가 계속 없나봐.” 용돈받기는커녕 당신이 오히려 딸에게 줘야 할 판이라며 한숨짓는 노인. “(딸이) 보고 싶을 때 가끔 공원 나가 보긴 해요.” 지척 거리의 ‘동망봉’ 공원. 단종의 왕비인 정순왕후 송씨가 날마다 그 봉우리에서 동쪽의 영월을 바라보며 단종의 명복을 빌었다는 곳이다. 자나깨나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이 그 봉우리에 또 깊게 배이리라.

이웃에서 홀로 살고 있는 80대의 한 할머니가 마실 나와 있다. 좁은 방에 이불하나 나눠덮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할머니들. “자식들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어.” “지금 세상에 누가 부모를 모셔. 아프지만 않으면 혼자 사는 게 편해”

마흔이 채 되기도 전에 남편과 사별하고 상경해 5남매를 키우느라 갖은 풍상을 다 겪었다는 팔순의 할머니. 올라오는 길에 모아 놓은 박스의 주인이었다. 자식들은 모실 형편이 되지 않고, 부양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생계비 지원을 받지 못하는 처지. 할머니는 한달에 열흘정도 공공근로를 해서 버는 돈 20여만원으로 생활을 한다. “몸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누가 먹여 살려주나. 이렇게 살다가 아프면 죽는 기지. 뭐 있노.”


가난한 독거노인 복지대책은 ‘그림의 떡’

“저는 에로운 80십 독거노인임니다. 90십년도부터 당요와 농내장을 알어왓슴니다. 이재는 실명단게에 왓슴니다. 더 견딜 수 없어 이 길을 택한검니다. 집주인 아줌마와 2동에 사회담당보조 아가시와 너무나 고마워슴니다. 죽어도 잊지못할겁니다.(중략)” 지난 7월 지하철에서 투신자살한 한 노인의 품에서 발견된 유서의 내용이다. 병원진단서 뒷면에 어지러운 맞춤법과 삐뚤빼뚤 휘갈겨 쓴 유서 한 장에 담긴 노인의 절망.

“70대 독거노인 숨진 지 열흘 지나 발견” “주거용 비닐하우스 불, 독거노인 숨져” “독거노인 대상 사기범죄 판쳐” 등등. 독거노인의 삶은 구석으로 내몰린 채 외면받고 있다. 초고속 성장을 향해 내달리려는 대한민국호. 고령사회로 접어드는 것도 초고속이다. 젊어서는 아이들 뒷바라지 하느라 자신을 돌보지 않았고, 늙어서는 홀로 생계걱정에 외로움과 씨름해야 하는 처지. 독거노인들의 삶은 위태롭기만 하다.

독거노인은 전국에 78만여명으로 전체 노인인구의 18%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가 시의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내 독거노인은 6월말 현재 12만4,879명으로 서울시 전체 노인인구의 17.5%에 달했다. 독거노인 숫자는 2001년 8만3,875명, 2002년 9만769명, 2003년 9만9,901명, 2004년 11만1,555명으로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평균수명이 78세를 넘어선 상황에서 노인복지 대책이 시급함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그러나 정부의 2007년까지 30만개 ‘노인일자리 창출’ 계획에 기업들이 얼마나 호응을 보일지는 의문이다. 또 2008년 7월 시행을 목표로 한 ‘노인수발보장법’은 돈 없는 독거노인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수급자격을 ‘6개월 이상 타인의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한 자’로 제한하고 있는 점이나, 15~20만원의 식비나 4인 이하 병실료를 본인이 부담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는 수급자격은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6개월이 일반적이며,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본인부담을 경감(기초수급자 본인부담 없음, 저소득층 10%)할 예정으로 수발급여의 적정수가와 급여범위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점심도시락 하나로 세끼 식사 해결

정부의 ‘노인수발보장법’과 ‘노인일자리창출’ 등 복지대책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외벽은 시멘트 칠도 안된 채 벽돌 그 모양 그대로 드러나 있고, 슬레트 지붕은 그저 하늘만 막아놓았을 뿐인 집. 현관문은 나무판자를 엉성하게 이어 붙여 놓았다. 삐그덕 거리는 방문을 열자, 살림살이와 가재도구가 어지러이 널려있다. 부엌 가스렌지에는 음식물 찌꺼기가 덕지덕지 눌러 붙어 있고, 싱크대에는 설거지 거리들이 한참이나 그곳에 담겨 있다. 수도조차 없는데 어디서 물을 끌어다 오는지, 언제 반찬을 해 먹었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들. “탁.” 손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잡는 할머니. 그걸 지켜보는 눈은 멀뚱멀뚱 그 장면을 쳐다볼 뿐이다. 서울 은평구 진관내동. 3호선 구파발역 인근의 이금선(67) 할머니는 35년간을 이곳에서 홀로 살아왔다. 젊어서도 건강이 좋지 못했지만 지금은 더하다. 폐암에 위궤양, 당뇨 등 각종 질환들에 시달리고 있는 이 할머니. 남편과는 이혼한 지 오래고, 돌봐줄 자식들도 없다.

“거의 나가질 못하고, 하루 종일 누워 있어요.” 지역 복지관의 도움으로 다행히 폐암수술과 통원치료를 하고 있다. 하지만 병원치료가 모두 보험이 되는 것도 아니고, 초음파, MRI 검사나 일부 약 등은 개인부담이다. 30여만원 생계보조금 가운데 방세 7만원(보증금 400)과 치료비로 20여만원이 나가고, 10만원 정도로 한달 생활비를 써야한다. 그러다보니 쌀, 반찬 등은 사먹을 처지도 못된다. “(나물을 좋아하지만) 먹고 싶다고 사먹을 처지가 못돼죠.”

지역 복지관에서 주5일 제공하는 점심도시락이 유일한 끼니 해결책이다. “복지관에서 점심 도시락이 매일 와요. 김치도 거기서 주지 않으면 구경도 못하죠.” 당뇨라 음식물 조절도 잘 해야 하지만 그럴 처지가 못된다. 연탄 100장에 3만7천원. 할머니의 생활비 가운데 큰 몫을 차지한다. 그런데 영세민 등에 지원되는 연탄 200장을 작년에는 받지를 못했다. 할머니 나이가 적다는 이유에서였다.

은평노인종합복지관의 강경원 사회복지사는 “수색, 구파발 등 은평구가 다른 서울지역보다 수급자와 독거노인이 많다보니 순위에서 밀린 것 같다”며 아쉬워한다. 아침은 드셨나는 질문에 주섬주섬 일어서는 할머니. “아침은 건너뛰고 점심은 죽이라도 끊여 먹을까 해요.” 그러나 부엌에는 음식을 한 지 꽤 오래된 흔적들만 가득하다. 가스렌지에는 오래된 음식물 찌꺼기가 덕지덕지 눌러 붙어 있고, 싱크대에는 설거지를 기다리고 있는 그릇들로 가득하다.


병마·외로움·가난에 이어 재개발로 집 비워야

병마와 지독한 가난과의 싸움은 또 다른 ‘독거노인’의 집도 마찬가지였다. 인근의 옥탑방. 박영자(65) 할머니의 집에 들어서자 매캐한 연탄가스 냄새와 혼미한 약 냄새가 뒤엉켜 있었다. 각종 약 봉지와 상자가 가득한 집안. 거동조차 불편한 할머니의 안색이 한 눈에 중증 환자임을 알 수 있다. 고단한 육신은 쉬이 병마의 침입을 허용했다. 몇 년 전 심장판막수술과 위 수술을 한 박 할머니는 간경화까지 겹쳐 고생하고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숨이 막히고, 정신을 잃을 때가 많아요.”

40대 중반의 나이에 간암으로 사망한 오빠에 이어 최근에는 동생까지 간암으로 사망했다. 대물림되는 가난과 함께 질병마저 피해가지 않는다. 낼 모레면 동생의 49제인데, 어떻게 챙길지, 세상살이가 그저 어지러울 뿐이다. 119에서 설치해 준 전화기의 빨간 버튼이 꼼짝할 수 없는 노인의 생명줄인 셈이다. 병원비도 보험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한번 병원신세를 지면 10여만원이 깨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은평뉴타운’ 재개발로 인해 내년 봄에는 집을 비워야 한다. 인근 불광동, 연신내 등으로 이사를 가려면 최소 1,200~1,300만원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엄두를 낼 수가 없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20만원으로 살아왔는데 어디서 돈을 구한단 말인가? 서울시에서 방세가 싸다는 구파발로 5년 전 이사를 왔는데 또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할 따름이다.

“늙고 병든 이에게 누가 돈을 빌려주며, 세를 놓으려 하겠어요.” 임대아파트에 들어가려면 생계비 40여만원(장애수당 9만원 포함)을 포기해야 한다. 임대료를 낼 돈도 없는 이에게 생계비를 포기하라는 법에는 눈물이 없었다. 요양시설이라도 들어가려니 강아지를 데리고 갈 수가 없다. “강아지가 불쌍해서, 너하고 같이 죽자. 살면 뭐하나 이런 생각도 해요.” 배고프면 밥 달라고 손 등을 가볍게 긁고, 방안에서는 똥, 오줌을 싸지도 않는 신통한 강아지. 주인의 아픔을 헤아리는 오래되고, 유일한 말벗인 강아지가 할머니는 자꾸만 눈에 밟힌다.

부실한 식사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은평노인종합복지관에서 제공해주는 점심도시락이 하루 식사의 전부다. “해 먹을 기력도 없어서, 그냥 세끼 나눠 먹어요.” 쌀, 반찬, 연탄 등 동사무소나 사회단체에서 온정의 손길도 많을 터. “안나왔어요. 쌀은 싸게 구입하는 거고, 연탄은 전화는 받았지만 아직….” 왜 안나오는지 창피해서 물어볼 수도 없다는 할머니. 동행한 복지사의 표정이 밝을 수가 없다. “동사무소와 복지단체 등이 협조체계를 갖추고는 있지만 일일이 다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월권이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복지사의 설명이었다.


마지막 잎새처럼 남은 한 장의 달력

방세가 싼 곳을 찾아 달동네로, 변두리로 찾아든 ‘독거노인’들. 그러나 재개발은 여지없이 찾아와 등을 떠민다. 내년에는 집을 비워야 한다. 또 어디로 밀려가야 하나. 여기저기서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개발지역 상인들과 집주인은 ‘보상금’을 더 받기 위해 투쟁하지만 가진 것 없는 독거노인들은 항변할 힘조차 없다. 독거노인들은 외로움과 병마와 씨름하며 한숨짓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마지막 잎새처럼 위태롭게 달려있는 한 장의 달력. 2006년 독거노인의 새해는 ‘철거’와 함께 시작될 것이다.

‘독거노인’ 정부 수발제도의 사각지대 놓여선 안돼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실


노인성 질환으로 인해 일상생활이 어려운 국민들에게 수발, 일상생활의 지원 등을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논의가 무르익고 있다. 그동안 치매, 중풍 환자에게 필요한 장기적인 요양과 수발은 ‘며느리’로 대표되는 가족에게만 맡겨져 있었고, 주변의 가족이 없는 경우는 죽음으로 내몰려 왔다.


사실, 치매, 중풍 환자들과 이 분들을 외롭게 수발해야 했던 가족의 피폐함은 익히 알려져 왔고, 그나마 돌봐줄 가족이 없는 ‘독거노인’의 삶의 현실은 더 이상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노인수발보장법’, ‘장기요양보험’ 등에 대한 논의가 앞서 말한 부담을 국가가 나누려는 것이라는 점은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지난 9월 15일 공청회를 통해 공개된 정부의 ‘노인수발보장법’의 내용은 그 취지의 바람직함과는 달리, 여러 가지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무엇보다, 수발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 인프라 구축 방안이 허술하다.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업무보고서에 따르면 민간 자본과 기관의 참여를 적극 독려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민간 기관의 참여율이 높아지면 영리 활동의 동기가 강해진다는 점에서 매우 신중해야 할 지점이다. 현행 건강보험제도 역시 10%에 불과한 공공의료 인프라에 의해 과도한 진료비를 제대로 억제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부담되고 있는 현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또한 과잉이용을 억제한다는 이유로 설정한 20%의 본인부담과 급여 제외 대상들은 국민들에게 과도한 경제적 부담이 될 것이다.


정부의 안에 따르면 수발 서비스를 받기 전에 의사 소견을 받도록 하고 있어, 불필요한 이용을 억제할 장치는 마련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수발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국민들이 경제적 이유로 이용할 수 없는 일이 없도록 최대한 그 문턱을 낮추어야 할 것이다.


두 가지 문제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현행 보건복지부의 안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독거 노인 등 수발 제도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사회 양극화에 따른 빈곤의 확대에 대해 모든 정당과 사회단체가 우려하고 있지만 현실의 제도 설계에서는 그 우려가 반영되고 있지 않음을 확인하게 된다.


돈이 없어도 치매와 중풍 환자들이 그대로 방치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본 제도의 핵심적인 취지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 취지는 반영되지 않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기초생활보장제도, 건강보험제도 등에서 도덕적 해이, 과도한 국가 재정 부담에 대한 우려, 민간 참여의 효율성 등이 공공성의 논리를 뛰어넘는 사례를 수차례 보아왔다. 많은 국민들이 기대하는 수발 서비스 지원에 대해 ‘노인수발보장법’ 만큼은 따뜻한 대한민국임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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