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박사의 성공에 온 나라가 생명공학이라는 미래 산업을 선도할 수 있다는 축하의 샴페인을 터트릴 때 조마조마하던 마음이 현실로 드러나고 말았다. 그의 빛나는 성공 뒤에 가려진 여성들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이다. 대를 잇기 위해 불임클리닉을 수없이 드나드는 것이 관행처럼 된 한국 여성들에게 ‘난자 제공’은 생각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쇠 젓가락을 사용할 수 있는 한국의 손 기술과 ‘자식’을 위해서라면 또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여성들의 합작품이 바로 황박사의 성공의 기초였는데 쇠 젓가락을 사용할 수 있는 정교한 연구자의 기술만 강조했지 그 이면의 ‘여성’들은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철저히 무대 뒷면에 있었다. 

여성은 언제나 무대 뒤편에 있었다

무대 뒷면에서 뒷바라지를 하는 여성들은 문제가 생길 때만 무대 전면에 오른다. 황박사의 연구가 난자제공의 윤리적 문제로 ‘지속가능성’에 암운이 드리웠을 때 이들 여성들은 과감하게 무대 전면으로 나와 자발적으로 난자 공여 의사를 밝혔다. 순식간에 수백명의 여성들이 나선 것이다. 생명공학분야의 여성과학자들 조차 그녀들의 순발력과 열정 헌신에 “대단하다”는 감탄을 연발하고 있다. 한국 역사 속에서 이름 없는 ‘대단한 여성’들은 수없이 많다. 그런데도 독립운동, 민주화운동 심지어 노동운동 잊혀진 진보적인 역사쓰기에도 여성들은 없다. 청계천에 우뚝 세워진 전태일 열사의 동상도 홀로 있다. 그가 청계 피복 여성들의 노동조건에 안쓰러움 때문에 분신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그를 청계천에 다시 세운다면 당연히 그가 목숨을 던진 이유가 되었던 여공의 동상도 함께 했어야만 하지 않을까? 광화문에 서있는 이순신 동상이 다시 수백억을 들인 KBS의 드라마로 다시 재현되면서도 이순신 동상을 보면서 임진왜란의 여성 전사 ‘논개’는 잊혀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성씨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로 그녀가 목숨을 버렸던 진주 남강가의 바위로만 남아있다. 호주제를 폐지하고 양성평등 법안의 입법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감히 반대하지 못할 정도로 여성운동이 활발해졌다지만 여성을 잊어버리는 옛 관습은 미래로 나아가는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역사의 이면으로 방치된 여성들이 이제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업적과 과오의 실명제 시대에 여성들만 무명의 존재로 남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 속에 얼굴을 묻었던 여성, 조선시대의 “재가녀손 금지법”의 철칙에 따라 남자 후손을 위해 ‘수절’했던 여성들이 이제는 당당하게 ‘이혼’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혼율이 가장 낮았던 나라가 짧은 기간 동안 이혼율 세계 2위 국가로 변화한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대단한 여성이 가족과 사회 속에 익명의 존재 상태에서 실명을 요구하게 되면 ‘나쁜 여성’ 이 되는 것이다. 

여성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호명하라

더 늦기 전에 여성들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호명해야 한다. 쌀 시장 개방 반대를 둘러싸고 연일 농민들의 절규가 이어지고 있다. 세계화의 거친 파도 속에 노아의 방주를 타고자 하는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노아의 방주를 서로 타려고 하는 아귀다툼 속에서 진정한 해법을 마련하는 것은 대단한 여성들을 해결사로 호명하는 것이다. 정말 비싸도 우리 쌀을 사줄 수 있는 ‘애정 있는 소비자’를 만드는 것, 열악한 농촌을 지키고 있는 생산자 여성농민과 도시의 여성소비자를 경제 논리가 아닌 여성연대의 논리로 이어주는 방안으로 미래를 준비하려는 것은 생각에 떠오르지도 않고 있다.

세계화를 주도하는 국가에서 세계화라는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가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호소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여성 소비자들이었다. 거대한 창고 마트 대신 동네 정육집을 돌아가면서 이용했던 것은 스위스 여성들의 자발적인 선택이었다. 제3세계 여공들의 피 묻은 옷 대신 “깨끗한 옷을 입자”는 네덜란드 여성들의 캠페인은 혼자만 노아의 방주를 타려고 하는 다툼을 함께 파도를 헤쳐 가는 지혜로 바꾸는 여성들이었다.

더 늦기 전에 여성들을 ‘진정한’ 참여자로 끌어들일 때 대단한 여성이 성난 나쁜 여성이 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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