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차별과 쌀 개방 정책에 분노하는 노동자, 농민의 목소리가 대학로와 광화문 등 서울 시내를 가득 메웠다. 이들은 노동자, 농민의 연대투쟁을 통해 비정규권리보장 입법쟁취와 쌀개방 비준 및 고 전용철씨 사망에 대한 책임자 처벌 투쟁을 결의했다.

전국민중연대를 비롯해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민주노동당 등은 1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4일 오후 3시 대학로에서 ‘민족농업사수·비정규권리보장 입법쟁취’를 위한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대학로 집회가 끝난 뒤 광화문까지 행진했으며, 경찰 저지선을 뚫고 광화문 네거리를 점거해 한시간여동안 시위를 벌였다.
 


민중연대 등은 이날 투쟁선포문을 통해 “차별과 빈곤을 확산하는 정부, 노동자·농민을 다 죽이는 정부를 심판하기 위한 투쟁을 강력하게 전개할 것”이라며 △쌀개방 저지 및 민족농업 사수 △고 전용철 씨 사망에 따른 책임자 처벌 △비정규 권리보장 입법 △파병연장 중단 등을 촉구했다.

이 자리에서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각 조직은 노동자, 농민, 빈민, 학생들의 연대투쟁을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전재환 민주노총 비대위원장은 투쟁사를 통해 “비정규직 차별의 아픔으로 노무현 정부와 당당하게 붙고자 한다”며 “주저말고 노동자, 농민, 빈민이 비정규 차별철폐와 민족농업사수를 위해 당당하게 싸워나가자”고 호소했다.

 

 


문경식 전농 의장은 “다같이 힘을 모아서 농민이 살고 노동자들이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 세상을 만들자”며 “농민들이 앞장서서 죽을 각오로 투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비대위원장도 “정부가 경찰을 동원해 농민을 죽이고 비정규직들에게는 사유제한이 빠진 ‘독이 든 빵’을 강요하고 있다”며 “노동자, 농민, 학생들이 민족농업을 사수하고 비정규직 차별을 철폐할 때까지 투쟁하자”고 호소했다.

대학로 집회를 마친 뒤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은 광화문 교보생명 앞까지 행진했으며, 광화문 우체국 방향 샛길을 통해 광화문 네거리를 1시간여동안 기습점거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물대포를 쏘며 집회 참가자들과 충돌을 빚기도 했고, 또 일부 시위대는 청와대 앞에서 기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한편 민주노총은 오는 7일을 노동자-농민 전국동시다발 연대투쟁의 날로 설정해 놓고 있다.

 

 

 

 

<인터뷰> 민중대회 참가한 노동자 백인수씨(44·경북 구미)
- ‘오리온전기’라고 적힌 몸벽보를 두른 노동자들이 눈에 많이 띈다. 오늘 민중대회에 대거 참여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오리온전기는 올 3월 미국계 펀드인 매틀린패터슨에 매각된 바 있다. 매각 당시 매틀린패터슨은 노조와 향후 3년 이내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했었다. 하지만 매각 6개월만에 1,300여명의 노동자들이 무더기 해고했다. 하루아침에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된 억울한 사연을 알리고, 비정규 보호입법 쟁취 투쟁에 함께 하고자 상경했다.”


- 오늘 민중대회의 주제가 ‘비정규직 권리보장 쟁취 및 쌀 개방 반대’다. 농민 문제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세세한 내용은 다르지만, ‘생존’을 주장한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본다. 또한, 갑자기 ‘밥줄’을 잃을 수 있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점에 있어 정규직 노동자들도 자유롭지 않음을 알아줬으면 한다. 이번에 해고된 우리 오리온전기의 노동자들 대부분도 정규직이었다. 노동자, 농민 모두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치게 만든 정부의 무능함을 탓하고 싶다.”


- 정규직 노동자라고 했는데,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비정규법안에 대해서는 어떠한 입장인가?
“비정규법안이라면 말 그대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법안은 결과적으로 비정규직의 확산을 초래하는 악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법은 결국 우리 세대는 물론이고, 다음세대들까지 비정규직으로 차별받으며 살아가게 만들 것이라는 입장이다. 노동자들이 항상 주장해 왔듯이 ‘비정규 보호 입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본다."

 

 

 

<인터뷰> 민중대회 참가한 농민 박일훈씨(53·충남 공주)
- 날씨가 매우 춥다. 충남 공주에서 서울까지 올라온 이유는 무엇인가?
“농민들은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다. 쌀 비준안이 국회 통과된 이후 농민들은 우선 ‘정부에 속았다’는 분노를 안고 있고, ‘앞날을 알 수 없다’는 불안함에 떨고 있다. 벌써부터 농가에는 쌀값이 떨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우리가 느끼고 있는 허탈감과 슬픔, 분노를 호소할 데가 없어 서울로 올라왔다.”


- 농민시위에 대한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전용철 농민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엔 믿기지 않더니 나중엔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화가 났다. 나 역시 지난 1일 광화문에서 열린 농민대회에 참석했다가 오른쪽 귀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평생 땅만 파며 살아온 농민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죽기까지 해야 하나?”


- 오늘 민중대회의 주제가 ‘비정규직 권리보장 쟁취 및 쌀 개방 반대’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실제로 노동자의 문제는 곧 농민의 문제다. 예전처럼 농사만 지어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 농민들은 농사일 외에도 공사판 막노동이나 공장 일용직 등을 겸하고 있다. 남성 농민들의 경우 대부분이 ‘비정규 노동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 나 역시 빌딩 경비직이나, 청소용역 등의 일을 하고 있다.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 사회적 보호는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나 스스로를 위해서도, 아직은 학생이지만 언젠가 사회로 나갈 내 자식들을 위해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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