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김명호 민주노총 기획실장이 “민주노총만은 855만명 비정규직을 포기할 수 없다”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그 내용을 보면서 양 노총이 앞으로 건강하게, 제대로 연대하고 공조하기 위해서라도 진하게 논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쓴다. 그래서 민주노총이든 누구든 반박 글을 올리면 매우 신속하게 논쟁에 임할 것이다. 그리고 쟁점이 무엇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김명호 실장의 제목 형태를 따서 “한국노총만은 무책임하게 비정규 법안을 표류시킬 수 없다”고 제목을 정했으니 이해하여 주길 바란다.

먼저 비판이나 토론이 생산적이고 건강하려면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판이나 토론의 상대방은 정치적 저의나 악의가 있지 않은가 의심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감정도 상하고 화도 난다.

그런 점에서 김명호 실장이 “이런 내용대로 여당이 법안을 만들게 되면 비정규직이 줄어들고 차별이 없어질 것이라는 한국노총의 주장은 기가 막힌 궤변”이라는 기술은 사실에 전혀 근거하지 않은, 한마디로 악의에 찬 비난이다. 김 실장에게 묻건대 한국노총이 언제, 어느 자리에서, 어느 자료에서 그런 주장을 했는가?

한국노총은 지난 11월 30일 ‘입법의 마지노선’이라는 전제 하에 이른바 ‘수정안’을 발표했을 때 그 기자회견문에 이렇게 밝혔다.

“우리 한국노총은 지금도 비정규직의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양 노총이 그동안 제시했던 요구안도 턱없이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노총은 올 정기국회에서 우리의 마지노선대로 입법이 이루어진다고 할지라도 비정규직 사용의 엄격한 제한과 차별 해소,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지속적으로 개정 투쟁을 벌이는 것은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

김명호 실장은 이 기자회견문 말고 다른 근거자료를 제시할 수 없다면 담백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기 바란다. 그래야 김명호 실장도 고민하듯이 우리 운동이 정말 건강해진다.

그러면 이제 한국노총의 선택(굳이 ‘결단’이나 ‘승부수’라고 표현하지 않겠다)에 대한 김명호 실장의 비난에 가까운 비판에 대해 살펴보자. 김 실장은 한국노총에 대해 첫째, 투쟁의 길을 포기하고 야합의 길로 접어든 점 둘째, 한국노총 수정안대로 법안이 만들어지면 차별금지는 물 건너가고 비정규직 확산은 막을 수 없다는 점 셋째,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을 포기하였다는 점 등 3가지 점에서 비판을 했는데 반박의 단순함 정도를 고려해 나열된 순서와 반대로 반박을 하겠다.

먼저 한국노총이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을 포기하였다는 주장과 관련해 김명호 실장은 “어떻게 하는 것이 포기를 안 하는 것이고 그래서 민주노총은 이러저러하게 하려고 하는데 한국노총이 포기했다”는 근거가 전혀 없어 반박조차 하기 어렵다. 한국노총은 이번 정기국회에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과 관련된 법안이 제출조차 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금년 내에 처리하고 난 후에 노사협상을 통해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입법을 내년 상반기에 추진할 할 것”을 요구했는데 민주노총의 안은 도대체 무엇이기에 한국노총이 포기하였다고, 그렇게 악의적으로 매도하는가? 그동안 수없는 만남을 통해 확인했지만 민주노총 또한 한국노총과 동일한 입장이 아닌가? 그런데 아무리 현장에서 치받는다 할지라도 한국노총을 매도하는 방식으로 그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려고 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고 그래서는 운동이 한걸음도 발전 못한다. 지난 6월에 돌아가신 김태환 열사의 시신을 부여잡고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하며 7.7 총파업 투쟁을 전개했던 한국노총은 이 요구를 포기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둘째, “한국노총 수정안대로 법안이 만들어지면 차별 금지는 물 건너가고 비정규직 확산을 막을 수 없게 되어 있다”는 주장과 관련해 2가지 점에서 반박하고자 한다. 한국노총이 노동계 공동요구안에서 후퇴한 안을 ‘입법 마지노안’이라는 전제 하에 수정안으로 제시했다는 것은 비밀도 아니고 숨길 일도 아니다. 한국노총 수정안은, 민주노총 집행부의 교섭안에 대해서도 민주노총 집행부가 한국노총을 비판하는 똑같은 논리로  비판하는 전비연 소속의 노동자들 50여명이 기자회견장을 에워싸고 구호를 외치는 가운데 왜 수정안을 제시하게 되었는가의 이유와 함께 공개적으로 제시된 것이다. 그리고 전비연은 물론 민주노총도, 이 수정안이 원안보다 후퇴한 안이라는 것을 한국노총이 모르기나 하는 것처럼 안의 후퇴를 문제 삼아 한국노총을 비난하고 비판하는데 한국노총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100%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노총은 왜 수정안을 제시하였는가? 한국노총이 천하의 바보가 아니라면 무슨 곡절과 사연이 있었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 김명호 실장은 이 곡절과 사연에 대해 한마디도 하고 있지 않다. 정작 사태의 진실은 여기에 있다는 것을 김명호 실장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텐데 왜 피해 가는지 동지적 관점에서 정말 속상하고 답답하다.

이 곡절과 사연에 관련해서 한국노총은 지난 11월 30일 기자회견에서 “브레이크 없는 비정규직 확산에 제동을 걸고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극심한 차별과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이 땅 850만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데 있어 비정규직 법안의 국회 처리는 더 이상 미루어져서는 안 된다”며 “그동안의 투쟁과 교섭의 성과물을 온전하게 보전하고 연내 입법을 확실하게 관철하기 위해 그동안의 노사정 또는 노사 교섭 결과를 고려하여 국회 입법 마지노선을 제시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물론 한국노총도 노동계가 그동안 요구했던 원안을 연내에 입법시키는, 즉 꿩도 잡고 매도 잡을 수 있는 실력과 자신이 있었다면 왜 한 마리를 놓치겠는가? 민주노총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한국노총도 실력만 있다면 전비연이 주장하는 것처럼 비정규직을 통째로 철폐하거나 처음부터 사용사유를 제한하거나 파견법을 철폐하고 싶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두 마리를 다 잡겠다고 하다간 두 마리를 다 놓치는 형국이 아닌가? 가령 민주노총 김명호 실장은 “한국노총 수정안대로 법안이 만들어지면 차별 금지는 물 건너가고 비정규직 확산을 막을 수 없게 되어 있다”고 비판하지만 “이번에도 법안이 만들어지지 않아 무법천지가 계속된다면 차별은 더 벌어지고 비정규직은 더욱더 확산될 것이 아닌가”라는 비판에는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김 실장도 인정할 것이라고 보는데 이 문제는 양노총이 여러 차례 토론을 벌일 정도로 양노총이 다른 길(?)을 갔던 핵심 이유가 아닌가?  따라서 김명호 실장은, 나아가 민주노총은 아무런 비밀도 아닌 수정안의 제시만을 가지고 한국노총을 비판하지 말고 이른바 ‘꿩매 문제’에 대해 책임 있는 답변을 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 김명호 실장이 글이 실린 그 날 매일노동뉴스에서 브라질의 에드워드 웹스터라는 교수가 남아공의 노동운동의 현황과 쟁점에 대해 인터뷰하면서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특정 시기에 계급간의 힘 관계를 정확하게 계산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고용임금 관계에서 타협을 배제하고 최대치를 요구하는 최대강령주의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혁명을 하더라도 주고받기 식의 타협은 불가피하며 개혁 국면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타협은 야합이나 배신과 다르다”

이와 함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한국노총의 이른바 ‘수정안’이 ‘개악안’ 또는 ‘아무 쓸모도 없는 안’처럼 폄하하고 비난하는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는 지난 시기 우리 노동계의 투쟁과 교섭을 스스로 부정하는 잘못된 것이다. 양 노총은 그동안의 투쟁을 통하여 적지 않은 것을 쟁취하였다. 비정규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대폭 제고시킨 것은 물론 파견허용업종을 네가티브 방식으로 확대하는 등 정부 법안의 개악 기도를 일체 저지하였다.

또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취지를 구체화해 차별금지조항을 명문화하는 한편 비정규 노동자가 차별 시정을 청구하고 이에 대해 사용자가 입증책임을 지도록 노사정간 합의를 도출하였다. 그리고 기간제 고용 이후의 고용형태를 명문화하고 아무런 규정이 없는 불법파견에 대해서도 불법파견 판정 이후의 고용형태를 명문화할 수 있는 입법 지형을 마련하였다. 따라서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에 비추어볼 때 이 성과에 결코 만족해서도 안 되지만 이 성과를 노동계 스스로 폄하할 필요도 없다. 한국노총이 ‘입법 마지노선’이라는 전제하에 이른바 ‘수정안’을 내어 국회를 압박하기로 결정했던 이유도 연내 입법을 통해 이 투쟁과 교섭의 성과를 온전하게 보전하고 향후 투쟁의 교두보로 삼자는 것이었다.

그럼 이제 김명호 실장이 첫 번째로 제기한 “한국노총이 투쟁을 포기하고 야합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비판을 마지막으로 살펴보자. 김 실장의 주장을 보면 그동안 한국노총이나 양 노총이 아무 짓도 안하고 최근에 노사교섭이나 하다가 ‘수정안’을 던진 것처럼 매도하고 있다.

김 실장의 주장을 보자. “노사 교섭이 결렬되면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라 정치권을 상대로 본격적인 노정교섭이 시작되어야 한다. 법안은 결국 국회가 만들게 되기 때문이다. 노사 교섭에서 핵심쟁점이 분명해진 이상 정부여당의 잘못된 고용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비정규 문제를 해결하도록 사회여론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사용자 눈치를 살피는 정부여당을 교섭장 바깥과 교섭테이블(노사교섭, 노정교섭)에서 총체적인 공세를 펼쳐 최대한 권리보장 입장에 가까운 법안을 결단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노총은 투쟁은 포기하고 정부여당이 큰 고민 없이 손쉽게 생색만 내고 말 수정안을 던져주고 말았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1997년 말 IMF 이후 신자유주의 광풍과 함께 비정규직의 남용과 차별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노동계는 수년 동안 비정규직 보호 법안의 제정, 개정 투쟁을 전개했다. 특히 작년에 노동부가 보호 법안이라는 이름 하에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면서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까지 얼마나 많은 투쟁과 교섭을 하였는가? 특히 한국노총은 지난 4월 양 노총 위원장 공동 단식농성 투쟁을 제안하는 등  민주노총과 다양한 형태의 연대 투쟁을 하는 것은 물론 노사정 교섭과 노사 교섭을 여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김 실장에게 묻건대 앞서 제기한 투쟁과 사업 가운데 그동안 안 해본 것이 있는가? 노동조합이 혁명조직이 아니라 대중조직인 이상 투쟁과 교섭은 병행되어야 하고 어느 시점에서는 투쟁의 성과물들을 협약이나 입법의 형태로 마무리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한국노총은 이번 정기국회가 그러한 시점이라고 판단했고, 그동안의 투쟁 성과물들을 온전하게 보전하는 형태로 연내 입법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한국노총이 책임지고 총대를 메는 것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과 함께 하고자 여러 차례 제안했지만 민주노총이 받지 못한 것이 아닌가? 따라서 민주노총이, 한국노총의 선택에 지금은 마무리 시점이 아니라든지 연내 입법을 포기하더라도 노동계 원안을 고수하는 것이 필요했다 등이 비판을 한다면 적절할지 몰라도 “투쟁을 포기하고 야합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비판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것이다.

노동조합 운동에 있어 투쟁을 조직하는 것도 참 어렵지만 대화와 타협을 하는 것도 정말 어렵다. 지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사회적 대화를 둘러싸고 물리적 충돌을 동반할 정도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 것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왜 한국노총이라고 이번 선택을 하는데 있어 고민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이제 한걸음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는 한 중앙 단위의 사회적 대화는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한국노총과 이용득 위원장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데 따른 두려움을 떨쳐버리지 못하면서도 총대를 멘 것이다. 물론 평가야 대중과 역사가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양 노총이 막 가지는 않았으면 한다. 톡 까놓고 말해 양 노총 모두 투쟁과 교섭을 병행하는 문제와 관련해 서로의 방점은 다르지만 고민이 많지 않은가? 아마 길게 보면 이 과정이 이 나라 노동운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겪는 진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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