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하자면 현재 진보정치연구소는 진보적 혹은 진보에 호의적인 연구역량을 조직하는 데 있어 많은 곤란함을 겪고 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하나는 국가와 자본 등이 막대한 재원과 공신력에 바탕 연구 혹은 학술시장을 주도 장악하고 있는 질서 때문이다. 그 질서에 우리가 진보적 혹은 진보에 호의적이라고 알고 있는 연구자나 교수역량들 상당 부분이 포괄되어 있는 게 엄혹한 현실인 것이다. 진보정치연구소는 아직까지 그러한 질서를 흔들어댈 만한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

현재 진보정치연구소는 이 문제 있어 일단 급급하게 개별적인 인연을 동원하는 식으로 ‘땜빵’해나가고 있는 데, 앞으로도 당분간 진보정치연구소는 이 문제 때문에 크게 고통받을 것이다. 물론 이 때문에 연구소는 후속 연구자 발굴과 육성을 위한 프로젝트를 계획, 실행을 위한 초기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기운이 쇠하기 전에 당겼어야 했다”

▲ 김윤철 진보정치연구소 연구기획실장은 한국정치연구회 연구원으로 일하던 중 2002년 지방선거 이후에 민주노동당에서 정책상근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 등 주요 선거에서 당의 공약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아 왔으며, 4·15 총선 이후에는 연구소 추진위원을 맡아 실무총괄 책임자로 활동했다.
다른 하나는 원내진출 이전과 이후를 통틀어 민주노동당 자체가 보유하거나 동원할 수 있는 지적 자원을 충분히 아니 필요한 만큼도 확보하고 있지 못함을 의미한다. 당의 이름으로 호출할 수 있는 자격을 혹은 권위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민주노동당은 신뢰조차 받고 있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진보적 지식-전문역량들에게조차 말이다.

여기에는 원내진출 이전이나 이후 할 것 없이 선거 등 무슨 때나 되어야만 연락하여 아무런 유인의 제공도, 공동의 인식을 위한 지속적인 소통도 진행하지 않은 채, 도와달라고만 하는 ‘염치없음’이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대안적 국가와 사회를 건설하겠다고 하는 진보정당으로 꼭 고쳐야 하는 고질병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바로 원내진출 직후 민주노동당에 대한 기대와 희망, 신뢰가 상승되고 있던 상황이 그것이다. 그러한 상승의 기운은 각계 각층의 릴레이 지지선언 등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 때문에 연구소 추진주체들은 당시 당(대표부)에 그러한 기운이 쇠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신속하게 연구소를 출범시켜 당을 지켜보고 있는 연구역량들을 ‘팍 끌어당겨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기존 시장질서로부터의 ‘엑소더스’를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온 것이었기 때문이었고, 그 통로가 언제 다시금 봉쇄되고 차단될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당 주변에 혹은 당의 정책 개발 혹은 각급 선거 공약단 등으로 조직되어 있던 많은 연구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했던 주장이기도 했다. 그들은 하나 같이 지금이야말로 당 주변으로 혹은 당 중심으로 진보적 정책을 연구할 수 있는 역량들을 조직해내고, 조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연구소 추진주체들은 총선 직후인 2004년 5월 어느날, 연구소 추진 초동모임이 진행되던 시점, 총선 시 당 지지를 선언했던 교수지원단과 당시 당 대표부와 회동을 주선했다. 이 자리에서 연구소 건설의 시급함에 공감대가 형성됐고, 추진활동을 시작할 것을 결의했다. 또한 이에 대한 제반의 지원 조치를 취하겠음을 당 대표부는 약속하였다. 이 자리에서 교수지원단은 당 대표부에게 연구소 건설에 써달라고 소정의 지원금을 기부하기까지 했다. 권영길 당시 대표(현 임시대표), 김혜경 당시 부대표(전 부대표 및 대표), 노회찬 당시 사무총장(현 비례대표 국회의원) 등이 함께 한 자리에서였다.

“전임 지도부는 무책임했다”

그러나 역시 당의 또다른 고질병이 발목을 잡았다. 추진을 결의해놓고 여러 난관을 헤쳐나가는 데는 막상 힘을 싣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이것을 ‘정치학’에서는 물론, 보통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서는 ‘무책임’이라고 부른다. ‘사회학적’ 관련어로는 ‘쌩깐다’, ‘뭉개고 간다’ 등이 제시될 수 있겠다(독자들의 재미를 위한 용어 사용이니 양해를 바란다). 즉 2003년 당대회에서 연구소 건설 결의를 이끌어냈고, 당의 결정을 수용하였으며 4·15 총선을 주도했고, 이제는 국민의 대표로 원내에 진출까지 한 당시 대표부가 책임 있게 행동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이분들은 서구의 진보적 특화 소수정당인 독일의 녹색당에서 실시한 바 있었던 당직과 공직의 분리제가 도입됨으로 인하여 앞으로는 더이상 당 대표부로서 공식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차기 대표부 구성을 위한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던 상황이었다. 따라서 당시 대표부는 일단 연구소 출범은 당 대회 결정사항이기도 한 동시에 현행법상 강제조항인 만큼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그것의 현실화는 선출된 차기 대표부가 맡을 부분이 아니냐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고, 실제로 그러한 입장을 피력한 바 있기도 했다.

이러한 당시 대표부의 고민과 ‘속내 결정’은 충분히 이해된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한 것이 있으니, 그러는 동안 연구소의 출범이 논의되는 것과 함께 연구과제 용역이나 수행마저 미룬 채, 당 연구소의 이름으로 무언가 역할하고 싶어 하면서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연구 및 교수역량들은 점점 열기가 식어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당에 기여할 수 있겠구나 하는 그 설레임이 수그러들고 있었던 것이다.

“열기도 구상도 식어갔다”

이것은 필자 혼자의 이야기가 아닌, 연구소 다른 추진주체들과 연구 및 교수역량들에서 나온 말이다. 특히 오랜 세월 연구자 혹은 교수의 신분으로도 당 정책위 주요 직위를 맡아 활동하면서 귀한 대접 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힘들게 활동하는 상근자들 등 두드리면서 밥 사주고, 술 사주고 했던 한 인사가 토로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 그조차 연구소의 출범이 또다시 지연되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정말 당을 떠나야 할 때가 아닌가라는 심경을 고백하기도 했다.

사실 연구소 추진주체는 이러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연구소의 활동에 있어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그래서 차기 대표부 선출 이전에 연구소 출범에 관련된 모든 사항을 확정해놓고, 차기 대표부가 출범하면 구대표부 모두와 함께, 또 당내외 지지 지원자들과 함께, 그리고 당원들과 함께 멋있고 근사하게 출범을 온 세상에 공표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연구소는 법적으로도 그렇고 상식적으로도 그렇고, 세상 유명 정책연구재단의 선례에서도 그렇고, 당으로부터 독립적 지위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 연구소 추진 및 그 일정의 진행은 누가 차기 지도부가 되느냐와 별로 상관없거나 혹은 없어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연구소 추진은 새로운 지도부가 구성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여러가지 ‘치장 절차’를 거치면서 공식적인 추진단 및 추진위원회의 구성은 이미 열기가 식어버리기 시작한 7월 이후에나 완결됐다. 공식적으로 출범을 선포한 것은 2004년 12월에 들어서였다.

소장 선임 논란이 무슨 도움이 됐나

혹자는 그럼 하나의 기관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그정도 시간은 필요한 것 아니냐라고 말할지 모른다. 물론 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이미 연구 및 교수 역량들의 구상들과 계획이 존재하고 있었고, 추진주체 모임을 통해 그것이 구체적인 방향과 과제 등으로 정리까지 되어 있었다. 몇가지 실무적인 절차와 처리만 해결되면 바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상황에서 추가적인 시간은 별로 필요치 않았다.

게다가 시간을 끌면서 연구소 추진주체들이 겪어야 했던 상황은 독립적인 재단법인으로서의 연구소 지위를 고려할 때도 그렇고, 연구소의 발전을 위해서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새로 출범한 지도부가 이사(장)회의 구성 절차와 그 면면에 대한 흔쾌한 동의에도 불구하고, 당과 연구소의 관계, 연구소 이사(장)회 구성과 소장 결정 절차를 둘러싸고 소모적인 논의로 몇달의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소장을 누구로 할 것이냐의 문제가 대단히 중요한 쟁점으로 떠올랐다. 사실 이 모든 문제는 법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세계 유명 재단의 선례에서나, 이사회에서 결정될 사항이다. 연구소 추진주체들과 이사회가 알아서 소장을 세우고 자기 활동을 개시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의 지도부가 자기 결정 영역이 아닌 것을 억지로 당규 제정 등을 통해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데 주력하는 것이 바른 태도였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명실상부한 진보싱크탱크로 역할을 할 수 있는 특단의 정치적 지원방안에 대해 논의했어야 했다. 소장에 대해서도 일정한 기준의 제시와 함께 이러 이러한 인물을 추천한다는 의사를 연구소 추진주체들과 이사회에 공식적으로 제기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즉 연구소 추진주체들이 연구소 추진 작업에 있어 연구소에 대한 자기 고민 없는 지도부의 불필요한 개입이라는 최대 난관을 만난 것이었다.

사실 소장 인선을 둘러싼 논란은 다시금 재론하고 싶지 않다. 진보정치연구소의 활동을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바쁜 지금, 별로 유쾌하지도 않고, 득도 될 것 없으며 적절하지도 않았던 지난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몇 마디만큼은 하고 가자. 소장 인선을 둘러싼 논란과 그에 따른 연구소 출범의 지연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의 지도부가 진보정당이 발전하기 위한 전략과 기획에 있어 아무런 자기 고민을 갖고 있지 못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진보정치연구소는 진보정당의 싱크탱크이지만, 그전에 당 지도부는 스스로 진보정치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싱크탱크가 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말이다. 생각 없이 세상을 바꿔보겠다며 투쟁하겠다고 떨쳐 일어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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