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30일 한국노총의 이른바 ‘비정규 법안 수정안’이 발표되면서, 적잖은 파문이 일고 있다. 당장 얼굴색이 달라진 것은 정부여당이고, 울화통을 터트리는 것은 1년4개월동안 함께 싸워 온 당사자인 비정규 노동자들과 민주노총 조합원이다. 사회양극화의 주범으로까지 비판받으며 궁지로 몰리던 정부여당에게는 숨통을 틔워주며 ‘부담없이’ 국회 강행 처리를 위한 근거를 마련해 주고 있다.

한국노총의 이른바 ‘수정안’은 11월30일, 12월1일 민중단체, 시민사회단체들의 주장에도 크게 밑도는 내용이어서, 과연 한국노총이 노동조합총연맹 조직이 맞나 싶을 정도라며 혀를 차는 사람들이 나올 지경이다. 비정규 노동자들은 정부 개악안에 이은 제2의 개악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입장에서도 당장 폐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권리보장 입법을 함께 만든 양노총

양노총은 날로 극심해지는 비정규 확산과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작년 7월12일 양노총이 함께 만든 권리보장 입법안을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을 통해 국회에 제출하였다.

정부가 작년 9월 이른바 ‘비정규 개악안’을 국회에 제출한 이후에는 정부 개악법안 저지, 권리보장 입법쟁취를 공동의 목표로 하여 대규모 집회, 농성, 정치권 면담 등 다양한 방식의 투쟁을 전개해 왔다. 특히 정부와 사용자, 수구언론 모두가 안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비정규 권리보장 입법쟁취 총파업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며 정부법안 저지를 이끌어내었다. 민주노총은 작년 11월26일과 올해 4월1일 두 차례에 걸친 이른바 ‘정규직 노동자’의 비정규직 차별해소를 위한 총파업을 성사시켰다.

올해 4월5일부터는 노사정 교섭을 출발로 해서 비정규 법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4월14일에는 대통령 직속 국가인권위원회가 ‘동일노동 동일임금, 비정규 사용사유를 엄격히 제한’ 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려 사회적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사실상 정부 개악법안에 대한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교섭 방향도 바뀌었다. 권리보장, 차별해소에 도움이 되느냐 마느냐가 사회적 기준이 되었다. 국민여론조사에서도 비정규직을 함부로 늘려서는 안 되며, 똑같은 일을 하면 똑같은 임금을 반드시 줘야 한다는 국민 2/3의 여론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11차례의 4월 교섭은 정부 개악법안을 성안했던 노동부와 비정규직을 마음껏 사용하고 싶은 사용자의 불성실 교섭으로 끝내 타결하지 못했다. 그 이후 한국노총 김태환 열사 살인사건, 울산 건설플랜트 노동3권 보장투쟁,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불법파견 노동자 정규직화 투쟁,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3권 요구 농성투쟁 등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10월10일 열릴 예정이던 ILO 아태지역 부산총회를 양노총이 반대하며, 교착국면에 있던 비정규 법안 교섭의 실마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11월10일 다시 마주앉은 노사는 총 7차례의 교섭을 진행하였다. 이번에도 4월 교섭에서 큰 진전은 없었다. 하지만 핵심쟁점 4~5가지로 분명히 압축되었고 정치권이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정치현안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제2의 개악안’ 한국노총의 수정안

도대체 한국노총의 수정안은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 자세히 들여다보자.

첫째, 투쟁을 포기하고 야합의 길로 접어든 점이다. 노사 교섭이 결렬되면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라, 정치권을 상대로 본격적인 ‘노-정 교섭’이 시작되어야 한다. 법안은 결국 국회가 만들게 되기 때문이다. 노사 교섭에서 핵심쟁점이 분명해진 이상, 정부여당의 잘못된 고용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비정규 문제를 해결하도록 사회여론을 불러 일으켜야 할 때이다. 사용자 눈치를 살피는 정부여당을 교섭장 바깥과 교섭테이블(노사교섭, 노정교섭)에서 총체적인 공세를 펼쳐 최대한 권리보장 입법에 가까운 법안을 결단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노총은 투쟁은 포기하고 정부여당이 큰 고민 없이도 손쉽게 생색만 내고 말 수정안을 던져주고 말았다. 법안의 수준을 결정적으로 하락시킬 명분을 주고 말았다. 노동계를 분열시키고, 정부여당에게는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준 야합이며, 노동현안에 대해서 노동조합이 오히려 시민단체보다 못한 입장을 발표한 꼴이 되고 말았다.

둘째, 한국노총 수정안대로 법안이 만들어지면, 차별금지는 물 건너가고, 비정규직 확산을 막을 수 없게 되어 있다. 한국노총 수정안은, 사용자가 반대하는 내용은 ‘포기’하고 비정규직 남용을 ‘합법화’ 해주는 내용이다. 사용사유제한을 스스로 포기하여, 최소 1년11개월짜리 기간제 비정규 노동자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고 있다. 고용의제를 포기했기 때문에, 불법파견 노동자를 정규직화 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다. 허울뿐인 고용의무조항으로 후퇴하였다.

현대하이스코,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에서도 확인되듯이 불법파견의 책임은 원청사용자에게 있는 데도 사용자 책임을 묻지 않아도 되도록 후퇴하였다. 불법파견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사용자들의 주장을 인정한 꼴이다. 파견근로를 26개 업종으로 한다고는 하지만, 업종 선정을 노사합의가 아니라 ‘협의대상’으로 후퇴시켜 버려서 파견근로의 전면 확대가 우려되는 내용이다.

셋째,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을 포기하였다.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정부와 사용자 입장에서 내년 상반기 입법화 약속은, 선언이지 약속이 아니다.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은 당분간 처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어쩌면 공방만 하다가 3년 후가 되는 18대 국회로 넘겨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내용대로 여당이 법안을 만들게 되면 비정규직이 줄어들고 차별이 없어질 것이라는 한국노총의 주장은 기가 막힌 궤변이다.

핵심쟁점
 양노총 기존입장사용자
동일노동 동일임금엄격히 동등한 적용차별없는 적용
사용 사유제한사용 사유제한-
기간제1년 사용후 무기계약 간주3년 사용허용, 해고 제한
불법파견정규직으로 자동 적용(고용의제)과태료 3천만원이하 물고, 고용책임 없어(고용의무)
불법파견 사용자책임원청사용자 책임 명확히-
특수고용 노동3권노동기본권 보장논의 유보

광범위한 민중연대 투쟁으로 법안 쟁취해야

지금의 정세는, 국민적 저항에 직면한 정부여당과 사용자가 궁지에 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진보세력과 국민들의 비판여론 앞에서 결단을 해도 정부여당이 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정부와 사용자의 불성실 교섭, 비정규직 확산정책이 사회여론 앞에 뭇매를 맞게 되는 상황이다.

그동안 양노총의 요구, 민주노총의 현재 요구는 비정규문제 해결의 가이드라인이다. 더이상 훼손되거나 하나라도 포기하면 어정쩡한 법안이 되어 버려서, 비정규직 확산을 제대로 막지도 못하고 차별을 해결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의 수정안은 가이드라인을 스스로 무너트리고, 정부여당의 품에 안겨버리는 야합이며 사용자의 반대에 굴복해 버린 잘못된 선택이다.

민주노총은 정부여당의 잘못된 고용정책, 비정규 확산정책을 국민의 심판대에 올려 세우며 권리보장 입법을 강제해 나갈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적 고립화의 길로 가고 있는 정권을 압박하여, 국회 차원에서 권리보장 입법을 수용하도록 설득하고 압박을 가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총파업에만 의존해서는 쟁취투쟁을 승리할 수 없다. 전국민중연대, 사회양극화 해소 국민연대 등 광범위한 민중단체, 시만사회단체들과 연대하여 국민적인 비정규 차별해소와 권리보장 요구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대규모 집회는 말할 것 없고, 가두 대국민선전전 등을 통해 국민적 요구로 발전시켜야 한다.

또한 전용철 농민 살해규탄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노동자에게는 비정규직을 농민에게는 농업말살과 살인폭력을 휘두르는 노무현 정부를 국민적 심판대에 끌어 올리는 투쟁을 더욱 강화해야 할 때이다.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국회의원들을 설득하고, 민주노동당의 강력한 원내전략전술을 통해서 권리보장과 차별해소를 위한 실질적인 법안을 쟁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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