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와 재계가 비정규직법을 두고 1일 국회 안팎에서 정면으로 충돌했다. 지난 1년 동안 머리 맞대고 교섭하던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대신 각자의 요구안을 들고 하나라도 더 따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힘의 논리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비정규직법의 운명이 기로에 섰다.

다시 ‘원칙’ 강조

법안 내용과 관련해 민주노총과 경총이 1년 전 ‘안’을 다시 내밀며 세 대결에 들어갔다. 이들은 지난 4월과 최근 교섭 과정에서 제시했던 의견들도 사실상 폐기했다. 다만 한국노총만이 ‘최종안’ 형태로 노사 교섭 결과를 반영한 의견을 제시한 채, 이의 관철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날 “정부안을 고수하려는 정부의 경직된 태도와 4~6월 교섭에서 의견 접근된 내용까지 인정치 않는 사용자의 불성실한 태도가 교섭을 결렬시켰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입법에서 고려해야 할 핵심적 기준으로 △비정규직 억제(남용제한) △비정규직 차별 폐지 △비정규직 노동권 보장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이를 위해 △사용 사유제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불파 고용의제와 원청사용자 책임인정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을 4대 입법 원칙으로 꼽았다.

이같은 민주노총의 태도는 지난 4월 교섭과정에서 사용 사유제한을 ‘1+1’ 형태로 양보했으며,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동등처우’로 바꿀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한 데 비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민주노총은 4대 원칙을 수용한다는 전제 속에 사유제한의 폭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도 있다는 태도를 밝혔다.

민주노총과 대척점에 서 있는 재계도 교섭 결과를 무시한 채 ‘원점’으로 돌아갔다. 재계는 이날 보도자료에서 “노동계의 투쟁위협과 비타협적인 대화 자세로 인해 노사대화가 결국 무산됐다”며 결렬에 대한 책임을 노동계에 떠넘겼다. 이어 “정부법안도 기업의 인력운용을 제한하고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심화시키는 등 수용하기 힘든 내용이지만, 노동계의 투쟁으로 산업현장에서 발생할 노사혼란과 경제 사회적 피해를 우려해서 원안 통과하는 전제 하에서 미온적 수용 의사를 밝힌 바 있었다”며 “쟁점으로 부각되지 않아 경제계가 쉽게 양보했던 것으로 인식돼 온 차별구제제도나 근로조건 서면명시 의무 부과 등도 고용관행에 변혁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주장, 교섭과정에서 의견 접근된 내용마저도 뒤집고 ‘원점’으로 돌아갔다.

‘줄 세우기’ 후유증 우려

이같이 노사 입장이 민주노총-한국노총-재계의 3각으로 갈라져 팽팽하게 맞서면서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단체들도 세 방향으로 나뉘었다. 따라서 비정규직법의 처리 여부와 상관없이 이 문제로 인한 상당한 사회적 후유증이 예상된다.

우선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과 한 배를 탔다. 민주노동당은 ‘사용 사유제한’ 등의 입법 원칙을 강조하며 수용되지 않을 경우 법안 처리를 막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2일에는 민변과 민교협, 민중연대, 빈곤사회연대와 사회진보연대, 학단협 등 100여개 시민사회단체들도 ‘민주노총호’에 승선하며 힘싣기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회기 내 법안 처리에 반대하며, “처음부터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최종안’을 제시한 ‘한국노총’에 대해서는 녹색연합, 민언련,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YMCA, 여성단체연합, 함께하는 시민행동 등 7개 시민단체가 사실상 손을 들어줬다. 민주당은 한국노총 안을 수용했고, 열린우리당 역시 한국노총 안의 범위 내에서 법안처리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미흡하지만 회기 내 입법을 위해서는 이 정도 수준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총 등 재계 편에는 ‘고용유연성’을 강조하는 한나라당이 자리잡았다. 한나라당은 ‘노사 미합의’를 이유로 들며 법안 처리에 반대하고 있다. 재계로서는 정부안이든 ‘최종안’이든 기간제와 차별을 규제하는 법이 존재하는 것보다, 아예 법과 기준이 없어 비정규직을 마음껏 고용하다 해고할 수 있는 현재 상태가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정규직법 운명 역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불투명해졌다. 당초 열린우리당은 1일 법안심사를 거쳐 2일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의결할 방침이었으나, 각종 회의와 겹치는 등 법안심사가 지연되면서 법안처리까지 시간도 순연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사와 정치권 등 각 관계자들에게는 이 기간이 길어질수록 '피 말리는' 긴장과 투쟁이 계속된다는 뜻이다. 또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각 관련단체들의 선명성 '전쟁'도 격화될 것으로 보여, 후유증도 심각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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