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영원한 소망, 그것은 바로 불로장생의 꿈이다. 죽고 싶지 않아서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기 싫다는 일념으로 진시황제는 불로초를 먹었고, 오늘도 우리는 ‘생명연장’의 꿈을 꾸고 있다. 그러나 생명연장은 누군가에게는 축복으로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굴레가 된다. 아마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인 사람들은 당연히 노후생활을 철저하게 준비했던 그리고 준비할 수 있었던 사람들일 것이다. 여기다 나이가 들어도 건강하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조건을 이루지 못한다. 노후를 준비하지 못했거나 혹은 나이 들어 몸이 아프다. 때문에 인간의 생명연장을 과감하게 축복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여성노인, 축복받지 못하는 생명연장?

특히, 축복받지 못한 생명연장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남성보다 여성의 수명이 길기 때문에 사별한 여성노인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남성보다 열악한 노동시장상황과 남성중심적인 국민연금제도 때문에 여성노인들은 경제적으로 독립되기 어렵다. 그래서 몸을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동안에서는 자식들의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한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몸이 건강했을 때 이야기이다.

일단, 나이가 들어 이곳저곳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문제는 심각해진다. 키워주신 부모가 아플 때, 부모를 보살피는 게 당연한 자식의 도리겠지만 치매노인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 부담이 얼마나 큰 것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노인들을 실질적으로 보살피는 사람이 대부분 노인 당신의 자식이 아니라 며느리이다. 이제 생명연장의 꿈은 여성노인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이들을 보살필 의무(?)가 있는 며느리에게도 굴레가 된다.

사실 이런 의미에서 노인문제는 여성 문제이고 여성빈곤의 문제이기도 하다. 즉 혼자 사는 여성 노인의 빈곤, 치매 등 노인성 질환에 걸린 여성 노인, 여성노인을 수발해야 하는 또 다른 여성의 문제가 서로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때문에 노인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때, 여성노인과 여성노인을 보살피는 며느리란 이름의 여성들을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정부가 2007년 도입하겠다는 노인장기요양보장제도에서는 여성노인도 여성노인을 수발하는 여성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여성노인의 특성에 적합한 프로그램 배치도 없고, 여성을 수발하는 며느리와 딸에 대한 고민도 찾아보기 힘들다. 

노인장기요양보장제도 여성 고려 없어

가장 중요한 것은 노인장기요양보장제도가 실시된 이후 과연 여성 노인은 행복하고, 노인을 보살펴왔던 여성의 부담은 감소되는가 하는 것이다. 노인을 수발하던 여성들의 부담이 감소하려면 노인장기요양보장제도에서 이뤄지는 서비스가 실질적이어야만 한다. 집안에 사람이 없을 경우에도 여성노인 혼자 집에서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장기간의 요양이 필요한 경우 요양시설에서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여성노인도 그리고 여성을 수발하는 여성의 부담도 감소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는 노인에게 일상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인프라도 부족하고 노인을 요양할 수 있는 시설이 극히 드물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현재 상황에서 노인장기요양보장제도가 도입되면 보육문제와 같이 민간중심의 서비스제공자가 판을 칠 것이고 이에 따른 비용유발과 형평성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대부분 노인장기요양보장제도의 서비스 제공자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노동조건 역시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모든 것을 ‘빨리, 빨리’ 근성으로 해치워버리는 한국에서 2007년 노인장기요양보장제도 도입은 지나치게 서두르는 감이 없지 않다. 물론, 노인문제는 날로 심각해져 가는데, 느긋하게 대책을 만들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처음부터 완벽한 노인장기요양보장제도를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처음 도입을 위해 필요한 합의와 면밀한 검토를 무시하고 밀어붙이기 식으로 제도를 도입할 순 없다. 때문에 이제 필요한 것은 여성노인과 수발의 담당자인 여성들의 목소리와 입장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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