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분류기준으로 보면, 결혼한 여자 친구들은 딱 세 분류로 나뉜다. ‘독립군의 아내’로 사는 친구, 전투중인 친구, 아이를 포기한 친구. 나의 분류기준은 ‘남편, 아이와의 관계’이다. ‘독립군의 아내’로 살아가는 친구들은 남편과의 육아 및 가사노동 분담을 아예 체념한 친구들이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직장생활에 매달리는 남편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도 없으며 남편을 바꾸려는 노력도 이제는 지쳤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독립군의 아내’라고 스스로 세뇌하며 사는 것이 오히려 속 편하다는 것이다. ‘전투중인 친구’들은 육아와 직장생활도, 남편을 바꾸는 것도 포기하지 않고 남편과의 격렬한 전투를 하루하루 이어가고 있는 친구들이다. 학생 때부터 권리의식이 높았던 이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옳은 모습이긴 하지만 과연 행복할까라는 의문이 들곤 한다. 마지막으로 ‘전투중인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두려움 속에 차라리 ‘아이 없이 사는 삶’을 선택한 친구들이 있다. 이들 친구들은 상대적으로 편한 삶을 살지만 그러나 내 눈엔 이들도 결코 행복해보이지는 않는다. 

결혼한 여성, 남편 그리고 아이

이와 관련해 토론회가 며칠 전에 개최되었다. 토론회의 제목은 ‘남성의 돌봄노동 권리,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이다. 이 토론회에서 윤홍식 교수는 재미있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OECD 국가에 대한 연구를 통해 볼 때, 남성의 돌봄 노동 참여 지원 수준이 높고, 전통적 주 생계부양자가구의 비율이 낮은 국가군일수록 빈곤율이 낮고, 합계출산율,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국가경쟁력이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들은 남녀가 부양과 돌봄을 함께 공유하는 모형을 지향하는 것이 단순히 성간 불평등을 완화하는 차원을 넘어 해당국가의 지속적 발전 가능성을 진단해보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노동의 유연화가 대세인 상황에서 1인의 생계부양자 모델로는 한 가정의 경제를 유지시켜 나가기 힘들다. 이미 1인의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 해체되기 시작한지 오래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이제 거의 50%에 육박하며 향후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따라 전통적으로 여성이 담당해오던 돌봄영역의 위기가 대두되기 시작했고, 가족 내에서 돌봄을 둘러싼 갈등이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최근의 이혼률의 증가는 육아 및 가사노동 등의 돌봄 노동을 둘러싼 가족내 갈등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젠 남녀가 함께 벌고 함께 돌봄노동에 참여하는 구조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이러한 갈등은 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남성의 돌봄노동에의 참여가 관건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첫 번째의 해결책은 남성의 돌봄 노동 참여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유급 육아휴직제가 이루어져도 남녀의 임금차가 큰 이상 남성의 휴가사용은 부진할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는 남녀의 임금격차를 줄여나가야 하지만, 우선적으로 아버지 육아휴직 의무 기간을 설정하고, 육아휴직 급여의 임금대체율을 높이는 방식이 필용하다.

비정규 노동자들이 포함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이 여기서의 또 하나의 관건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운동도 남성의 돌봄노동 참여라는 맥락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과거 70년대 출산율 급감을 경험했던 스웨덴이나 핀란드, 덴마크가 이러한 정책들을 통해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 확대를 통해 가구 소득을 높였고, 이를 통해 빈곤문제를 상당부분 해소하여 경제성장률을 높여왔다는 점을 깊게 숙고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주제가 바로 노동조합의 주요 이슈가 되어야 한다. 남성의 돌봄 노동 참여를 위한 제도적 요구는 노동자 개인의 생활적 요구를 노동조합 운동에 결합시키는 모델이자, 재생산(돌봄의 영역)이 생산에 우선하는 사회로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하는 운동이 될 수 있다. 더 이상 ‘돌봄’ ‘직장과 가정 양립’은 여성만의 이슈가 아니다. 남성 스스로 돌봄노동의 권리, 직장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권리를 외치는 것이 남성들이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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