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노동운동의 현실을 바라보자면 과거 어느 때보다도 비참하고 더불어 그 미래 또한 너무도 암울하게만 느껴진다.

항운노조, 기아자동차노조, 현대자동차노조 간부들의 채용비리, 한국노총, 민주노총 임원들의 비리사건과 구속 등으로 노동조합 간부들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졌고, “경기침체의 주원인이 대기업노동조합의 지나친 조합이기주의와 잦은 파업 때문이다”는 자본과 언론의 공세 속에서 어느 사이엔가 노동조합과 활동가들은 국민들에게 지극히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지고 있는 것 같다.

내부적 자정노력과 철저한 자기반성으로 국민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내부적 단결을 도모해야 할 노동계는 오히려 내부적 분열과 혼란 속에서 얼마 전에는 한국노총 산하 연맹에 몸담고 있는 젊은 활동가가 자살을 하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왜 오늘날 노동운동이 이렇게 어려운 현실을 맞게 되었을까?

노동자의 영원한 적인 자본의 힘이 과거보다 더 강해져서인가? 아니면 OECD선진국으로 진입되는 단계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노동운동 과정의 일환인 것인가?

그 답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여러 가지 분석이 있을 수 있겠으나 나는 노동운동의 참담한 현실을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은 이 땅의 노동자로 존재하는 우리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노동운동의 선두에 서 있는 단위노조와 상급단체 간부들에게 원인이 있으며, 이러한 문제점들이 고쳐지지 않는 한 노동운동은 후퇴를 거듭할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단위노조활동과 더불어 한때 한국노총 내에 ‘개혁연대(직선제 관철 및 한국노총 개혁을 위한 단위노조 대표자 연대)’를 구성하여 활동했었던 이유도 사실 이러한 문제들을 상급단체의 구조적 시스템 개선을 통해서 해결해 보고자 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노동운동의 위기와 그 해법도 노조간부들, 자신에게 모든 열쇠가 주어져 있다고 확신한다.

노동조합 간부직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입장에서 노조간부들의 잘못된 부분들을 비판하는 것 자체가 오해를 불러 올 수도 있겠으나, 노동운동이 좀 더 발전적 방향으로 나갔으면 하는 취지의 비판적 발언으로서 널리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

노조 간부들의 자기개발이 필요하다

이전 근로복지공단 노조 위원장이 된 이후 내가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나를 포함한 우리노조 집행간부들과 함께 ‘노동조합, 노동운동을 배우는 것’이었다. 피상적으로 어렴풋이 알고 있는 노동조합활동 및 노동운동에 대한 개념을 보다 구체화시키고 민주적 노동조합운영에 대한 학습을 받음으로써 “노조간부들 스스로가 조합원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활동가 수준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민주적 노동조합 운영, 조합원들의 노동자의식 고취, 사용자 쪽에 대한 전략적 싸움 등은 어렵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한국노총, 민주노총, 노조간부, 정치인 등을 가리지 않고 평이 좋은 분들은 어떻게든 모셔와 교육을 받았으며, 덕분에 대다수 집행간부들이 활동가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의식을 갖춘 집행간부들로 거듭나는 좋은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우리 노조가 그런 과정을 겪어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단위노조나 상급단체 간부들 중에 노동운동에 대한 개념이나 민주적 노동조합 운영에 대한 몰이해 심지어 노동가요조차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접할 때마다 “바로 이런 사람들 때문에 노동운동이 당연히 쇠퇴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하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다.

최소한 노동조합 집행간부로 있는 동안은 그에 걸 맞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각종 학습 등을 통한 자기개발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집행간부로서의 도리이자 의무가 아닌가?

그러한 노력은 전혀 없이 어느 사이엔가 노조간부가 직업화되어 버린 노동조합 간부들이 단위노조와 상급단체에 존재하는 이상 이 땅의 노동운동은 당연히 후퇴될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나만이 옳다’는 독선적 사고, 사리사욕부터 버려라

노동자 의식을 갖춘 간부라 하더라도 ‘혼자만의 고집과 자기우월성’은 반드시 버려야 한다. “내가 가장 많이 알고 내가 가는 길이 항상 옳다”는 그릇된 자만에 빠지게 되면 ‘조직의 민주적 운영이나 대화와 타협’은 없어지고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은 모두가 적’이라는 위험한 발상에 빠지게 된다. 바로 그 순간 그 사람은 대중을 이끌어 가는 리더가 아니라 독선적 사고를 가진 외톨이가 되는 것이다.

이해관계를 둘러싼 대립이 아니라면 계파간의 갈등, 개인간의 반목, 조직 내 분열을 초래하는 일차적 원인은 각자의 이런 폐쇄적, 독선적 사고에 일차적 원인이 있지 않은가 싶다.

정작 자기가 옳다는 확신이 있다면 타인을 설득시켜야 하고 설득하지 못한다면 그 판단은 다수의 조합원들이 하는 것이다. 단위노조내의 문제라면 조합원들이 할 것이고, 연맹이나 노총의 문제라면 그 운영에 실제 참여하고 있는 단위노조 간부와 대의원들(더 나아가 소속 조합원들)이 판단할 문제이며, 이것이 민주노조의 첫 번째 원칙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단위노조 내에서도 선거를 제외하면 임·단협 등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 조합원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된 민주적 의사결정을 하는 조직이 그리 많지 않고, 연맹이나 노총에서도 대의적 차원에서의 결정보다는 이해관계와 욕심에 따른 타협적 결정으로 노조와 상급단체에 대한 반발과 무관심을 간부들 스스로가 야기하고 있다.

한국노총에 뜻을 같이 하는 단위노조위원장들과 ‘개혁연대’를 구성하게 된 직접적 원인도 이러한 상급단체 임원들의 독선과 이해관계에서 비롯되었다.

700여명의 노총대의원 간선제로 100만 조합원의 대표를 뽑는 것보다는 전체 조합원의 직접선거나 직접선거가 불가능한 경우 대규모 선거인단을 구성해서 선거를 치루자는 단위노조 위원장들의 주장은 한국노총 조합원이라면 누구나 수긍하는 내용이었다.

이 당연한 주장이 각 연맹위원장들의 반대로 실현가망성이 없게 되면서 그 반발로 ‘개혁연대’가 발족되었고, 결국은 극심한 내홍 끝에 노총 대의원대회에 상정되어 부결되는 사태까지 가고야 말았다.

이용득 위원장이 선거인단 구성방향으로 규약을 개정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지만, 대의보다는 조직 내 이해관계가 우선하고 있는 한국노총의 현실 속에서 진정으로 민주적이고 공명정대한 선거제도가 확립될 수 있을지는 지금도 의문이 간다.

결국 이러한 노조간부들의 독선과 욕심, 비민주적 운영이 개선되지 않는 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처럼 의식 있는 활동가들조차도 노동계를 떠나고, 결국 조합원들조차 노동조합을 믿지 못하거나 무관심으로 돌아서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는 영원히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동운동의 희망은 노조의 체질개선부터 찾아야

결론적으로 노동운동의 위기는 노동계에 몸담고 있는 노조간부들의 자질부족과 독선적 사고, 비민주적 운영방식에 가장 큰 원인이 있고, 이를 개선하지 못하는 한 위기는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단위노조, 연맹, 노총 모두가 선거제도, 의사결정 방식 등 지금보다 더욱 민주적인 운영방식을 도입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가 정답은 아니다. 민주적 운영은 대단한 인내와 조합원들에 대한 설득 등 운영에 어려움이 많고, 민주적 결정이 반드시 옳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러나 민주는 조합원이 주인이라는 의식을 조합원들에게 심어줌으로써 노동조합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끌어올릴 수 있고, 노조대표자의 독단적 결정을 견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많다고 볼 수 있다.

공정한 선거제도가 확립되면 조직간 이해관계 속에서 임명된 자질 없는 간부들을 교체시킬 수 있고, 의사결정방식의 민주성은 조합원들의 노동조합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촉매가 된다.

자질 있는 집행간부들의 확보를 통해 노조간부와 조합원들에 대한 의식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조합원들의 노동자의식이 고취되면 “언젠가는 프랑스처럼 노동자정당이 이 나라를 집권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면 나만의 환상일까?

90년대 초반에 붐을 일으켰던 “내 탓이오”가 이제는 노동계에 다시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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