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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의 실험, 그리고 제2창간제2창간, 짙어가는 ‘우향우’ 흐름…“진보냐 자유주의냐”
노무현 대통령이 몇달 전 제2창간운동에 나선 한겨레에 자신의 월급에서 1천만원을 떼 발전기금을 내겠다고 밝혔다. 창간기금과 증자 때도 돈을 낸 바 있는 노 대통령이 보유하고 있는 한겨레 주식은 총 360주. 김대중, 김영삼 전임 대통령들이 각각 6천주, 2천주의 주식을 갖고 있는 것에 견주면 낮은 액수이다.

이같은 사실이 보도되자, 한겨레는 ‘개인자격’임을 강조하며 ‘대통령도 국민의 한명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과연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특정 언론사를 후원하는 것을 ‘개인’ 문제로 돌릴 수 있을까. “대통령과 정치적 뜻을 같이 하는 당과 지지자들의 기부금이 뒤를 잇고, 권력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기업들은 광고와 구독신청으로 성의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을 것….” 조선일보가 ‘한국의 대표적인 좌파신문(?)’이라며 한겨레에 쌍심지를 켜고 ‘숨은 의도’를 드러낸 것과는 달리 이 ‘문제제기’ 자체는 부적절한 것은 아니었다.

ⓒ 매일노동뉴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을 꿈꾸었으나


한겨레는 역사적인 소임을 다했나. 아니면 이제부터가 정말 시작일까. 한겨레는 지난 6월7일 각계 인사 1,307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제2창간운동본부’를 꾸려 범국민운동을 시작했다. 제2창간운동본부는 자본금 확충을 위해 발전기금 200억원 모금과 한겨레신문 보기운동 등을 펼칠 예정이다.

‘한겨레의 역사적 소임은 이제부터다’는 창간선언문은 “한겨레는 시장을 과점해 온 족벌신문의 보수아성에 도전하여 진보언론의 기틀을 확보하였다”며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선진화 되기 위해서는 진보와 보수가 견제와 균형을 이루며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어야 하고, 더욱 튼튼한 진보언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보다 앞선 5월16일. ‘제2창간’을 선언한 한겨레는 17주년 창간기념호를 내면서 지면 혁신도 단행했다. 심층기획기사, 재미와 감동, 독자와 주주에게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결의를 높였다. 신문시장의 위기와 함께 해마다 계속되는 적자에 시달리던 한겨레는 지난해 ‘비상경영위’를 꾸려 80여명에 대한 구조조정을 시행한 바 있다.

“한겨레답지 않은 구조조정이었다”며 반발도 있었지만 소수의 목소리에 불과했다. 바꾸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뼈저린(?) 각성이 한겨레 구성원들을 감싸고 돌았다. 한겨레를 살리기 위해 ‘한번 해보자’는 내부 구성원들의 결의가 이어졌다. 한겨레 'OB'이자, 대기업 CEO를 역임한 바 있는 전문경영인 출신의 정태기 사장의 영입에 이어, 노조는 편집국장 직선제를 ‘임명동의제’로 바꾸는 데에도 합의했다.

58세 정년을 53세로 낮추면서 53세 이후에는 촉탁으로, 즉 비정규직의 길도 열어 놓았다. ‘당장 배고프니까 살고보자’는 구성원들의 구조조정 합의의 그 다음 길은 무엇일까.

한겨레는 올해 들어 ‘희망캠페인’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삼성그룹 전면광고로 시작된 이 캠페인을 통해 한겨레는 대기업, 정부기관, 대학 등의 광고를 유치하고 있다. 자본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국민주신문’ 한겨레가 다른 신문에 견줘 상대적으로 삼성그룹의 지원을 많이 받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물론 광고수주총액 자체가 작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정태기 한겨레 사장은 최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영향이 전혀 없다면 빈말이겠지만 삼성그룹이 이해관계에 있어 직접적으로 처신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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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언론’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한겨레는 독자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창간호를 기념하는 광고는 ‘기업’들의 몫이었다. 1988년 창간 이후 ‘의견광고’ 형식을 통해 선보였던 다양한 국민들의 목소리는 서서히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국민주신문’임을 자랑하던 한겨레는 ‘주주찾기 캠페인’을 통해 6만여 주주 찾기에 나섰다. 하지만 절반에 가까운 3만여 주주들을 찾는데 실패하고 있다. 한겨레는 애타게 주인을 찾지만 정작 주인들은 나타나질 않는다. 독자와 주주들에게 다시 다가가고자 하는 한겨레로서는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겨레의 대주주는 이미 국민이 아닌 우리사주조합으로, 주식 30.26%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2002년말 580여명의 임직원들 퇴직금 140여억원을 출자전환한 것이다.

한겨레 편집국 기자들은 지난 3월초 ‘한겨레 제2창간을 위한 토론회’에서 “진보의 강박관념과 이념의 과잉이 우리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고, 신문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며 “화석화 되고, 경직화 된 부분을 살아 있는 진보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제2창간운동본부’를 꾸리고, ‘상대를 배려하는 진보’를 강조하며 ‘진보’라는 단어에 ‘재미있고, 유익한, 감동이 있는’ 등의 수식어를 붙였다. 한겨레의 제2창간은 99년 공덕동 사옥으로 이사하면서도 있었다. 조중동의 위세에 눌려 한겨레는 늘상 고전해왔던 터였다. 그런데 또다시 ‘제2창간’에 ‘진보’를 새롭게 구성하겠다는 포부를 다진다. 이러한 한겨레 구성원들의 인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높다.

한 중견언론인은 “사실 이번은 제3의 창간이다. 몇년 뒤 경영이 어려워지면 또 재창간하며, 무엇을 털어 넣을 것인가. 컨텐츠의 강화니 하면서 말랑말랑한 기사를 말하지만 더 딱딱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자 등 전통적인 진보 성향의 구독자는 외면하면서 성적소수자나 양심적 병역거부자 등 점점 새로운 진보로 나가고자 하는 한겨레 구성원들의 문제의식에 대한 비판이었다.

“진보를 독점하고 있다는 자만심을 버려야 한다”고 한 언론학자는 충고했다. 어설픈 분석을 하려 하지 말고, 노동자에게 줄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노동운동이 무너진다’거나 ‘노동귀족’이라고 비난할 때 “과연 그런가”라고 분석하지 않고 포기하는 언론을 진보언론이라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무현 정부와 친밀도를 유지했던 ‘개혁언론’ 한겨레. 그런데 구성원들은 왜 스스로를 ‘진보’로 자처하고 있을까. 진보의 스펙트럼이란 애당초 워낙 넓은 것일까.

한겨레의 이념적 진보성은 고정되고 일관된 것이라기보다는 시대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해 왔다. 같은 시기의 지면 내에서도 상반된 입장들이 동시에 혼재되어 나타나기도 했다. 이러한 이념적 모호성은 역시 시대적 산물이라 볼 수 있다. 한겨레가 태동한 시절은 민주 대 반민주 세력 간의 대립이라는 구도가 지배적이었고, 한겨레의 구성원들을 묶어준 것은 통일된 이념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수구세력들과 차별화 된 ‘독립성, 도덕성’이라고 보는 게 올바를 것이다.

한겨레는 자신들을 같은 업계의 다른 동료들과 차별화 하려 하고 도덕적 우월감을 유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자 사회의 문화와 관행들을 본능적으로 따르는 경향이 있다. 기존 언론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면서도, 이들의 취재 관행을 대부분 따르고 있는 게 그 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겨레가 취할 수 있는 개혁의 한계는, 한겨레의 이상적인 방안들이 한국 사회의 현실적인 여건에 의해 벽에 부딪히게 된 데에도 있다. 가령 한겨레 창간 주축 인사들은 출입처 중심으로 구성된 기존 방식에서 탈피해 취재 관심사별로 짜여진 새로운 취재 편제를 시도했다. ‘정치경제부’, ‘민족국제부’, ‘민생인권부’ 등 생소한 명칭의 부서들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도 잠깐이었다. 이러한 부 편성은 출입처 중심의 기존 취재 관행의 현실적 장벽 때문에 그대로 관철되지 못하고 재조정 과정을 겪기도 했다.

기자구성·채용방법·컬럼진, '조중동'과 별 차이 없어

“한겨레가 맛이 같다.” “이제 한겨레 보지도 않는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부터 이른바 진보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많은 한겨레 출신 기자들이 정계와 방송사 요직에 등용됐다. 급기야 최근에는 한겨레 출신기자가 한나라당 공천까지 받기에 이르렀다.

한겨레는 과연 보수언론에 견줘 과연 진보적일까. 질적 차이는 있는가. 확실히 차이는 있다. 송두율 교수나 강정구 교수의 경우를 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그러나 이 차이는 더 확장되지 않는다.

한겨레는 채용방법과 취재시스템, 외부기고가 비율 등에서 그들이 싫어하는 '조중동'과 너무나 닮아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학생운동의 내부학습구조가 깨지면서 언론고시를 보는 지망생들은 이제 조중동, 한겨레, 방송사 등 닥치는 대로 시험을 보는 상황. 어차피 국어, 영어, 상식 등 시험과목은 똑같기 때문이다.

언론노조의 한 관계자는 이를 ‘먹물들의 고정관념’이라고 설명했다. 이 중견언론인은 “똑같은 친구가 조선(일보)에 들어가면 점차 보수화 되고, 한겨레에 들어가면 진보 비스무레하게 된다”며 “먹물들이 빨리 적응하고, 알아서 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어, 영어, 상식이라는 언론고시를 보기 위해 앵무새처럼 외우기를 반복한 기자들의 질적 차이는 없다는 이야기다. 기껏 차이라면 회사분위기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점차 한겨레의 기자구성은 많이 바뀌고 있다.

“지방에서 올라온 유능한 기자 지망생에게 서울시내 한 경찰서 위치를 물어보는 기자시험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또다른 중견언론인은 “한겨레가 다른 언론사와 똑같은 ‘채용방법’을 유지하다가는 난관에 봉착할 것”이라며 경고했다. 몸에 맡지 않는 옷을 억지로 끼워 입는 꼴은 볼썽사납고 어울리지도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한겨레의 컬럼진 구성을 보면 조중동보다 심한 ‘엘리트’ 의식이 한겨레를 감싸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1월1일부터 한겨레는 ‘한국의 미래 열어갈 100인’을 선정해 발표했다. 사전조사위, 추천위, 선정위원회 등 3차에 걸쳐 100인을 엄선했다는 것. 그러나 선정 작업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득권 인사들이었다. 노동자, 농민, 도시서민 가운데 누구도 선정 작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위원들은 검사, 변호사, 국회의원, 병원장, 시인, 기업체 사장, 대학교수, 정부관료, 시민 없는 시민단체의 대표 등 한결같이 주류거나 이제 막 주류에 진입해가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마지막 3차 관문인 선정위원 14명 중 6명은 교수였다. 그렇다면 ‘교수가 생각하는’이란 수식어가 붙어야 하지 않을까.

언론에 등장하는 외부전문가의 대다수가 ‘교수’이며 서울대, 미국유학, 영남출신들이 여론을 선도하고 있는 상황. 진보언론을 자처하는 <한겨레>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더 문제가 심각했다.

김만흠 가톨릭대 교수는 ‘한국의 언론정치와 지식인’이라는 글에서 2001년 7개 중앙일간지의 기고활동을 조사했다. 여기에서 김 교수는 “기고자의 60% 이상이 교수이며, 전체 필진의 53.7%가 서울대 출신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한겨레는 다른 언론사 보다 많은 59.6%가 서울대 출신이었다. 한겨레 노조 지면감시기구인 진보언론실천위원회도 최근 한겨레 칼럼에 대해 “무색무취하다”며 “외부 필진 30명 가운데 17명이 대학교수(강사)”라며 필진 선정 과정의 ‘안이함’을 비판했다.

양문석 EBS 전문위원은 이에 대해 “다른 신문이 중·고등학생들의 눈높이라면 한겨레는 대학 3~4학년 수준”이라며 “소외받는 민중과 사회적 약자의 얘기가 별로 없는 한겨레가 다른 신문보다 더 엘리트주의”라고 비판했다.

노동문제 보도, ‘자유주의’ 시각 확연히 드러나

한겨레의 노동관련 보도를 통해 한겨레가 어떻게 노조와 파업을 인식하고 있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실제 한겨레 지면에는 노동자와 노동운동의 정당한 투쟁을 옹호하는 기사들이 예나 지금이나 많이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워낙 수구보수 언론들이 상식 밖의 보도를 하는 터라 한겨레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이고, 노동친화적인 면이 부각된다.

하지만 한겨레의 노동관련 보도 논조는 사회가 본질적으로 합의에 기초한다는 ‘자유주의적’ 시각 틀을 유지하고 있다. 사례를 살펴보자.

1999년 봄 서울지하철노조 파업과 관련 한겨레는 “지하철 파업 협상으로 풀라(4.20)” “노동정국 바른 해법을(4.27)” “지하철 파업 이후의 정국(4.30)”이란 사설을 내보냈다. 기사를 보자. “적지 않은 시민들이 이번 파업에 대해 다소 냉소적인 반응을…(4.20)” “서울시와 지하철공사쪽이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무리한 운행을 감행할 경우 대형사고가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도…(4.24)” 등.

한겨레는 파업이 야기하는 결과만을 가지고, 파업행위만을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역시 파업결과 나타난 지하철 혼잡과 안전문제를 거론한다. 또 노동자와 경찰의 충돌하는 관련 사진을 상당수 게재하고 있다. 한겨레도 파업이 일단은 불편하고 좋지 않은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셈일까.

“낡은 틀에 바탕을 둔 단기적인 정책발생과 구도로는 노동현안을 해결하기 어려울 것으로…(4.5, 사설)” “정부가 일방적으로 내세우는 파업의 불법성은 좀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4.28, 칼럼)” “정치인과 기업인들에게는 그렇게도 ‘유연한’ 법이 노동자에게는 유별나게 혹독하다.…(4.30, 칼럼)” 등. 한겨레는 국가권력이 국민의 대다수인 노동자계급을 위한 정책을 추진할 수도 있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고 보도한다. 국가권력이 자본의 이해만을 옹호해서는 곤란하다는 시각이다.

2001년 5월. 주요 신문들은 당시 민주당 노무현 고문이 매각을 앞 둔 대우차 부평공장을 방문했다가 노동자들에게 달걀세례를 받은 것을 대서특필했다. 노 고문은 “딱한 사정은 이해하지만 구조조정의 큰 흐름을 되돌릴 수 없다”며 줄곧 해외매각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한겨레는 5월23일 ‘노동자의 벗 노무현 고문 계란 맞아’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2000년 봄 부산의 운송하역노조 조합원들이 파업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노무현 의원 사무실에서 농성을 벌였지만 외면당했다. ‘노동자의 벗’이란 호칭을 한겨레가 어떤 근거로 펼쳤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2003년 현대차노조와 관련, 보수언론이 ‘1년 절반 놀며 연봉 6천’ 등의 기사로 대기업노조 때리기에 열중했다. 이에 맞서 한겨레는 ‘연봉 4천2백 받더라’ 등의 기사를 내보냈다. 엄호를 해준 것이다. 그러나 이정호 전 언론노조 정책국장의 지적은 다르다. "일본의 NHK 14년차와 도요타 생산직 16년차의 월급이 거의 같다. 그렇다면 6천만원 연봉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한겨레는 오히려 모자란다고 논증해야 하는 것 아니냐." 다시 말해, '6천이 아니라 4천2백이더라'는 엄호에는 '노동자들의 월급이 많아서는 곤란하다'는 보수언론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공격은 없다는 것이다.

'동업자 의식'도 지적된다. 2001년 11월 스키장 개장 사진이 전 일간지의 1면을 장식했다. 전날 서울 여의도에서는 ‘주5일제’ 투쟁을 하던 노동운동가들이 전경의 방패에 찍혀 이마가 깨지거나 귀가 반이 잘리는 등의 큰 상처를 입었지만 외면했다. 한겨레도 스키장개장 사진을 사회 1면에 배치했고, 2면 하단에 이 처절한 투쟁을 실을 뿐이었다.

조선일보는 2003년 11월10일 사설에서 “민노총은 나라를 거덜 낼 셈인가”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2004년 1월1일 신년사에서 “노사분규와 집단투쟁 때문에 우리 경제가 회생 기미조차 없었다”고 분석했다. 동아일보 역시 신년사설에서 “노조는 내 몫만을 위한 투쟁과 노동운동의 정치화를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한겨레도 마찬가지였다. 한겨레는 신년사에서 “노사대립의 격화와 8%에 이르는 청년실업률( 때문에) 한국사회의 기반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자의 파업과 청년실업의 원인이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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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비판 ‘당연하지 vs 흐름타기’


한겨레의 '우향우' 경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최근 들어 더욱 커져만 간다. ‘거듭나야 하는 노조’. <한겨레>의 최근 기획기사 제목이다. 3회에 걸쳐 연재된 이 기획기사의 마지막 회는 ‘버려야 산다’였다. 이 기사에 따르면 민주노총이 버려야 할 것은 단위노조의 권한이고 그 대안은 산별로 권한 이전이다. 현재 노동운동 위기의 대안을 노조의 권한 배분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는 또 김원배 노사정위원회 상임위원의 “상급단체의 감사권을 확립해 단위 노조의 비리를 감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한겨레가 오히려 더 강도 높게 노동계 내부비판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은 상당히 많다. 이것은 진보언론 한겨레의 역할이기도 하다. 양문석 EBS 전문위원은 “대중추수적으로 우리도 한번 (노동계를) 때려보자는 흐름타기가 아닌 한 노동운동의 유지 발전을 위해 훨씬 더 강하게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귀족노조’에 대한 비판이 있었는데 어떻게든 털고 가지 않으면 결정적 순간에 비수로 되돌아온다는 이유였다. 노동운동과 노동계에 대한 온정주의가 결국은 상처가 더 곪는데 일조할 수 있다는 지적은 한겨레 구성원들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는 사항이다.

조준상 한겨레 기자는 “노동계 비리를 정권의 공격이라고 보는 시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면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폭력도 민주주의 원리에 위배된다”고 지적한 뒤, “노동계에 대한 제대로 된 비판이 없었는데 한겨레는 경보음 기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겨레가 제시하고 있는 대안이 노동계의 고민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흐름타기’라는 지적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해관 대안연대회의 정책위원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지금 노동운동의 위기는 노조의 권한이 어떻게 배분되어야 하느냐의 문제가 전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노조들이 기업의 힘에 굴복해 기업의 성역화는 방치한 채 사회적 합의라는 탈출구를 쫓아가거나 혹은 기업 내에서 방어적 실리추구에 머무는 게 위기의 핵심이라는 지적이었다. 그는 또 “위기 극복의 핵심은 사회운동성 회복”이라며 “사회운동성이 거세된 관료적 산별노조와 그에 기초한 사회적 합의주의를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이려는 의도의 산물은 아닐까”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울산건설플랜트노조 파업타결과 관련 한겨레 6월3일자 칼럼에는 ‘건설플랜트노조 사태의 교훈’이란 글이 실렸다. 조형제 울산대 교수는 이 글에서 “노사 갈등이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까지 참여한 다자간 협상을 통해 해결됐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라며 “‘사회적 협약’의 체결은 참여와 협력의 노사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적 진보성’ 지키기 위한 몸부림

재창간 선언 이후 한겨레의 논조는 기사뿐만 아니라 컬럼에서도 예전과 다른 변화조짐이 읽혀진다. 비단 컬럼이 ‘회사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으로 문제의 본질을 흐려서는 안 될 일이다.

‘안경환 칼럼’을 실은 한겨레에 반론 글을 쓰기도 한 정진상 교수(경상대 사회학)는 “한겨레는 겉으로 독립언론, 진보언론이라고 표방을 하고 있지만 노동과 자본의 관계상 친자본적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힘이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또 “(한겨레가) 존립을 위해 ‘상대적 진보성’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 있겠지만 본질적인 문제가 닥쳤을 때 구조적으로 힘들 것 같다”고 우려했다.

기사나 컬럼이나 그것이 한겨레가 추구하는 가치와 본질을 정확히 드러내는 것이라면 환영할 만한 일이다. 오히려 애매하게 ‘진보(언론)’를 자처하며 독자를 혼란케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낫기 때문이다. 그간 한겨레가 누려온 ‘상대적 진보성’. 그것이 마치 '수구언론'의 위협을 매개로 하는 그 옛날의 '비판적 지지'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한겨레에게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어려워지면 또 재창간할 것인가
방만한 경영…윤전공장 확대와 <허스토리>의 실패
한겨레가 제2창간을 하는 이유는 뭘까? 그동안의 방만한 경영 때문이었다. 윤전공장의 확대이전과 여성지 <허스토리>의 실패가 대표적이다. 몇년전 <한겨레리빙>의 실패도 한몫 했다. 한겨레 사옥이 있는 공덕동 윤전기의 경우 용량의 한계로 신문 본지를 32페이지 이상 만들 수 없었다. 본지 광고를 수주했는데 넣을 지면이 부족했던 것. 요일별로 섹션 별지를 냈지만 광고주들은 본지에 광고를 넣어주기를 원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겨레는 ‘한국신문제작’과 공동인쇄법인을 만들고 여기에 출자를 했다. 한국신문제작 겸 한국문화진흥의 김준묵 대표는 작년말 (주)보광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임명됐고, 보광그룹의 홍석규 회장은 홍석현 주미대사(중앙일보 회장)의 막내 동생이다.


당시 한겨레노조는 “윤전기의 이전은 대단히 위험한 일로 자칫하면 중앙일보에 (한겨레가) 넘어갈 수도 있다”고 우려하면서 윤전기를 넘기지 말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윤전기의 이전은 추진됐고, 당초 윤전기 두 대가 결합돼 48페이지를 찍겠다는 의도는 두 기계의 물리적 차이로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당시 본지에 넣을 광고만 연간 100억원을 그냥 날렸다는 후문이다. 1천여억원에 이르는 윤전기를 풀가동 하기 위해 한국신문제작은 다른 신문사의 외주물 확대에 주력했으나 물량 확보는 실패하고, 한겨레는 한국신문제작에 보증에 보증을 더 늘려가야만 했다.


여성 월간지인 <허스토리>는 2003년 창간 초기부터 시장성이 있겠냐는 내부 비판에 직면했다. 1호가 나왔을 때 각 부서별로 할당량도 떨어지면서 판매에 정성을 기울였지만, <허스토리>는 창간 1년만인 2004년 11월 휴간에 들어갔다. <허스토리> 구성원들의 반대로 모기업 한겨레가 염두에 둔 ‘분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다른 한겨레의 자매지, 자매사 등과 마찬가지로 <허스토리>는 인위적 구조조정이 힘든 한겨레 구조에서 인력을 내보내는 통로 역할을 한 셈이었다.



<편집자 주> '노동계'가 또 '껀수'를 '언론'에 '제공했다'라고 하면 틀린 말일까. '취업비리'로 시작된 2005년. '각목 사태', '권오만'에 이어 '강승규'까지. 노동계는 정말 죽을 맛이다. 잘못은 인정하고 도려내면 된다. 그것은 당사자의 몫이다. 그러나 언론은 하나의 잘못을 그 하나로 놓아두지 않는다. 뒷골목의 법칙은 항상 '틈을 주지 않고 몰아치는 것'이기에.

언론은 왜, 어떻게 노동을 박해하는가. 그렇다면 노동은 언론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매일노동뉴스>가 여덟차례에 걸쳐 기획을 준비했다. 이 연재는 일주일에 한차례씩 게재된다.

이수현 기자  shlee@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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