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노동자대회 사전대회에서 마이크를 잡은 수십개 투쟁사업장은 모두 비정규노조였다. 그리고 한결같이 ‘말로만 연대’하지 말고 실천으로 연대하자고 절규했다. 오죽했으면 어떤 동지는 장기투쟁 사업장에 한번 들러주는 것만도 연대라고 말했지만 그러나 그 또한 외교적 연대에 불과할 뿐이다. 어떻게 해야 조합원들과 함께 하는 생생하고 역동적인 연대활동을 복원할 수 있을까? 답답하지만 당장 뾰족한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혁신 속에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혁신을 위해서는 생산하고 창조하는 계급으로서의 창의성과 함께 새로운 방식의 도입에도 과감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투쟁의 안전장치가 없다

지난 주말, 부산에서 있었던 아펙반대투쟁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밤열차에서, 선봉대 활동을 했던 철도노조 해고 동지와 마주앉게 되었다. 철도노조에는 현재 67명의 해고자가 있다. 노조에서 지원하는 100여만원 가량의 생계비로 두 아이와 부모까지 부양해야 하는 빠듯한 살림살이가 쉽지 않았겠지만, 그 동지에게 노조의 지원은 해고생활 2년을 버티며 연대투쟁의 선봉에 설 수 있게 하는 재정적 밑받침이었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최근 노무현 정권 3년 동안 구속된 노동자수가 같은 기간의 노태우 군사독재정권 시절보다도 많다. 그나마 대기업노조는 희생자 구제기금으로 충당이 가능할 수도 있으나 중소영세·비정규 노동자는 거의 모든 고통을 개인이 감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처럼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이 격렬하게 벌어지는 경우에 투쟁과정에서 희생자가 늘어나는 것은 거의 필연적이다.

그런데도 우리에게는 어떤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다. 이미 10년 전부터 써 오던 일회적인 모금, 명절 때의 재정사업, 일일호프 정도가 재정적인 연대의 거의 전부다. 그나마 이런 연대활동도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그렇다면 상호금융의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어낼 수는 없을까?

오늘날 협동조합 운영의 골격을 만들었다고 평가되는 세계 최초의 협동조합인 로치데일 소비조합은 1800년대 중반에 있었던 파업투쟁에서 해고당한 28명의 영국 방직공들이 만든 조직에서 출발했다. 노조가 더 많은 수입과 노동조건의 향상을 위한 자본과의 투쟁을 위한 전투조직이었다면, 협동조합은 지출을 줄이고 상호 부조하여 재정적 어려움을 타개해 나가기 위한 병참조직이었던 셈이다. 그 시절에 비한다면 우리 노조는 분명히 성장했다. 그러나 노조가 전투적으로 성장했던 데에 반해, 재정적인 자주와 자립을 이루어내고자 하는 연대는 100년 전 영국 노동자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 노조운동은 기업단위의 임단투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고, 투쟁의 성과도 기업복지 형태로 집중되어 특정한 노동자만이 그 과실을 누리게 되었다. 이런 형편에서는 산별노조가 건설되어 산별교섭이 이루어진다 해도 이 구조가 산업이나 업종으로 확대될 뿐 진정한 연대와 노동자들의 균형발전은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정규 노동자 연대 신협을 만들자

서민들에게 금융기관의 문턱이 높은 것처럼 우리 운동 안에서도 ‘금융’은 노동자들에게 여전히 알기 힘들고 복잡한 영역으로 취급되어 왔다. 여기에는 금융노동자들이 계급적 관점에서 금융문제를 해석하고 공유하는 활동이 부족했던 것에도 이유가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구조조정의 격랑 속에서 기업이나 연기금의 지배구조에 대한 문제의식들이 급격히 현실성을 띠어가고 있다.

이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 스스로 노동자의 금융기관을 직접 만들고 운영할 때가 왔다고 본다.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의 가입조직인 서울경인사무서비스노조에는 3개의 신협 지부가 있다. 소수지만 신협노동자들은 수차례의 파업투쟁을 겪은 바 있고, 신협과 같은 서민금융기관을 창립하는데 따른 기획과 운영에 대해 충분히 조언해 줄 수 있는 역량 있고 경험 많은 금융직 노동자들이 있다.

전국의 4만여 비정규 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하고, 집중성이 높은 지역을 거점으로 해서 신협을 구성하고 기업단위노조들이 복지기금 중에서 단 몇 %만 출자한다 해도 우리는 스스로 금융기관을 출범시킬 수 있다. 그리고 자주적인 복지사업을 통해 전국의 수많은 비정규노동자들의 삶에 밀접하게 다가설 수 있다. 또한 비정규투쟁의 선봉에 선 동지들이 피워 올린 소중한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지켜갈 수 있다.

왜 우리는 부당하게 해고된 이후 복직투쟁을 해 나가는 동안 우리 노동자들이 세운 금융기관에서 생활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것인가? 왜 우리는 자본과의 투쟁과정에서 부상당했을 때 우리 노동자들이 세운 금융기관에서 치료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것인가? 왜 우리는 열사의 유자녀들이 부모를 잃은 슬픔과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이중의 고통 속에서 신음할 때 우리 노동자들이 조성한 기금으로 가족들을 지원하지 못하는 것인가?
이제는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 볼 때다. 

재정자립은 평등과 자주성 확보의 근간

조직된 일부 업종이나 기업의 비정규 노동자 투쟁 역시 그 성과가 기업 차원에 머무르게 되는 과거 대공장 대기업 노동자들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시작부터 재정적 연대의 관점을 굳건히 하는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 전체의 균형 있는 전진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또한 재정자립은 기회를 보아 부패한 비리구조로 편입시키려는 자본의 술수 앞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노동운동의 자주성을 확보해 나가는 일이다. 과거로부터 지속적인 논란꺼리이고 지금도 여전한 쟁점인 정부 보조금 문제 역시 재정적 어려움을 깰 수 있는 ‘해결 가능한 대안’이 없이는 모두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노조를 연대와 생생한 실천의 조직으로 복원하는 일은 멀고도 험난하다. 더욱이 한 가지 길만도 아닐 터이다. 그러나 그 길은 보람 있고 창조적인 모색으로 가득한 길이다. 노동자들의 상호금융기관을 만들자. 그러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금융권 노조들이 앞장서서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 다음 비정규연대회의를 비롯한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주체로 서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기업, 대공장 노조들이 함께 나서야만 한다.

신용은 노동권과 함께 ‘국민의 기본권’에 속한다. 우리 주위에는 이런 기본권조차 박탈당한 신용불량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50만이 넘는 조합원을 가진 캐나다 퀘벡주 노동자 연대기금도 그 출발은 당시 실직 상태에 빠진 수많은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로부터 시작했다. 한편, 지금은 1만5천명 규모의 조합원과 수백억 자산을 가진 성남의 주민신협이나 부산의 장애인신협도 조직 초기에는 불과 수십에서 수백명 조합원으로 시작했다. 취약하다고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 수십배에 이르는 조직노동자들이 있다.

비정규개악입법을 앞두고 긴급한 투쟁의 시기에 어떻게 투쟁에 집중할 것인지는 생각지 않고 무슨 뜬금없는 얘기냐고 질책할 동지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면 비정규투쟁은 민주노총을 새롭게 혁신시켜나가기 위한 다양한 고민을 함께 담아내면서 전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길에 작은 문제의식이라도 던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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