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순(가명) 아주머니를 만난 건 서울역 중앙지하보도에서였다. 마침 무료급식시간이었던 그곳에서 아주머니는 종이 한장을 깔고 식사를 하고 계셨다. 나를 알아보자마자 아주머니는 울음을 터트렸다. 일순 아주머니의 남편인 종욱(가명) 아저씨가 구속된 것이다.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정식으로 혼인한 상태가 아니다. 아저씨가 조선족과 위장혼인을 했기 때문에 아주머니와 혼인신고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지원단체에서 무료로 결혼식을 치러준다고 해서 아주머니는 무척 행복해 했으나 혼인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부부에게는 결혼식을 치러줄 수 없다고 해서 결국 포기해야만 했다. 그런데 위장혼인이 문제가 되어 아저씨가 구속된 것이다.

종욱 아저씨는 서울역에서 10년 넘게 노숙을 하신 분이다. 간질이 있어 정상적인 노동을 할 수 없었던 아저씨는 노숙생활과 쪽방생활을 반복하다가 노숙하던 아주머니를 만났고, 수급자가 되어 쪽방에서 생활하고 계셨다.

2003년 겨울, 아저씨는 청계천의 노점상을 철거하는데 나가셨다. 그런 일인지 알고 나가신 것은 아니었다. 하루일을 하면 일당을 주겠다고 새벽같이 모이라고 해서 나가보니 청계천 철거현장이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용역깡패의 방패막이가 되어 다리까지 다쳤으나 일당도 치료비도 받지 못했다. 그 이후로도 노숙인을 철거에 동원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아저씨를 비롯하여 함께 노숙인 당사자모임을 꾸렸던 분들은 노점상이나 철거민을 철거하는 곳에는 가지 않기로 결정했으나 아저씨는 그 이후로도 직접 사람들을 모아 철거현장에 나갔다.

얼마 전 아저씨는 한달에 30만원도 못되는 한달 생계비를 은행해서 인출해 오다가 소매치기를 당했다. 아주머니가 주민등록에 문제가 있어 이번달에야 수급자가 되어 아직 급여를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생계비를 도둑맞은 것은 너무나 암담한 일이었다. 아저씨는 이곳저곳 돈을 빌리러 다녔다. 그러나 아저씨는 다른 노숙인 아저씨들을 끌어들여 명의를 빌려주어 집을 계약하는 등의 일을 하셨기에 사람들은 아저씨를 피했다.

아주머니는 한글을 배우지 못했다. 약간의 정신질환도 있는 아주머니는 아저씨만을 의지해서 살아가신다. 얼마전 아주머니가 뜨거운 물에 다리를 데었다. 무료진료소에서 치료를 받고 병원에서 약을 받아와야 하는데, 아주머니는 길을 모르지만 아저씨는 귀찮다고 약을 받아주지 않았다. 아주머니가 아저씨를 위해 충고를 하면 온갖 욕을 해대며 잔소리한다고 호통을 친다. 아주머니는 아저씨가 문제를 일으켜도 한마디 말을 할 수가 없다.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일상적으로 들으면서도 아주머니는 묵묵히 이를 견디신다.

중앙지하보도에서 아주머니는 이러한 아저씨의 문제들을 이야기하시면서도 내내 아저씨가 보고 싶다며 눈물을 흘리셨다. 생계비가 다음주에 처음 지급되는데 혼자서 찾으러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노숙단체분에게 함께 가자고 부탁했다는 아주머니는 현재는 한푼도 없다고 했다. 아주머니에게 약간의 돈을 드리고 돌아나온 후 그날밤 아주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한글을 모르시는 아주머니는 아저씨가 시킨대로 수첩의 번호를 눌러 사람들에게 돈을 마련해 달라고 얘기하고 계셨다. 아주머니 이야기로는 아저씨가 열흘이면 나온다고 했으나 노숙단체쪽 설명으로는 한달이 넘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부산에서 APEC이 열리면서 모든 역사와 지하철의 개인사물함은 사용이 중지되었다. 추워지는 날씨 속에서 이불이며 옷가지조차 보관할 수 없는 거리생활자 분들의 하루하루는 참담하기만 하다. 여기에 조선족과의 위장결혼에도, 신분을 도용당해 이루어지는 각종 금융사기에도, 염전과 김양식장으로 팔려가는 인신매매에도 노숙인은 악용당하고 있다. 이러한 폭력은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이름에 묻히고, ‘노숙인’이라는 딱지로 덧씌워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폭력은 다시 또다른 방식으로 여성에게 더해지고 있다. 아주머니의 삶과 눈물은 폭력이 폭력을 낳는 이 사회의 상황과 이에 대한 순응을 강요당하는 여성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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