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광풍이 지나간 듯 도시는 적막으로 쌓여있다.

돌이켜보면 지난 3월부터 시작된 핵폐기장 유치반대 활동이 11월2일 주민투표를 진행할 때 까지 8개월간에 걸쳐 우리지역은 이성과 상식을 잃은 시장을 비롯한 보수기득권을 중심으로 하는 관변단체들의 주도 하에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19년간 끌던 방사선 폐기물 매립장 문제를 특별법이 제정되며 유치지역에 3천억+α가 지원된다는 당근에 시민의 안전도 민주적인 절차도 이미 무시되고 있었다. 

미쳐 돌아가는 핵폐기장 유치운동

정권이 비호하고 한수원이 지원하는 막강한 돈의 위력은 우리가 상상하던 것 이상의 것이었다. 관권과 금권이 동원된 선거운동의 위력 앞에 반대대책위는 한없이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시장은 물론이고 국장, 과장에서 말단공무원에 이르기까지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하고 주민투표 찬성운동에 나서지 않는 공무원은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며 찬성운동을 종용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였다. 뿐만 아니라 읍면동은 물론이고 통반장에 이르기까지 유치운동에 나서고 있었다. 수십년에 걸쳐 이룩된 엄청난 선거조직이 동원되고 있었다.

쏟아지는 홍보물은 찬성운동 홍보물로 일관되었고 읍면동별로 유치설명회를 빌미로 관광, 기념품, 식사제공이 진행되었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치 한수원의 홍보물을 보는듯한 착각이 될 정도로 찬성운동으로 일관된 지역신문의 행태에 신문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기도 하였다.

사상 유래 없는 돈 선거, 공무원 선거 앞에 대책위를 구성하고 있는 중심단체들은 대단한 위기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 위기감은) 민주노동당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한 투쟁의 역사 속에서 이제껏 일구어 놓은 진보정치의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여러 단체로 구성된 대책위는 기동성이 떨어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동력이 떨어져갔다. 이윽고 부재자 투표 신고가 시작되었고 포항지역에서의 부재자신고 비율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역대 선거와 비교해 봐도 16대 대통령선거에서 2.9%, 17대 국회의원선거에서 3.1%였으나 핵폐기장 주민투표에서는 22.0%로 유효주민투표인수 3/1에 근접하고 있었다.

정말 최선을 다해 본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는 결과였다.

시민들의 양심에 절절하게 호소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핵폐기장 부지로 예정된 상옥에서 포항시청까지 천리길을 맨발로 걷기로 한 것이었다.

천리길을 맨발로 걷는 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은 참가자들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상옥에서 약식집회를 마치고 차가운 아스팔트를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 시작하였다.

고지대에 위치한 시골마을이 순식간에 찬반으로 나뉘어 주민갈등이 제기되기 전까지 이곳은 그저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골마을일 뿐이었다. 

맨발로 뛴 핵폐기장 유치반대운동

쏟아지려는 눈물을 삼키려 올려다본 가을하늘은 왜 그리 청명한지 금세라도 푸른 눈물이 뚝하고 떨어질듯 하다. 그렇게 눈물을 삼키며 구비 구비 고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모두들 지쳐가고 발바닥엔 하나둘 물집이 잡히기 시작하였다. 관절에 무리가 와 다리에 쥐가 내리고 절뚝이는 분들도 발생했다. 그러나 모두들 한결같이 걷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틀에 걸쳐 천리길을 오직 이 땅에 대한 사랑으로 불편부당함에 대한 분노로 걸어 마침내 시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의 이 가슴 절절한 마음이 시민들의 마음에 온전히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며칠 뒤 주민투표가 진행되었다.

전체투표율 47.2%에 찬성률 67%로 포항은 다른 지역에 밀려 후보지에서 탈락하였다. 그리고 겉으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거운 고요함이 지역을 짓누르고 있다. 찬성하는 자도 반대하는 자도 모두들 가슴 한쪽에 생채기를 켜 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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