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규 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의 비리사건은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자긍심을 송두리째 뒤흔든 참담한 사건이다. 그러나 자본과 정권, 그리고 언론이 모욕적 여론 공세를 퍼붓고 있는 동안에도 현장의 반응은 무관심과 냉소이다. 이는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이 단순한 지도노선 혹은 지도부의 인적 쇄신으로 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모습이다.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은 노동운동 스스로의 철저한 성찰을 바탕으로 발본적이고 대중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우리는 자각하여야 한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개인 비리를 넘어 변혁성을 상실한 민주노조운동이 가져온 필연적 결과물이다. 현장에서 노동조합은 세상을 바꾸는 전체 노동자들의 거대한 운동이 아니라 일부 노조활동가들이 조합원을 대리해서 실익을 챙겨주는 거대한 관료기구로 변질되어 왔다. 노동자들의 계급적 지향에 입각해 전체 사회를 진보적으로 바꾸려는 힘을 모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민주노조는 현장 조합원으로부터 계속 멀어지고 있으며, 대중의 에너지를 변혁적으로 모아나가는 대중적 기관차가 아니라 전문화된 노동관료들의 대리주의 운동체로 후퇴하였다. 

자기성찰 바탕한 근본적 혁신 필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결과로 한편으로는 자본의 거대한 힘이 전 사회를 장악해 가는 가운데 비정규직, 절대적 빈곤층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러한 정세에 맞서는 사회변혁적인 노동운동이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방어적·실리적 투쟁에 머무르고 있다. 민주노총은 늘어나는 비정규직과 빈곤층을 조직해 함께 사회를 바꿔나가는 실천을 전개하지 못하고, 여전히 기존 정규직들의 고용유지에 머무르고 있다. 때문에 사회적으로 부패한 비리집단 혹은 정규직의 자기 실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 집단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고립되어 있다.

민주노조운동의 정신과 운동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기 성찰에 기초하여 조직과 투쟁, 조직운영과 사업기풍 전반에 걸친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우선적으로 기업과 업종의 울타리에 갇힌 채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임단협을 뛰어넘어야 한다. 실리주의와 사회적 타협에 중심을 두는 제도화된 운동 방식에서 확 벗어나야 한다. 노동자·민중의 보편적 권리에 바탕을 두고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계급적이고 사회운동적인 투쟁으로 거듭나야 한다. 진정성이 결여된 채, 원칙과 당위로 주장되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중소영세사업장·이주노동자까지 포함하는 조직운영과 활동,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민주노총의 위기는 조합원의 무관심을 핑계로 조합원으로부터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는 노동관료들과 그들의 패거리문화에 지나지 않는 종파간 갈등으로 인해 더욱 심화되어 왔다. 사회 변혁의 방향 설정을 둘러싼 노선투쟁의 도구였던 정파가 이제는 계파간 세력 결집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대중적 통제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동안 민주노총은 그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민주노총을 조합원이 직접 통제하고 참여하는 대중운동의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조직 노동자만이 아닌 전체 노동계급의 명실상부한 대표기구로 다시 세워내야 한다. 

노동자 선언운동을 제안하며

오늘날 민주노조운동이 이 지경까지 된 데에는 상급조직과 현장, 상층간부와 현장간부에 이르기까지 노동조합이 관료화되고 권력화되고 자주성을 상실하는데 일조하거나 묵인하거나 무기력한 대응으로 일관한데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각 정파가 변혁운동의 정신과 전망을 상실하고 분파적 이해에 따라 종파적 권력싸움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거대한 신자유주의 공세에 조합원들이 자신의 고용과 생존을 위한 이기적 요구로 굴종해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제는 안 된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전태일 열사 추모 35주년을 경과하면서 전태일 열사 정신 복원, 민주노조운동 정신 복원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맞서야 할 혁신의 대상과 내용이 너무 크다고 포기하지 말고, 우리의 역량이 작다고 좌절하지도 말고, 작더라도 바로 지금 혁신을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주체의 진정어린 자기 성찰과 반성, 혁신이 필요하다. 각급 영역에서 변화와 혁신의 분위기를 조성해 가자. 각 정파도 자기 식구 챙기기와 감싸기에 골몰하지 말고 스스로부터 엄격한 혁신에 나서자. 자기세력을 불리고 권력을 잡기위한 담합에서 벗어나 정치사상운동을 제대로 실현하고 검증받기 위한 정당한 노력을 기울이자.

무엇보다도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해결 노력이 절실하다. 상급단위, 활동가, 정파만의 노력만으로는 혁신을 이루어 낼 수 없다. 아래로부터 혁신을 위한 작은 실천이라도 전개하자. 그를 위해 민주노조운동 혁신을 위한 노동자선언 운동을 제안한다. 이미 ‘노동자들의 아름다운 연대를 위한 서울지역실천단’에서는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선언운동을 전개하고 있고 필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하나, 우리는 기업과 업종의 울타리에 갇힌 채 기업임금과 복지, 정규직 고용보장에 머물렀던 투쟁을 극복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전체 민중의 요구 실현을 위한 투쟁, 사회를 바꿔내기 위한 사회 운동적 투쟁을 조직하고 실천할 것을 선언한다.

하나, 우리는 그간의 무기력한 모습에서 벗어나 당면의 비정규권리입법 쟁취, 노사관계로드맵 분쇄, 사회공공성강화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최우선적으로 비정규권리입법 쟁취 총파업·총력투쟁을 조직할 것을 선언한다.

하나, 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과 투쟁에 적극 연대하고 이를 위한 조직투쟁기금을 위해 민주노총의 50억 기금 모금에 앞장설 것을 선언한다. 또한 각 조직단위에서 전체 사업비의 30% 이상을 비정규·미조직 조직화 및 투쟁 사업에 배치하도록 추동해낼 것을 선언한다.

하나, 우리는 민주노총의 조직혁신을 위해서 우선적으로 1)민주노총 임원 직선제, 2)계급대표성 강화를 위해 비정규·중소영세노동자에 대한 할당제 등 조직운영 참여 구조 확대, 3)민주노총 대의원 직접 선출 및 소환제 등의 제도적 혁신을 민주노총에 요구한다.

하나, 우리는 비리와 부패구조를 근절하고 자주적인 민주노조운동의 복원을 위해 우리 사업장에서부터 실천적 노력을 기울일 것을 선언한다. 노사유착과 담합 행태를 근절하고 선거공영제 실현, 실천강령 제정 등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선언한다. 또한 민주노총을 비롯한 각급 조직단위에 각종 비리와 선거부정, 자주성을 훼손하는 개인과 조직에 대한 엄격한 조사와 제명 등의 강력한 징계를 요구한다. 

 
작더라도 행동에 나서야 할 때

한꺼번에 모든 혁신의 내용을 다 담아 낼 수 없다. 내용이 부실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작더라도 행동에 나사야 한다. 상급조직과 간부에 의탁하는 조합원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고 실천하는 진짜 노동자로서 자발적이고 주체적 실천으로 나서야 한다. 민주노조운동을 아래로부터 혁신하기 위한 노동자 선언은 그런 차원에서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운동이 종파적 시각에 의해 재단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우리에겐 민주노조운동의 기본 정신과 원칙 회복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후기> 이 글을 쓰면서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제 자신이 노조간부로서 활동가로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해성사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제 자신부터 혁신을 위한 결의로 쓴 글이라 이해주시길 바랍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