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이 출범한 지 올해로 5년째이다. 3번째 지도부를 맞이했고, 10만 당원시대를 앞두고 있다. 기대는 한껏 부풀었지만 결국은 그 효과가 의심스러운 ‘비상대책위’라는 극단의 처방을 받았다. 여기저기서 당의 위기와 원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원인은 온전하게 노동자계급의 정체성을 담지하지 못한 민주노동당에 있다.

결국은 계급모순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립인 계급모순이다. 그 대중적 표현을 최근 논의되고 있는 언어로 말하자면 바로 ‘사회양극화의 문제’이다. 노동을 하더라도 빈부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빈곤이 고착화 되고 세습화되는 구조적인 문제. 양극화의 핵심은 바로 8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이다. 우리 사회의 절대다수를 구성하고 있으며,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인 차별을 온몸으로 감내하고 있는 노동자. 따라서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노동자의 문제, 비정규직 문제.

대부분 투쟁의 경험이 없거나, 실패한 경험뿐이어서 강력한 노동자계급으로 조직되어 있지 못한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한국사회의 모순을 자각하지 못하고, 그래서 사회의 변화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무기력하다. 이 현실을 돌파하지 못하면 민주노동당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모든 운동조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동당의 위기는 바로 이러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처방과 조직적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2002년 건설되었던 비정규직권리찾기운동본부는 본부장의 개인적인 노력(?)에 의존하다 이름도 없이 사라졌고, 비정규직투쟁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당의 현실을 비판하며 당원들의 밑으로부터의 운동에 의해 비정규직투쟁을 담당할 조직인 비정규직철폐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가 만들어진 것은 4년차에서야 가능했지만, 일개 부서에 지나지 않는 위상으로는 상근활동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직적 한계를 극복할 수 없었다.

의제보다 의석에 집중했다

창당 초기부터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가 당의 핵심적인 사업이 되어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그렇지만 당의 일상 활동과 투쟁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는 시기적인 문제이거나 부문의 문제였을 뿐, 전당적이거나 핵심적인 의제가 아니었다. 이러한 원인은 바로 비정규직투쟁을 제기하고 조직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당 내부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노동당 비정규직투쟁의 가장 근본적인 한계이다.

이미 전체 임노동자의 60%를 넘어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아 낼 그릇을 당은 갖고 있지 못했다. 물론 운동본부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내부에서 조직체계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주체적으로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는 외부로부터의 노력이 아무리 강력해도 넘을 수 없는 장벽(!)일 뿐이다.

따라서 자신들의 요구를 조직적으로 당에 반영시킬 수 없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당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현실은 당의 비정규직투쟁을 더욱 소외시키는 악순환으로 작용하였다. 결국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민주노동당의 태생적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현실은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당내에 만연하고 있는 의회주의와 선거주의도 한몫을 했다. 한국사회의 핵심적인 의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의제를 어떻게 사회적 의제화 할 것인지가 당의 중심적인 고민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버린 지금, 당은 자본주의의 극복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와 이를 실천하기 위한 대중투쟁을 조직하기 위해 선택하고 집중하기 보다는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잘못된 선택과 '백화점식' 사업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었다.

더 나아가 한국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계급대중의 조직된 힘이 아닌 국회의원들의 '쪽수'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환상까지 만들어 내고 있다. 사실상 의회주의와 선거주의로 경도된 민주노동당이 건강한 노동운동을 가로막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사회의 근본적인 문제가 ‘비정규직 문제’라는데 정파를 막론하고 주저하지 않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투쟁은 항상 뒷전에 머물거나 다른 투쟁의 보기 좋은 들러리에 지나지 않도록 무의적으로 우리 스스로를 옭아매었다.

실무자의 ‘동서분주’로 넘지 못할 벽

2000년 들어서 현장 곳곳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를 노동운동진영은 제대로 투쟁으로 조직하지 못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투쟁해야 한다는 그럴듯한 당위만을 강조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정작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을 건설하고 투쟁에 나섰을 때는 ‘정규직과의 협의’를 주장하며 사실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박한 현실을 애써 눈감았다. 이러한 모습은 그대로 민주노동당에도 투영되었다.

운동본부를 제안하면서 ‘당원모임’은 민주노동당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을 최우선의 과제로 설정했고, 이를 위해 운동본부를 전국적 차원의 비정규직운동을 건설하기 위한 실천적인 조직체계로 만들 것을 제안하였으나 보기좋게 묵살되었다. 단지 재정적인 이유(?)라는 정치적(!)인 판단이었다.

운동본부는 비정규직개악안의 국회상정에 맞서 국회 내에서 비정규직 전시회와 토론회를 진행하거나 ‘비정규직 실사구시’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현실을 고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고 지원하기 위해서 본부장을 비롯한 실무자들이 동분서주했지만 딱 거기까지가 운동본부가 할 수 있는 한계였다. 결정적으로 비정규직 투쟁을 당의 중심적인 사업으로, 전당적인 사업으로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다.

비정규직투쟁의 핵심은 주체를 발굴하고 활동가로 양성하는 것과 더불어 고립적인 투쟁을 지역과 업종을 뛰어넘는 투쟁으로, 정치적 투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고, 그 힘은 바로 현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을 조직하는 것은 ‘캠페인이나 토론회’로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현장 장악력이 없는, ‘현장권력은 민주노총의 몫’이라고 체념해버린 민주노동당의 비정규직 투쟁은 민주노총의 의지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적인 열세와 더불어 법과 제도의 개선을 투쟁의 목표로 승인한 의원단은 국회의사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법안발의보다 투쟁이 필요할 때

그동안 비정규직투쟁에 있어 핵심적인 평가는 바로 ‘원하청 공동투쟁’으로 불리는 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투쟁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특히 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관점과 연대의 정도가 비정규직 투쟁의 성패를 좌우하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투쟁에 강고하게 연대할 수 있도록 그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민주노총에 의지하여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태도로는 불가능하다. 민주노총에 보다 더 비판적이어야 하며,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여전히 운동은 조직노동자가 중심이고 그 핵심이 민주노총이기 때문이다(이러한 관점에서 장석준 당원의 ‘더욱 더 민주노총당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전적으로 옳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절대다수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미조직 상태에 있다. 따라서 조직 건설 초기에서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호흡하면 자연스럽게 민주노동당의 핵심적인 지지세력으로, 당 활동의 주체세력으로 묶어낼 수 있다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정규직-비정규직 현장분회를 확대하고 강화하여 당 운동의 중심에 서도록 하여야 한다. 개인적으로 덤프노동자들과 함께 상경투쟁을 하면서, 지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건설에 참여하면서 확신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같이 호흡하면 조직할 수 있다.

그리고 중앙당과 의원단의 활동이 중요하다. 이번 하이스코 투쟁에서 의원단이 보여준 행동은 아주 적절했다. 물론 현장투쟁에 연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투쟁을 정치적 의제화시키는 것이 중앙당과 의원단이 하여야 할 역할이다. 현장의 투쟁이 전국적인 정치투쟁으로, 자본가계급에 대한 계급투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기폭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법과 제도를 발의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투쟁의 힘으로 대중투쟁을 조직하고 대중투쟁의 힘으로 법과 제도를 변화시키는 정치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정치력이 필요한 것이다. 운동권 방식이라며 폐기처분의 위기에 있는 민주노동당다운 방식을 더욱 확대 강화시키면서 출발하여야 한다.

위기는 주체의 노력과 의지에 따라 기회가 될 수 있다. 당의 위기가 단순히 시기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 동안 누적되어 왔던, 근본적으로 정체성의 위기에서부터 출발하고 있기 때문에 극복의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민주노동당의 근간이면서 중심인 민주노총의 변화에 대해서 지금처럼 미적지근하다면 위기 극복은 불가능하다. 민주노총과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이 변화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의 비정규직 투쟁에 정규직 노동자(정규직 당원)들이 나서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운동본부에서 진행하고자 하는 정규직노동자들의 ‘비정규직 투쟁 연대선언’ 운동이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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