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한강둔치 일대는 민주노총 조합원 5천여명이 내뿜는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노동자들은 밤을 새우며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과 ‘비정규권리보장입법 쟁취’를 외쳤고, 장기투쟁사업장 후원주점에 들러 술 한잔 나누며 회포를 푸는 이들도 많았다. 12일 진행된 노동자대회 전야제 이모저모.<편집자 주>

◇11월 강바람, 천막 100동으로 이겨내다 = 올 노동자대회 전야제의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한강에서 불어오는 11월 칼바람이었다. 쌀쌀한 초겨울 날씨에 설상가상으로 대회 및 숙박 장소마저 서강대교 남단 한강 럭비구장으로 정해져 참가자들은 비닐 천막으로 겨우 바람만 가린 곳에서 새우잠을 잤다. 대회 장소가 예년처럼 대학 교내로 정해지지 못한 데에는 학생회 선거를 앞두고 있는 대부분 총학생회가 '교내 여론 때문에 민주노총 행사장으로 학교시설을 빌리기가 힘들다'고 난색을 표했기 때문. 민주노총은 결국 강변에 무대를 쌓고 천막 100동을 설치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학생운동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어 앞으로도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가 노천에서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기도 했지만 "추운 날씨 덕에 동지들과 몸을 부대끼고 잠을 청해 정이 더욱 돈독해지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일본으로 수출(?)된 '철의노동자' 문선= 이번 노동자대회 전야제에서 가장 눈길을 끈 무대인사 가운데 하나는 일본노동자들이 보여준 '철의 노동자' 율동공연. 100여명의 도로츠바 국철노조, 일본건설운수연대노조, 병원노조 조합원들로 구성된 이들은 3년 전부터 우리나라처럼 매해 11월 둘째주 일요일에 '일본 노동자대회'를 개최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이들은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활발한 연대활동도 펼치고 있는데, 이날 선보인 '철의 노동자' 율동공연 역시 서울본부로부터 전수받은 것. 특히 이들이 공연에서 보여준 절도있는 동작과 결연한 표정 등은 어느 문선대 못지 않을 정도였다고. 도로츠바 국철노동조합의 다나카 위원장에 따르면 '민주노총의 전투적 노동운동을 일본에서도 실현하는 것'이 주요 활동목표인 이들은 한국의 노동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적금도 따로 부을 정도로 대단한 열의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인터내셔널 = 12일 전야제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의 활약도 눈부셨다. 한 이주노동자는 전야제 무대에 올라 가수 윤도현 저리가라 할 정도의 박력있는 무대매너와 노래솜씨를 뽐내기도 했다. 또, 전야제가 진행된 한강둔치 한켠에는 지난 4월 설립된 ‘이주노조’의 이름이 박힌 깃발을 꽂은 주점도 등장했다. 올해 첫 등장한 ‘이주노조 표’ 포장마차에서는 다양한 국적의 노동자들이 한데 모여 술잔을 주고받는 ‘인터내셔널’한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탁아방과 함께 등장한 ‘어린이 대오’ = 어린 자녀를 둔 노동자들을 위해 대규모 행사에 탁아방을 설치하는 일이 관행으로 자리잡고 있다. 대규모 노동자 행사에 탁아방이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2002년.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엄마 아빠 손잡고 행사장을 찾는 어린이들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어린이 대오’의 등장인 셈. 12일 전야제 역시 적지 않은 어린이들이 ‘대오’를 이뤘다. 이들은 특히 빠른 박자의 투쟁가요가 나올 때마다 특유의 ‘깡총깡총 댄스’를 선보이며 어른들을 즐겁게 했다는 후문이다.

◇노동부 한 접시에 만원~ = 노동자대회 전야제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노조 후원 주점에 ‘노동부’와 ‘노대통령’이 안주로 등장했다. 기아차비정규직지회 등이 마련한 주점에는 ‘노동부=비정규직 소굴’이라는 이름의 생굴 한접시가 1만원에 팔렸고, ‘노대통령이 믿음이 안가선지’라는 이름의 선지국밥이 5천원에 팔렸다. 그밖에 ‘노동부 오~징허네’(마른오징어+땅콩=1만원), ‘노동부 너 자꾸 그러면 홍나’(홍어무침 1만원), ‘노동부 장관 쪽파~알려’(파전 5천) 등이 등장, 노동자들의 주량을 무한대로 늘려놓았다고.

◇일부 문화활동가, 전야제 동안 독자행사 개최 = 한편,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가 열리는 동안 무대 바로 뒷편에서는 '전국노동문화 활동가 결의 한마당'이 독자적으로 개최됐다. '전국 노동문화 활동가 한마당 준비위원회' 명의로 개최된 이 행사에서 노래공연을 한 김호철씨는 "노동문화 활동가들이 왜 여기에 모여 따로 이런 행사를 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하는 것 같다"면서 "우리의 행동은 노동자들을 배신한 집단에게 경고의 메시지이며, 민주노총에게, 침묵하고 있는 동지들에게 함께 일어설 것을 호소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자의 힘, 서울경인사무서비스노동조합, 현대차비정규직노조 등이 함께 한 이 자리에서 참가자들은 결의문을 통해 "그토록 민주노조운동에 헌신해 왔지만 문화일꾼들에게 돌아온 것은 끊임없는 희생 뿐"이었다면서 "희생은 참을 수 있지만 민주노조운동의 원칙과 기풍이 사라지는 것은 두 눈 뜨고 보지 못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섰다"고 독자행사 개최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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