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 이른바 ‘노사관계 로드맵’이 발표된 지 2년 만에 국회 처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당정은 지난 11일 로드맵 34개 과제 중 복수노조 허용 등 24개를 내년 2월 우선 처리키로 의견을 모았으며 18개 항목에 대해서는 내용까지도 합의를 이뤘고 6개는 아직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당정이 이처럼 속도를 내는 것은 2년 동안 ‘로드맵’을 놓고 노사정 사이에 실질적인 대화는 없었지만 2007년 복수노조 허용, 노조 전임자 임금 금지 시행을 앞두고 행정기관과 국회 입장에서 무책임하게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게 이유다. 일면 타당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한 껍질만 벗겨보면 정부가 책임을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김대환 노동부장관은 ‘로드맵’과 관련 줄곧 34개 일괄 처리를 주장했다. 정치권, 노사, 학계 등에서 단계적 처리를 주장해도 ‘진정한’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해서는 일괄처리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던 것이 불과 한 달 전이다. 겨우 한 달 만에 10개가 줄었다. 그리고 처리 대상에서 제외된 10개 항목에는 그나마 노동계에 유리한 내용이 대거 포함됐으며 경영계가 강하게 반발했던 항목도 있다.

노동계 입장에서는 34개 일괄처리보다 ‘더 개악’된 것이며 경영계로써는 한 시름 놓은 셈이다. 그렇다면 왜 10개 과제가 줄었을까. 그 동안 학계에서 단계적 처리를 주장했던 이유는 노사관계를 위해서 민감한 쟁점은 추후로 미루고 시급한 과제부터 논의를 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정부가 10개 과제를 줄인 이유는 ‘준비부족’이 핵심이다. 법원의 판례를 행정해석이 따라오지 못하는 등 현장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통상임금 명확화는 노사간 쟁점이기 이전에 중소기업 피해 최소화 방안 마련 등 정부가 풀어야 할 시급한 과제다. 조정·교섭대상 확대를 통한 조정서비스 활성화는 노사관계를 노동위원회로 넘기고 고용에 중점을 두겠다던 노동부의 야심 찬 계획이었다.

손배·가압류 제한은 지난 2003년 상반기부터 참여정부가 약속한 사안이다. 임금에 대한 연구가 좀 더 필요하고 노동위원회 인프라가 아직 미흡하며 노동법 사안이 아니라는 이유 등으로 이러한 내용의 처리를 미루려는 노동부는 지난 2년 동안 무엇을 했는가. 연구 미비와 인프라 구축 문제는 철저히 정부의 몫이다. 노동법이 아닌 민법으로 다뤄야 할 손배·가압류도 부처간 조율 등 정부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자신이 했어야 할 일은 ‘방기’한 채, ‘로드맵’ 강행 처리 명분을 대화에 나서지 않는 노동계 탓으로 돌리는 정부. 지금 선진화가 시급히 필요한 곳은 노사관계 법제도가 아니라 무책임한 정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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